어른이 되어보니
이주형 지음 / 다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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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작가는 직장인입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그냥 직장인이 아니라 대표시죠. 은행권에서 경력을 쌓으시고 현재는 스타트업 애니버스와 라파로마(아로마 제품 생산 판매기업) 공동대표입니다. 저서로는 <평생 갈 내 사람을 남겨라><지적인 생각법><어른이고 싶은 날><해피메이커><6시그마콘서트>등이 있습니다.

 

<결국 다 지나간다>는 INTRO를 시작으로 <행복을 누리기 : 행복을 누릴 시간은 지금밖에 없다>, <참고 버티기 : 다 지나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내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기 : 지금 내 앞에 있는 이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격려하기 : 잘 살아가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총 4부분으로 나뉘어 각각의 다양한 소제목으로 에피소드를 이야기합니다.

                 

짧은 에피소드들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서문에서 나오듯 글을 종종 카페 구석진 자리에서 쓴다는 저자는, 일상적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4개의 CHAPTER로 구분은 해 놓았지만 따로따로가 아닌 모두가 <어른이 되어 보니>로 연결된 에피소드들입니다. 아마 목차 제목만 읽어도 이 책의 절반은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지나가버리기 전에, 가까이 주어진 행복을 찾아 일상을 누려보자고 한다.
'행복을 누릴 시간은 지금밖에 없다'
'다 지나간다는 사실이 삶의 큰 위로가 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격려하자'

위 내용은 이 책을 읽기 전 서평이벤트에 소개했던 문구입니다. 이 책이 말하고 싶은 모든 내용을 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글에는 저자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어려서부터 책을 사랑했던, 많은 친구들 속에 둘러싸여 그 존재를 알리기 보다는, 진정한 친구 몇몇만을 고집하며 그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그 삶이나 생각이 옳고 그르고는 별개로 "어른"인 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시간, p.267>이라는 소제목으로 쓴 글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란 게 뭘까요? 한 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저자는 아무리 고대하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시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이 시간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고 하네요.
이 "언젠가"라는 단어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 척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조만간 해야죠' '언젠가 꼭 해야지' 이렇게 미루며 나 자신을 속였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건 안하겠다는 말과 같은 표현입니다. '지금'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이 "언젠가"라는 말은 늘 함께하지만 함께해서는 안 되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나를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고 성장하기 위한 일들로부터 "언젠가"라는 표현은 이제 지워야겠습니다.

이런 일상의 이야기에 어른이 된 저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비추어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1~2페이지의 짧은 에피소드들이라 아무 페이지를 열어도 내 마음을 열어줄 재밌는 경험담들이 튀어나옵니다. 혹자는 너무 뻔한 이야기 아니냐 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네요. 편안한 일상을 깨달음으로 받아들이는 저자의 글을 보면 '나도 써야겠다' '나도 써 볼까?' '나도 쓸 수 있겠다'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치 있지만 감동적인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보름달은 이렇게 말한다
"나처럼 둥글둥글하게 살아."

초승달은 이렇게 말한다
"나처럼 소박하고 예쁘게 살아."

반달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상황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해."

심지어 구름이 많아 달이 보이지 않는 날은 늘 달과 대화하던 내 마음이 말한다.
"보이지 않지만, 저 구름 너머엔 예쁜 달이 있단다. 그런데 나도 가끔 그 사실을 잊어버리곤 해."
p.80 <달은 말한다> 중 일부

내가 잊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소소한 행복은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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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입이 예쁜 골목길 아이들 - 1학년 2학기 초등국어교과서 수록 시 포함 고래책빵 동시집 1
이준관 지음, 조푸름 그림 / 고래책빵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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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는 아이가 읽어야 하는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동시를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아이, 어른이 모두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뒷표지에 이런 글이 있다.

"동시가 쓰기 쉬운 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어린이가 읽는 시이니까 더욱 어려운 시이지요. 그것은 어린이가 먹는 음식을 만들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나태주, 시인)

사실 읽기 쉬운 동시가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쓰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나태주 시인의 글처럼 어린아이가 먹을 음식만들기가 더 까다롭고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딸아이들과 함께, 서로 한편씩 읽어가며 킥킥거렸다. 정말 재밌게 읽은 시 몇 편을 소개한다. 

<쟁이가 사는 골목길 동네>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뛰어노는
개구쟁이
차새처럼 수다 잘 떠는
수다쟁이
매미처럼 울기 잘 하는
울기쟁이
걸핏하면 다람쥐처럼 뽀로로 달려가
이르기 잘 하는
이르기 쟁이
말만 걸어도 봉숭아꽃럼
얼굴이 빨개지는
부끄럼쟁이
무서운 이야기만 들어도
얼굴이 하얘지는
겁쟁이
뻥튀기 뻥처럼
뻥쟁이
딱따구리처럼 따따부따
참견쟁이
걸핏하면 뿡뿡뿡
방귀쟁이
메아리처럼 따라하는
따라쟁이
쟁이 쟁이가 사는
골목길 동네.

나의 어릴 적은 어떤 쟁이였는지 잠시나마 추억을 떠올려보고, 잠깐 미소지을 수 있었다.

<싸움>
골목길 아이들은
싸움을 하지

무릎으로 넘어뜨리기
닭싸움을 하지
엉덩이로 밀어내기
오리싸움을 하지

골목길 아이들은
싸움을 하지

서로 마주 바라보며
눈싸움을 하지
합죽이가 됩시다. 합
웃음 참기 싸움을 하지

싸움에 져도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나면 그만.

싸움에 져도
푸하하하 웃고 나면 그만.

싸움을 해도 그런 싸움을 하지
골목길 아이들은.

나도 모르게 그 시절과 요즘 시절을 비교했다. 놀이가 싸움이었던 그 시절. 지금은 아이들이 어떤 놀이 싸움을 하고 있을까. 베이드 블레이드 버스트 갓 팽이 싸움을 하고 있을까. 이런 놀이 싸움이 있고, 싸움에 져도 웃을 수 있다는 걸 내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하늘빛 파란 대문>
우진이네 집 대문
하늘빛 파란 대문

-우진이 아빠
고장난 전기 좀 고쳐 주세요
우진이 아빠 손 빌리러 오고

-우진이 엄마
꽃모종 좀 주실래요?
꽃모종 얻으러 오고

-우진아
축구 공 좀 빌려줘
축구공 빌리러 오고

골목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우진이네 집 대문
하늘빛 파란 대문.

대문을 잠그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였다. 내가 나고 자란 시골은 여전히 대문을 열고 살았지만, 대전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아파트란 곳에 살고 있었고, 문을 잠그지 않고 산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말했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역력하다. 그 후 엄마아빠한테 문을 잠그고 다녀야 한데라고 말했던 기억이.ㅋㅋ

<밥 먹기 싫은 진짜 이유>
밥 먹기 싫어요!

배가 아프니?
아니요

뭘 먹었니?
아니요

엄마는, 엄마는 모른다
밥 먹기 싫은 진짜 이유를

엄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그런다는 것을
이렇게, 엄마와 함께...

마지막 동시인 <밥 먹기 싫은 진짜 이유>는 왠지 우리 아이들과도 같은 마음인 것 같아서 소개해 본다. 아이들의 진짜 허기는 배고픔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은 아이었을까.

동시를 우습게 여긴 것은 아니지만, 감동을 전해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에서 주는 감동과 견주어 절대 뒤지지 않을 동시의 감동을 왜 그동안 모르고 살았을까. 동시를 읽을 수 있게 된 기회에 감사하고, 그 동시가 나에게 추억과 상념을 불러일으켜 준 것에 감사한다. 누군가와  함께 그 기억들을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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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서랍 - 말, 인생을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힘
김종원 지음 / 성안당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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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썼던 내 말이 어렵다, 힘들다, 이상하다,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물론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늘 투덜대는 사람도 있다. 그건 말하는 방법의 차이라고만 생각했다. 말과 글이 그 사람을 대신한다고 머리로만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내가 하는 말과 글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김종원 작가는 그동안 온라인에서 많은 활동을 해왔고, 출간한 책들도 제법 있어서 잘은 몰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나 역시도 이분의 소식을 받아보고 있다. 꼼꼼하게 다 읽는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글이 신중하다, 글이 깨끗하다고 생각해왔던 작가 중 한 분이다.

표지에서 이 책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준다.
"말, 인생을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힘"이라고.
책은 말에 대해 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모든 내용은 사람으로 이어진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 관찰하는 마음, 알고자 하는 마음, 궁금한 마음, 존경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 비난하는 마음 등 모든 마음들이 상대에게 하는 말로 이어진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날것이 아닌 신중한 말과 글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총 8부로 나뉘고 6개의 서랍을 설명한다.
1. '말의 서랍' 크기가 인생의 크기를 결정한다.
2. 얄밉고 무례한 사람을 제압하는 '기품의 서랍'
3. 하고 싶은 말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치유의 서랍'
4.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을 다루는 '긍정의 서랍'
5. 상처받지 않고 나를 지키는 '자존감의 서랍'
6.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공감의 서랍'
7. 상황과 때에 맞는 언어를 선별하는 '안목의 서랍'
8. 언어 감각을 단련해 '말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법

모든 장에 접어 놓지 않는 파트가 없을 정도로 나에게는 꼭 필요한  내용이었다. 매일 블로그를 쓰고 이웃들에게 댓글을 남기면서,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글이 내가 생각한 만큼 전해졌을까 했던 고민들, 신중하지 못했던 내 글들로 혹시 오해를 사진 않았을까 하는 고민들이 있어서 나에게는 좀 더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나? 좀 더 편안하게 넘기면 안될까? 생각할 정도로 작가는 말에 대해 신중하다. 그가 지적하고 고친 글을 본문에서 살펴볼 수 있다.

p.71
<포스팅 글>
-비수기라서 손님이 별로 없었어요.
-소고기인데 다가가 사진을 찍으니 하얗게 굳은 기름이 보였어요.
-음식은 많았지만 그나마 연어가 제일 먹을 만했어요.
-본식은 애피타이저보다는 먹을 만했어요.
-일식이라서 간이 강하지 않아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OO호텔 앞에 있는 바다나 보러 가자고 해서 나왔어요.
-풍경이 너무 좋네요.
-역시 호텔 위치는 좋네요.
-여기가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장소라는데 특별한 것은 없어요.

<작가의 수정>
-비수기라서 손님이 적어 여유롭게 식사했어요.
-음식도 많았고, 연어가 특별히 더 좋았어요.
-본식은 애피타이저보다 더 근사햇어요.
-일식이라서 간이 강하지 않아 건강한 맛이 느껴졌어요.
-OO호텔 앞에 있는 멋진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해서 나왔어요.
-풍경이 정말 좋네요
-역시 호텔 위치도 좋네요
-여기가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장소라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했어요.

작가의 글을 보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과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고, 좋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뭐 꼭 그렇게까지 해야해?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좋은 말이 듣기에도 좋다. 듣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인식도 좋아진다. 팩트를 전한다는 미명아래 품격이 떨어지는 말을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책에서 말에 대한 내용이 아닌 침묵에 대한 내용이 있어 옮겨본다.

<세상에는 말이 필요 없는 순간도 있다>
군대 시절 기억에 남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는 참 멋진 동기였다. 모든 부분에서 모범이 되었으니까. 하루는 한 선임이 그에게 '여자 친구와의 첫 키스'에 대해 물었다. 군대에 다녀온 남자라면 대개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 약간 과장해서 대충 이야기하겠지?'
하지만 그의 대답은 나의 잠든 정신을 깨웠다.

"죄송하지만 그건 둘만의 비밀입니다. 저만 알고 간직하고 싶습니다. 소중한 제 기억을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군대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의 대답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물론 그는 말도 못하게 혼났다. 하지만 끝까지 첫 키스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남보다 더 크게 소리쳐야 했고, 미움을 받고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대가를 치르고, 결국 지키고 싶은 추억을 지켜냈다.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추억을 나눌 수도 있었다.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소설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의 풍모는 아닐 것이다. 그는 다른 선택을 했고,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났다. 말하지 않아서 빛났다.

"말이 우리에게 빛을 줄 때도 있지만, 때론 침묵이 가장 강렬한 빛을 내려준다."(p.218)

이 책은 말에 대한, 글에 대한 작가의 깊은 생각과 넘치는 사랑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축하합니다' '응원합니다' '기대합니다'라는 글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나여서일까, 저자는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라고 한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은, 진심을 제대로 표현한 말은 통한다(p.217)고 설명한다.

"마음에 정성을 다했다면 그 마음을 전달하는 표현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p.217)

내가 상대를 생각한다고 표현했던 내 말과 글이, 나는 진심이었다 할지라도 상대가 형식적으로 받아들였다면 내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글이 좀 더 따뜻해지길, 내 말이 상대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내 말과 글이 조금은 더 진실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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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주노초파람보
노엘라 지음 / 시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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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사랑만으로 살 수 있을까?(뒷표지 문구)

띠지에 "소설 출간과 동시에 영화화 확정 화제작!"이란 문구가 있다.
영화가 대박이 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왜 영화화 할 수 있었는지는 알 것 같다. 이 소설은 영상이 그려진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 그들의 성향, 그들의 삶 등이 이미지로 그려지는 소설이다. 어떤 감독이 어떻게 연출할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이 퇴색되지 않길 바란다.

목차를 보고 처음엔 단편모음집이었나 싶었다. 야간비행/빨주노초파람보/딥퍼플/이카루스 네 개의 제목을 안고 현재, 은하, 승환, 상윤, 지연, 소희 각각의 이야기는 단편집같지만, 연인, 동료, 부부, 친구 등의 관계 얽혀 있어 하나의 장편을 이루고 있다. 

처음 읽고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수습할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를 사랑이라고, 혹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땅을 밟고 서 있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두둥실 떠 있는 내 마음에 그 토대를 쌓고 말았다. 

두번째 읽으면서 모든 이야기에 복선이 깔려 있음을, 왜 현실과 꿈을 오가며 괴로워하고 아파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내고자, 현실을 살아내고자 있는 힘을 다해 애쓰듯,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각자의 색깔을 찾고자, 자신의 자아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현실에서와 같다. 그 바탕엔 '사랑'이라는 이름이 깔려 있다.

현재와 은하는 사랑하는 사이다. 공군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현재는 문화부 기자 출신 은하의 취재로 같이 시범비행을 하게 된다. 이때 현재는 은하에게 프로포즈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생겼고, 은하는 프로포즈를 받을 수 없었다. 결혼하기 전이지만 둘은 동거를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 신혼생활을 겪어본 나로서는 격하게 인정한다. 그 아름답던 일상생활이 사고로 인해 어떻게 바뀌어 가고, 그 사고의 이면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이 둘 사이에 관계된 친구, 동료들은 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내 안의 나는 어떤 친구인지, 더위가 차츰 사그라드는 요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와 지친 우리 마음을 달래주고 있는 요즘, 사랑을 바탕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모르고 지나쳤던 또다른 나에게 어떤 모습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꿈이 깨어 있는 현실의 반영이라면, 현실 역시 꿈에 대한 반영이다.-르네 마그리트- p. 49

"이름이... 이, 현재요? 과거 현재 미래 할 때?"
"네 맞습니다. 이현재, 은하 씨는 셋 중에 뭐가 젤 좋으세요?"
"글쎄요, 음.... 미래?"
"왜요?"
"미래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 그때를 상상하면 그 순간만큼은 편해져요."
"마치 죽음을 꿈꾸는 것처럼 들리네요."
"삶과 죽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니까. 어쩌면 삶을 꿈꾸는 걸지도 모르죠."
"현실이 싫다면 이 현재는 어떠세요?"
"네?"
"미래를 상상하는 순간만큼은 미래가 아닌 현재니까. 그러니까 그 상상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미래가 아닌 이 현재의 시간이라는 거죠."
"현재를 산다면 삶도 죽음도 영원할지 모르겠네요. 오늘부터, 아니 지금 이 순간부터 저에겐 현재가 가장 소중할 것 같아요."p.99-100

사랑이 궁금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고프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아프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고통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희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 죽어버렸다.p.149-150

남색. 파란색에 까만색이 섞인 것처럼 보이는 이 색은, 실은 파랑과 보라를 혼합한 색이야. 그래서 우리는 이 색을 딥퍼플이라고도 부르지. 보라는 빨강과 파랑을 섞어서 만들어. 그러니까 남색에는 파랑과 빨강과, 파랑이 섞여 있는 것이지. 파랑 두번에 빨강 한 번. 남색에 빨강이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 있어? 이 책의 저자는 파랑을 아폴론의 색, 빨강을 디오니소스의 색이라고 말해. 아폴론은 이성을, 디오니소스는 감성을 지배하지. 그동안 한 번도 남색에 빨강이 있다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아니, 빨강은 남색 안에는 있어서는 안 되는 줄만 알았어. 그런데 있었어. 빨간색이 말이야. 남색 안에.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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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역사산책 : 개항도시편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지음 / 시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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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걷기 열풍이다. 평소에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각 지자체마다(시/군) 각자 나름의 산책코스를 만들어 놓고 있다. 지방을 여행할 경우 그 지역 관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코스 지도가 잘 나와 있으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골목길 역사산책, 개항도시 편>은 부산, 인천, 양림동, 순천, 목포를 소개한다. 이 책을 잘 설명한 책 뒷표지글을 소개한다.

 

 

"우리에게 근대와 개항은 무슨 의미인가? 오늘의 우리를 알기 위해 근대와 개항의 특별한 현장이 살아 숨쉬는 5개 개항도시를 찾아 나선다

피난민, 이민자, 외지인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준 부산 개항장 소통길. 그 길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꼭 필요한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발견한다. 인천 개항장 제물포를 막아 국토를 지키려 했으나, 일본, 중국, 서양에게 내주고 근대를 일궜다. 그마저도 일본에 빼앗겼다. 전쟁의 상처 가득한 인천 개항장에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죽음의 자리에 근대로 가는 길을 개척한 광주읍성 밖 무덤자리 양림동 근대길을 걸었다. 목숨 바쳐 일제에 맞서며 근대를 이루어낸 양림동 사람들은 당당한 대한민국과 대한국인을 요구한다. 순천에서는 봄마다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꽃이 핀다. 그 꽃길에서 근대를 열었다. 겨울과 봄, 전통과 근대, 반란과 봉기의 경계에 선 순천을 걷는다. 뒤늦게나마 자주적으로 개항하여 근대로 가는 생명 도시로 거듭나려 했으나 결국 식민지 수탈도시로 전락했던 목포 개항장 생명길에 나선다. 식민의 한조차도 흥으로 이겨낸 목포 개항장에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맴돈다. 역사산책자는 오늘도 걷는다."

 

 이 책은 골목길을 소개하면서, 그곳에 실린 우리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에서는 부산 코스를 살펴본다.

 

부산역 → 브라운핸즈 백제 → 초량교회 → 168계단 → 김민부 전망대 → 장기려기념관 → 이바구공작소 → 역사의 디오라마 → 40계단 문화관 → 백산기념관 → 용두산공원 → 부산근대역사관 → 보수동 책방골목 → 부평통 깡통시장 → 국제시장 → 자갈치시장이다.

그 지역에 대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곳이 어떤 곳인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근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왜 장기려박사를 바보라고 부르는지, 부산 시민은 왜 그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장기려박사의 행적에 대해 설명해준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거라고, 장기려박사에 대해 전혀 모르고 기념관을 둘러보는 것과, 어떤 인물인지 미리 인지하고 살펴보는 것은 분명 그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부산에 가면 늘 들렀던 용두산공원. 이모댁이 대청동 부근이라 부산근대역사관이나 용두산공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이다. 오래전부터 중국,일본사람이 부산에 들어와 살았고, 청관거리, 왜관거리라고 불렸고, 초량왜관이 이 용두산 공원 주변에 설치되었고, 그 규모가 자그마치 10만평이었다는 것, 지금은 흔적도 없이 싹 쓸어버렸다는 것, 대단한 부산인들을 느낄 수 있다.

 

영화로 우리에게 알려진 40계단은 바다 위 신도시와 가파른 산동네를 잇는 계단이었다는 것.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꼬치집이 많아 술꾼들이 몰렸고, 6.25 전쟁때는 피난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아침저녁으로 넘다들던 고달픈 삶의 계단(p.72)이라고 설명한다.

 부산 근대역사관에서 남포동쪽으로 걸어가면 동광성결교회 앞 네거리가 전국 최대 규모의 헌책방 골목,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지금은 커피숍, 대형 헌책방, 문화관, 고서점, 외국서적이나 전문서적 등 특화된 헌책방도 몰려 있다고 하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나들이 겸 책향기를 흠씬 맡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이 밖에도 영화에 나오는 국제시장, 누구나 다 아는 자갈치시장, 부평시장 등등. 부산역 5번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차이나타운부터 시작하는 이 여정이 보는 재미, 먹는 재미, 깨닫는 재미까지 선사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골목길에 어떤 역사가 깃들어 있는지, 이 골목길에 내가 모르는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 생각할 수 있다면, 어느 곳을 가더라도 그곳이 역사공부의 현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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