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주노초파람보
노엘라 지음 / 시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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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사랑만으로 살 수 있을까?(뒷표지 문구)

띠지에 "소설 출간과 동시에 영화화 확정 화제작!"이란 문구가 있다.
영화가 대박이 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왜 영화화 할 수 있었는지는 알 것 같다. 이 소설은 영상이 그려진다. 등장인물 간의 관계, 그들의 성향, 그들의 삶 등이 이미지로 그려지는 소설이다. 어떤 감독이 어떻게 연출할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이 퇴색되지 않길 바란다.

목차를 보고 처음엔 단편모음집이었나 싶었다. 야간비행/빨주노초파람보/딥퍼플/이카루스 네 개의 제목을 안고 현재, 은하, 승환, 상윤, 지연, 소희 각각의 이야기는 단편집같지만, 연인, 동료, 부부, 친구 등의 관계 얽혀 있어 하나의 장편을 이루고 있다. 

처음 읽고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수습할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를 사랑이라고, 혹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땅을 밟고 서 있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두둥실 떠 있는 내 마음에 그 토대를 쌓고 말았다. 

두번째 읽으면서 모든 이야기에 복선이 깔려 있음을, 왜 현실과 꿈을 오가며 괴로워하고 아파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살아내고자, 현실을 살아내고자 있는 힘을 다해 애쓰듯,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각자의 색깔을 찾고자, 자신의 자아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현실에서와 같다. 그 바탕엔 '사랑'이라는 이름이 깔려 있다.

현재와 은하는 사랑하는 사이다. 공군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현재는 문화부 기자 출신 은하의 취재로 같이 시범비행을 하게 된다. 이때 현재는 은하에게 프로포즈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생겼고, 은하는 프로포즈를 받을 수 없었다. 결혼하기 전이지만 둘은 동거를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 신혼생활을 겪어본 나로서는 격하게 인정한다. 그 아름답던 일상생활이 사고로 인해 어떻게 바뀌어 가고, 그 사고의 이면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이 둘 사이에 관계된 친구, 동료들은 또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내 안의 나는 어떤 친구인지, 더위가 차츰 사그라드는 요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와 지친 우리 마음을 달래주고 있는 요즘, 사랑을 바탕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모르고 지나쳤던 또다른 나에게 어떤 모습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꿈이 깨어 있는 현실의 반영이라면, 현실 역시 꿈에 대한 반영이다.-르네 마그리트- p. 49

"이름이... 이, 현재요? 과거 현재 미래 할 때?"
"네 맞습니다. 이현재, 은하 씨는 셋 중에 뭐가 젤 좋으세요?"
"글쎄요, 음.... 미래?"
"왜요?"
"미래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 그때를 상상하면 그 순간만큼은 편해져요."
"마치 죽음을 꿈꾸는 것처럼 들리네요."
"삶과 죽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니까. 어쩌면 삶을 꿈꾸는 걸지도 모르죠."
"현실이 싫다면 이 현재는 어떠세요?"
"네?"
"미래를 상상하는 순간만큼은 미래가 아닌 현재니까. 그러니까 그 상상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미래가 아닌 이 현재의 시간이라는 거죠."
"현재를 산다면 삶도 죽음도 영원할지 모르겠네요. 오늘부터, 아니 지금 이 순간부터 저에겐 현재가 가장 소중할 것 같아요."p.99-100

사랑이 궁금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고프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아프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고통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희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이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 죽어버렸다.p.149-150

남색. 파란색에 까만색이 섞인 것처럼 보이는 이 색은, 실은 파랑과 보라를 혼합한 색이야. 그래서 우리는 이 색을 딥퍼플이라고도 부르지. 보라는 빨강과 파랑을 섞어서 만들어. 그러니까 남색에는 파랑과 빨강과, 파랑이 섞여 있는 것이지. 파랑 두번에 빨강 한 번. 남색에 빨강이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 있어? 이 책의 저자는 파랑을 아폴론의 색, 빨강을 디오니소스의 색이라고 말해. 아폴론은 이성을, 디오니소스는 감성을 지배하지. 그동안 한 번도 남색에 빨강이 있다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아니, 빨강은 남색 안에는 있어서는 안 되는 줄만 알았어. 그런데 있었어. 빨간색이 말이야. 남색 안에.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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