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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 - 시인 리디 다타스가 모으고 되살린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들
크리스티앙 보뱅.리디 다타스 지음, 신승엽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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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4MgeLBkavE?si=Xfp81r-bOOvv8mFu

자연은 매순간 변화하고 매일매일 색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던 어제는 늦은 장맛비가 하루종일 내렸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비구름이 물러간 자리에 밝은 하늘이 내비치며 싱그러운 새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지루해 할 틈 없이 어제의 얼굴과 오늘의 얼굴이 다른 자연의 모습이다. 나도 평소 감각이 예민한 편이고 세상을 바라볼 때 장면을 포착하여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읽으면서 작가가 지닌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의 깊이가 궁금해졌다.

"나는 자연을 간헐적으로만 보러 간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 커서 벅차기 때문이다. 금화와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 앞에 오래 머무르는 것과도 같다. 그러다 보면 눈이 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두세 개의 보석만을 챙겨 돌아온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너무 커서 벅차기 때문에 간헐적으로만 보러 간다고 말한다. 그 외에도 눈으로 본 것을 관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통찰을 이끌어낸다. 사교계와는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도 완전히 은둔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소박한 연대를 이어가며 특히 노인이나 어린이들과 교감했던 그의 생애는 그의 글에서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타인을 공감하는 일에 대해서도 “타인을 거의 그가 되어버릴 만큼 느껴야” 하지만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감은 끝없이 확장되어 스스로를 잃”기 때문이다. 이런 예리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부정적인 내면으로 침잠하기 보다는 밝은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위해 힘썼다. 문학에서도 다양한 작가들의 책을 접하고 수용하면서 한때 길을 잃었을 때가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찾아냈다. 작품을 읽음으로써 독자를 책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진정한 세상과 마주하게 하는 책, 눈 앞에 날 것의 현실과 경이로움, 그리고 어린아이의 미소 같은 소박하고 평범한 기적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를 단순히 호오의 개념이 아니라 옳고 그름으로 구분을 한다.

보뱅의 관점에서는 프루스트가 틀렸고, 도스토옙스키는 옳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표작을 비교해봤을 때, 내면으로의 끊임없는 탐구와 침잠을 보여주지만 그 방향성은 다르다. 프루스트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내면 탐구를 통해 오히려 단단한 자아를 재건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반면,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의 자아가 붕괴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뱅은 이처럼 비대한 자아는 세상의 빛을 단절시키는 벽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프루스트는 틀렸으며, 도스토옙스키는 옳다는 직설적인 표현을 쓰고, 그 외에도 여러 작가들을 분류하여 시비를 가린다. 보뱅이 말하는 그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보뱅은 오직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함으로써 기교에 집착하는 탐미주의를 거부한다. 문화적 우월감이나 지적 허영을 부추기는 작품은 자아에 높은 벽을 세워 독자가 세상과 단절될 위험성이 있음을 우려하고, 그러한 작품에서 작가 자신의 거대한 자아를 전시하여 작가가 우상화되는 것을 비판한다. 하지만 보뱅이 추구하는 태도와는 상반되게 『세상의 빛』에서 보여지는 보뱅의 글 또한 굉장히 탐미적인 느낌을 준다.

그가 경계하는 아름다움과 그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시적인 아름다움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프루스트는 스쳐가는 감각 하나조차도 놓치지 않기 위해 문장을 끝없이 덧붙여가며 완벽을 창조해내고, 이때 독자들은 현실의 감각보다는 주인공의 내면이나 프루스트가 창조해낸 홍차와 마들렌에 매몰되어 버린다. 압도적인 문장에 독자는 작가 앞에 굴복하게 되고 작가는 우상화된다고 보뱅은 말한다.

보뱅의 문장은 그와는 반대로 독자의 시선이 세상의 바깥으로 향하게 하면서 평범하여 잊고 있었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가졌지만 몰아치며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행간에 여백을 주어 그 사이를 독자가 스스로 사유하고 머물 수 있는 다정함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내면으로 끝까지 파고들어 진리를 깨닫는 것, 다른 하나는 나를 비워내고 세상의 빛을 마주하는 방법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보뱅은 자신은 맞고, 프루스트는 틀렸다고 규정짓지만, 나는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위에서도 말했듯 나는 장면을 집중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나 문학에서도 분위기, 장면의 공기까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너무 내부의 감각에 매몰되기 보다는 바깥의 세상으로 시선을 돌릴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깊이 치우치기 보다는 양쪽의 좋은 작품들을 다양하게 읽으며 그 중간쯤에서 균형을 맞추면 되지 않을까.

책은 얇지만 읽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 편인데, 빠르게 읽기 보다는 문장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온전히 소화하고 싶은 마음에 더 천천히 문장들을 반복해서 읽었다. 좋은 문장이 많아서 밑줄을 굉장히 많이 치면서 읽었고, 살아가면서 언제든 세상의 빛과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어느 페이지든 펼쳐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보뱅은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집중해서 오래 바라보고 최대한 정직하게 바라보려 했고, 그의 문장에서는 따뜻한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내 모든 책들이, 심지어 앞으로 나올 책까지 모두 사라진다 해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단, 이 한 문장만은 남았으면 한다. "비록 단 한번이라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다는 확신이 마음을 빛 속에서 영원히 날아오르게 한다."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갈 수는 있겠지만, 이 문장만큼은 내 책 속에 쓰인 것만큼이나 내 안에도 깊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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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리커버)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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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와 경애의 궤적은 사랑했던 날들, 떠나보낸 사람, 살면서 숱하게 상처 받았던 날들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

나이에 맞지 않게 사회적 눈치라는 것은 한참 부족하고, 개인적인 친분을 쌓기에도 언젠가 ― 본인은 절대 의도하지 않았지만 ― 뒷통수를 한대 칠 것 같은 어리숙한 상수(실제로 뒷통수를 맞은 사람이 있으니 느낌만은 아닌 듯).

파업에 참여했다가 회사에서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혀 눈칫밥 먹으며 조용히 회사에 다니고 있는 비주류 느낌의 경애. 약간은 카리스마 있고 퉁명스러운 느낌을 준다.

회사에서는 형식적인 부서를 만들어 골칫덩어리인 두 사람을 유배시킨다.

친해져 보려는 상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애와 편한 사이가 되는 건 쉽지 않은데, 이야기가 진행되며 두 사람은 몰랐지만 서로 과거 어느 시절의 추억으로 연대하고 있는 관계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업무적으로, 개인적으로 얽히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고 빛바랜 과거의 조각들을 보게 되면서 왠지 모를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상수가 자라오며 느낀 결핍,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보며 어쩌면 상수는 어린 시절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마음의 일부분은 어린 시절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그런 그가 아버지가 나빴다고 말할 수 있게 됐을 때에야 비로소 마음 속 울타리에 갇혀 있던 어린 상수를 놓아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상수는 이중 생활을 해오며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비록 시작은 외부 요인이긴 하더라도)자신의 의지로 동굴 밖에 모습을 드러낸다. 더 이상 누구의 뒤에도 숨지 않겠다는 그의 강인한 의지는, 경애로 인한 작용으로 보인다. 경애를 만나고, 경애를 알아가면서, 이전의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탈피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상수의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너무 옛날이지만 경애가 그 시절 많이 사랑했고, 동경했던 E. E는 영화를 사랑했고 홍대 감수성을 몇 스푼 뿌린 사람 같지만 겉멋이 들기 보다는 속이 꽉찬 다정한 사람이다. 그런 그를 갑작스럽게 떠나 보내고, 어른이 되어 만난 산주도 얼마간의 상처를 남기고 떠났지만 경애는 그들을 마음 속에서 놓지 못한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툴툴대는 것 같지만 한 번 마음이 가면 그 정이 너무 깊어 떠나 보내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경애의 마음을 읽으며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같다. 정 때문에 쉬이 놓지 못했던 지난 날의 한 시절이 떠오르면, 상수가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는 위로를 전해준다.

두 사람은 같이 아옹다옹하기도 할 뿐더러 각자의 방향으로 삐걱거리느라 한참을 돌아가는 사이처럼 보이지만, 지금 둘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함께 앉아서 도란도란, 하지만 약간은 쓸쓸한 마음을 안고 다정하게 E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그리고 둘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모습일 것 같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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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들의 메아리
바버라 데이비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퍼블리온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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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처음부터 사건으로 사람을 끌어당기지 않는다. 대신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시작한다. 낡은 종이를 손끝으로 넘기는 감각, 오래된 페이지에서 올라오는 냄새, 누군가의 시간이 얇게 눌어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 오래된 책들의 메아리는 딱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야기가 빠르게 달리기 전에 먼저 분위기로 독자를 붙잡고, 그 분위기가 어느 순간 궁금증으로 변한다. 왜 이 책은 이렇게까지 ‘책’ 자체를 중요하게 다루는 걸까. 그리고 그 책들이 품고 있는 마음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주인공 애슐린은 희귀본 서점을 운영한다. 설정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애슐린이 책을 대하는 태도가 꽤 진지하게 그려져서 좋았다. 책을 좋아한다는 말이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고 감각처럼 느껴진다. 책의 손때, 종이의 무게, 누군가의 시간이 남아 있는 물성 같은 것들이 이야기 안에서 허투루 소비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초반부터 자연스럽게 공감이 붙는다.

특히 아래 문장들을 만난 순간부터 이 소설이 더 궁금해졌다.


책이 감정이야. 책은 우리에게 감정을 느끼게 하려고 존재하지. 우리를 우리의 내면과 연결해주기 위해, 가끔은 우리가 자기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들과 연결하기 위해 존재해.


독자 없는 책은 백지와 같다. 어떤 숨결이나 맥박도 없는 단순한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세계에 일부가 되는 순간 생명을 얻게 돼서 그때부터 과거와 현재가 생긴다.


이 문장들이 예쁘기만 해서 남는 게 아니라, 소설이 실제로 그 감각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움직인다. 제목의 ‘메아리’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애슐린은 어떤 책을 손에 들었을 때, 그 책에 남아 있던 감정을 잔향처럼 고스란히 느낀다. 이게 과장된 장치처럼 튀기보다는, 우리가 책을 읽다가 문장 하나에 갑자기 마음이 건드려지는 순간—내 안에 있던 감정이 예상치 못하게 올라오는 순간—을 조금 더 선명하게 서사화한 느낌이라 설득력이 있었다.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이 정도면 ‘메아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감이 올 것 같다. 소리가 아니라, 책 속에 남아 있던 마음이 현재로 되돌아오는 방식에 가깝다.


그리고 이 소설이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는 건 『후회하는 벨』과 『영원히, 그리고 다른 거짓말들』이라는 두 권의 ‘책 속의 책’이 등장하면서다. 두 권은 같은 사랑과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결로 보여준다. 한 권을 읽을 때는 이게 진실이겠지 싶다가, 다른 한 권을 읽는 순간 방금 믿었던 감정이 흔들린다. 그래서 독자는 누가 맞는지 판정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사람은 왜 자기 이야기를 저런 방식으로 쓰는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강조하는지,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이 왜 더 큰지 같은 것들을 더 보게 된다. 액자식 구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서 꽤 만족할 확률이 높다. 실제로 ‘책 속의 책’ 파트 자체가 흡입력이 강해서, 다음 장을 자꾸 넘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좋았던 건, 로맨스를 달달함으로만 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사랑이 끝나는 이유를 한 사건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오해와 침묵, 자존심과 타이밍 같은 것들이 어떻게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지 천천히 쌓아간다. 그래서 결말까지 다 읽고 나면 사건보다 감정의 형태가 더 오래 남는 편이다. 반대로 말하면, 중간중간 답답함을 느낄 독자도 있을 것 같다. 왜 지금 말을 안 해? 싶은 순간들이 있긴 한데, 나는 그 답답함 자체도 이 이야기의 정서와 맞물린다고 느꼈다. 말하지 못해서 더 커지는 마음, 늦게 도착해서 더 아픈 진실 같은 것들.


전체적으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특히 잘 맞는 소설이다. 책이라는 물성 자체에 애정을 갖고 있고, 오래된 책의 분위기나 희귀본 서점 같은 공간을 좋아한다면 시작부터 몰입하기 쉽다. 거기에 ‘책 속의 책’ 구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가 더 확실해지고, 한 번 흔들린 판단이 다시 흔들리는 식의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만족감이 크다. 읽고 나면 책이 사람에게 남기는 건 결국 감정이라는 말이, 그냥 문장이 아니라 경험처럼 남는다. 이런 타입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2025문학나눔 #문학나눔 #한국출판산업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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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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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https://youtu.be/TInOFyy6u8Y



몇 해 전 유행처럼 읽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최근 북토크를 계기로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재미있다는 인상과 몇 가지 충격적인 장면만 또렷했고, 나머지는 흐릿했다. 이번에는 노트를 옆에 두고 차분히 따라가 보았다. 왜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오래 남았는지, 나도 왜 다시 읽고 싶었는지 이해가 됐다.

이 책이 여기까지 오게 된 출발점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어린 저자는 아버지에게서 “세상에는 혼돈만 있다, 의미는 없다”는 말을 듣고 큰 혼란을 겪는다. 이후 가족의 상처와 우울의 시간을 지나 한 인물—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집요하게 매달리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인간의 의지와 욕망이 무엇인지 탐문한다. 조던의 이력은 드라마틱하다. 대지진으로 박물 표본과 이름표가 한순간에 뒤엉켜도, 그는 좌절 대신 다시 정렬하는 일을 택한다. 물고기에 이름을 붙이고, 깨진 표본에 새 표식을 달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체계를 만든다. 계속 밀어붙이는 힘이 어디서 나오나 따라가다 보면, 과한 자기확신과 자기기만이 드러난다. 이 책은 그 힘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보여준다. 덕분에 이야기가 ‘성공담’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묻는다.

서술 방식은 직선으로 달리지 않는다. 저자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변의 이야기를 끌어와 맥락을 만들고, 곁가지로 보이는 서사가 어느 순간 주제의 핵심을 비춘다. 처음 읽을 때는 “왜 갑자기 이 이야기가 나오지?” 하고 흐름을 놓친 대목들이 있었다. 재독에서는 그 비틀림이 주제를 입체로 만드는 장치였음을 이해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건을 좇는 대신, 각 장의 끝에서 “이 대목이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하며 읽었다. 혼돈/질서, 이름 붙이기, 집착, 윤리, 과정. 이러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나니 책의 흐름이 훨씬 또렷해졌다.

조던에 대한 탐구는 영웅담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저자는 그의 놀라운 복원력과 조직 능력을 인정하는 한편, 그 힘이 맹목으로 굳어질 때 생기는 왜곡을 함께 보여준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은 가치중립적이며, 무엇을 위해 누구와 어떻게 쓰느냐가 사람을 가른다. 이 인식은 책을 단순한 ‘동기부여 서사’에서 꺼내,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의 윤리를 질문하는 성찰로 확장한다. 결국 저자가 도달하는 자리도 “성취가 전부다”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그 성취를 만들었는가”에 가깝다. 나 역시 읽는 동안 현실적 유용성과 윤리적 비용을 생각해 보았고, 그 균형이 이 책이 말하는 삶의 태도의 중요한 요소라고 느꼈다.

데이비드 조던이 표본에 이름을 부여하던 작업에 있어서, 우리는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만들고 세상을 통제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행위는 세상을 이해 가능하게 바꾸지만, 동시에 세계를 너무 단순화해 보게 만드는 위험도 낳는다. 조던은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질서을 만들고자 했고, 저자는 그 욕망을 해부하면서 그것이 우리가 전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적 충동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책의 결은 비난이나 찬양으로 닫히지 않는다. 혼돈과 질서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태도, 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의심과 자기점검이 결론처럼 남는다.

저자의 이야기와 조던의 이야기가 조금은 두서없이 교차로 진행되는데 서사의 곁가지가 잦아 익숙하지 않으면 산만하게 느낄 수 있다. 다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나가다 보면 산만함은 주제를 입체로 드러내는 방법으로 읽힌다. 첫번째 읽을 때 “재미있는데 어수선하다”로 남았다면, 이번에는 더 깊이있는 독서를 경험하며 다른 질감으로 다가온 것 같다.

결국 이 책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 대가를 한 인물을 통해 끝까지 묻는다. 읽고 나면 성취의 속도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지, 인생에서의 중요한 것들을 먼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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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생활자의 요가 - 생각 많은 소설가의 생각 정리법
최정화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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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책상 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학생 때부터 책상 앞에 앉아서 교육을 받는데, 마치 인내력을 단련시키려는 듯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수업 시간은 점점 길어진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직에 취업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서 보내는 생활이 계속 이어진다. 이 책은 또 한 명의 책상 생활자, 작가인 저자가 육체적 건강을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가 심신 수련의 마지막 단계인 명상에 이르기까지, 지루하게만 여겼던 명상을 생활화하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장편소설을 쓰기 위한 체력 단련으로 운동을 시작했다가 요가, 카포에라, 주짓수를 동시에 배우며 ‘운동 강박’이라는 진단까지 받았던 저자는 결국 요가를 수련하기로 결정했고, 요가 교육사 과정을 수료한 뒤 수업까지 진행했다고 한다.

매일 글을 쓰면서 요가 강사까지 될 수 있었던 건 과연 명상의 힘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명상은 지루하고 심심한 활동으로 여겨지지만, 최근 웰니스가 부상하면서 마음챙김의 일환으로 명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많아진 듯하다.

평소 명상을 접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상이 바쁘고 할 일도 많고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요즘,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멈춘다는 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처음 명상을 했을 때 들었던 잡생각들을 솔직한 언어와 귀여운 그림으로 표현해 명상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친근하게 다가오게 한다. 저자가 실천하는 방법 중 인상 깊었던 것은 ‘명상은 양치질처럼’이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듯 ‘명상해야지’라는 마음을 크게 먹다 보면 한 번 할 때 제대로, 완벽한 환경을 조성하고 자리를 잡고 해야 할 것 같아 시작이 쉽지 않은데, 양치질하듯 가볍게 3분을 습관처럼 하는 방식은 부담을 줄여 주는 유용한 접근법이라고 느꼈다.

책이 작고 얇아 간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골랐는데, 읽다 보니 요가와 명상에 관한 친구의 수다를 듣는 기분이라 더 자세히 길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금방 끝나 버리는 게 아쉬웠다. 세상 무해한 표정으로 명상하는 사슴 캐릭터도 너무 귀여워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었다. 나도 종종 요가와 명상을 하는 편인데, 명상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분이라면 이 책을 계기로 명상의 길로 입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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