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 우리가 알지 못한 유럽의 속살
원종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역사는 발생한 사건과 사관의 기록인데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에서는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록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역사를 왜곡되게 이해할 수 있다. 패자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평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웠던 것이 전부였는데 이 책으로 인하여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튼튼해진 느낌이다.

 

본문 두 번째 페이지 독수리 문양에 대한 서술을 보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실감하였다. 로마제국의 적통과 부흥의 연관성을 갖고자 나치와 신성로마제국, 비잔티움,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상징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왜 생겨 났으며 유럽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0년 전의 공공 건축물과 도로망, 상수도 시스템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니 그 당시 로마의 선진적인 기술력이 과히 놀라울 따름이다.

 

로마제국이 멸망하는데 기독교가 일조하였다는 사실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뿌리가 구약성서를 공유하기 때문에 여호와나 야훼나 알라는 동일한 존재이며 아브라함의 종교라고 불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종교마다 배척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국 종교의 이름으로 특정 성향의 사람을 악으로 보고 증오하고 공격하는 것은 왠지 어색하고 우울하게 한다. 관용이나 사랑은 이교도나 이단에게는 용인되지 않고 오직 기독교도 내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발원이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같지만 중세전반에는 이슬람 세계가 유럽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문명화 되어 수학, 기하학, 물리학등 자연과학에서 우위에 있었으나 예루살렘을 탄환한다는 명분아래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의 요청으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주도하에 십자군이 창설되었으나 본래의 명분은 외면한 체 점점 비대한 조직으로 변화되면서 무지한 광신도로 변질되어 결국 악의 도당으로 변하여 무차별적인 유대교와 이슬람교도를 학살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팔백 년이 지난 현재도 백인문명에 십자군이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군대 이미지로 남아 탈레반이나 알카에다등 이슬람 세계를 공격하는 오만과 광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자아도취에 의한 그릇된 선의 신념은 무지와 광기로 성숙하지 못한 자아인 것이다. 그것이 제국주의, 군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백인사회를 중심으로 인종, 직업, 종교에 구애 없이 폭넓게 분포된 프리메이슨 회원들의 이야기는 과히 충격적이다. 이들이 십자군 내이 조직이었던 성당기사단의 후예들이며 새로운 세계의 건설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고 그것이 중소 기독교처럼 강력한 뭔가를 찾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파리의 자유 여신상 모두가 프리메이슨들의 선물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로마를 기독교가 어떻게 무너뜨렸을까? 첫째 유일신 때문이다. 로마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신을 인간과 동일시 하며 현실의 명예로운 삶을 강조하는데 기독교는 유일신을 내세워 사후 내세나 구원을 강조하기 때문에 로마의 사상적 기초를 흔들렸다. 둘째 제국과 황제의 권위를 약화시키는데 일조 하였다. 로마 황제라 하더라도 기독교 사상의 유일신 앞에서는 세속의 지도자일 뿐 세상의 잘잘못에 대하여 상벌을 주관하는 절대적인 힘은 갖고 있지 않으므로 결국 민초들과 같은 인간이며 로마 역시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는 인간 중심주의임 반면 중세는 신 중심주의였으며, 선신은 영의 세계를 지배하고 악신은 물질세계를 지배하므로 영성을 존중하고 추구하였다.

 

로마의 멸망은 기독교와 게르만족에 의해서이고 게르만족은 프랑크 왕국이다. 로마의 유산을 토대로 확립되었기 때문인지 중세, 근대, 현대까지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프랑크 왕국이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분할되었는데 타국의 정복을 받아 분할된 것이 아니라 프랑크 왕국의 왕자들에게 분할하여 나눠졌으므로 9세기 전까지 프랑크 왕국의 역사를 공유하다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중서유럽 여러 국가로 분할된 것이다. 그래서 샤를마뉴를 라틴어로는 카롤루스 마그누스, 프랑스는 샤를마뉴, 독일어는 카를, 영어로는 찰스라고 불리는 것이다.

 

로마제국처럼 유럽전체를 정복하려 했던 나폴레옹과 로마의 카이사르는 비슷하면서 다른 인물이었는데 저자가 서술한 내용이 흥미롭다.

나폴레옹 심각하고 차분하며 세심한 타입, 천재적이기도 하지만 노력형 인물, 엄청난 독서와 감상문을 작성, 고독하였기에 권력과 야망 그리고 여인의 집착, 권좌에 10.

카이사르 쾌활하고 낙천적이며 농담을 좋아함. 보잘것없는 외모로 귀부인에게 인기폭발, 진정한 천재로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면서 엄청난 성취를 이끌어 냈고 살해 됨, 로마제국의 완성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사실상 혼자 힘으로 이끔.

 

현대화는 서구화를 말하는 것이며 서구화는 르네상스와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거쳐 완성된 열강의 힘인 군사력과 경제력인 돈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책으로 침탈이 이루어졌으며 동양과 서양, 자본가와 노동자의 힘과 빈부의 차이가 휴머니즘과 계급타파, 평등의 정의를 내세우는 공산주의와 평등이라는 윤리 덕목에 근거한 사회주의가 발현하였다. 타국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체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일본의 제국주의, 독일의 나치즘, 무솔리니의 파시즘, 소련의 스탈린주의, 미국의 신제국주의가 최대의 역사적 오류이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에 대해 인터넷에서 발취하였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에는 편년체, 강목체, 기전체, 기사본말체등이 있는데 편년체는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연월일 순서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 일들을 볼 수 있고 인물이나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않으며 공자의 춘추나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이다.

강목체는 주된 내용을 요약한 강과 구체적 서술인 목으로 구성된 방식인데 사건에 대한 윤리적인 평가가 들어간다는 점이 특징이며, 조선 후기에 강조 되었고 시간의 스름에 따라 기록했다는 점에서 편년체 역사서술형식과 비슷하다.

기전체는 인물의 연대기라고 볼 수 있는 인물 중심의 역사서술방식인데 군주의 업적을 다룬 기와 여러분야에서 유명했던 인물의 전기인 전을 담고 있어서 기전체라 하고 군주 중심적이기에 정사의 경우 반드시 기전체로 편찬해야 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사기가 대표적이다.

기사본말체는 사건의 명칭을 제목으로 하여 관련된 기사를 이용하여 그 사건의 전개과정 및 결말을 기술하는 사건 중심적인 방식이다. 사건 중심적인 면은 강목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가장 근대적인 역사서술방법으로 평가된다.

 

지루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 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 아마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유익한 지식이었고 곁에 두고 100% 이해할 수 있을 때 까지 읽어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리랑 1 - 제1부 아, 한반도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리랑 하면 왠지 한이 느껴진다. 과연 아리랑이란 뜻은 무엇이고 유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인터넷을 찾아 보니 정확한 자료는 얻을 수 없었고 여러 가지 설만 있었다.

첫째 고차원적 성리학자가 생산한 개념의 아리랑 조선 사회의 고위 귀족이자 성리학적으로 지고한 철학을 가진 양반 사대부들이 생산한 초기형 아리랑으로 송강 정철이나 고산 윤선도등이 가사문학에서 임금을 사모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인데 그 의미가 약해지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지역적 가족적 생활공동체를 바탕으로 바뀌었다가 자신이 멋지다, 착하다, 현명하다, 곱다, 끝내준다 의미로 변화되었다가 좀더 소박하고 서민적이고 개인적 의미 즉 남녀간의 애정, 고부간의 갈등, 이웃간의 관심사, 직업적 시각의 표현 등으로 변화되었으나 외세에 시달리며 고단한 삶을 표현하면서 민족적 정서를 자극하는 내용을 담거나 시대적인 내용이나 서정적인 내용의 아리랑으로 변하였다.

둘째 성리학적 개념의 아리랑을 정착한 아리랑 성리학적 사상이 뿌리내려 성리학적 사고방식이 갖춰지자 천리, 순리, 합리, 요리, 사리, 대리인, 섭리등 리적 사고방식에 의한 아라리 라는 말이 생산되어 시조와 같은 가사로 사용되다가 지방으로 퍼져나가 정착되었는데 사회의 부정부패로 백성의 생활이 궁핍해지고 민란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지방민요와 가락이 만나 섞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의 설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사적으로 첫 번째 설에 마음이 간다.

지역 감정이 생겨난 것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발생하였고 균형발전이 안된 이유를 찾아 보면 전라도 지역은 평야가 많아 먹거리가 풍부하여 전라도 지방이 부유했고 상대적으로 경상도 지방은 평야가 적었기 때문에 일찍 공업화가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렀다. 그런 이유로 의병활동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들이 전라도에 많았던 것 같다. 아마 일본에서도 서울을 장악한 다음 식량을 장악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해서 호남평야가 공간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무능한 지도자는 적보다 무섭다. 얼마나 섬뜩한 말인가? 오랜 시간을 걸쳐 쌓아온 국력을 무능한 지도자로 인하여 한 순간에 몰락해 버리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보면서 알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기득권들은 복지부동 하여 자신의 잇속만 챙긴다.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수 많은 민초들의 피를 빨던 기득권이 호위호식 했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자손들이 그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그의 조상들이 친일을 했다고 하여 연좌제로 묶는 것도 맞지 않지만 양심이 있는 자라면 그 기득권은 내려 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숨 마쳐 애국한 자손들은 처자식을 돌보지 못해 배곯고 배움이 미천하여 국가나 국민을 위해 일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반대로 매국을 한 자손들은 잘 먹고 신식교육은 물론 유학까지 갔다 오는 바람에 요직에 않게 된다. 이런 불합리를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혁명이 일어나 천지개벽 것뿐이다. 각종 미사어구로 미래가 중요한데 왜 자꾸 과거를 들먹이냐는 궤변으로 국민을 세뇌시켜 주도권을 다시 가져가고 있다. 왜 국민들은 그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주인공 송수익과 임병서 같은 행동하는 지식인들이 지삼출 같은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왜곡되지 않는 사실을 전파하고 독려해야 올바른 세상을 기대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찜찜한 기분이 들었고 화가 났다. 그 당시 사람처럼 상감에게도 화가 나고 대감들에게도 화가 났다. 우리나라는 그 당시와 다르지 않는 위협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 동북아공정으로 역사를 왜국 하는 중국이 있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일본도 있고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이 있다. 이런 위험 속에서 국민들의 합리적인 판단이 없다면 우리는 어두운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손병흥 2012-12-27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리랑 고개]

詩人/靑山 손병흥


힘들고 어려운 시기와 삶의 과정 슬기롭게 넘겨
다가오는 여러 고비들을 다양한 감정의 상징으로
고달픔 슬픔 서러움 안타까움 억울함 표현한 고개

오랜 세월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시대와 희망의 내일을 맞이하겠다는 마음다짐
구전으로 전해져 불리어왔던 아리랑 우리 민족의 노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가 가사 선율에 담겨져 있는
기쁘거나 슬플 때 일할 때나 놀 때 함께 어울릴 때
언제 어디서나 구슬픈 목소리로 즐겨 불렀던 아리랑
이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도 등재되어진 그 노래

레몬향 2013-01-07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고구려 4 - 고국원왕, 사유와 무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모용외는 주아영을 만나기 전 2명의 여자에게서 2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아영을 만난 후 여색을 탐하지 않았으나 술을 마신 후 욕정이 오르자 천하에서 가장 못난 여인을 데리고 오던지 짐승을 데려오라명령한 다음 짐승에 가까운 여자에게 욕정을 풀었는데 그때 생겨난 아이가 그의 셋째 아들 모용황이다.

 

을불과 주아영 사이에서도 첫째 사유와 둘째 가 태어났으며 사유는 성격이 온순하고 서화를 좋아하고 백성을 가엽게 생각하는 반면 무는 성격이 활달하고 무예를 좋아하여 왕후를 비롯한 문무백관들이 한 목소리로 무를 후계자로 삼을 것을 희망하였으나 을불은 사유를 태자로 책봉한다. 이에 아영은 불만을 제기 하였으나 을불은 사유와 무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며 사유가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에 태자로 삼았다고 하자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모두들 수긍하였다.

 

최비의 계략으로 진나라와 고구려가 동맹하여 모용외를 제거하려 하였으나 원목중걸에게 계략이 발각되어 동맹은 깨어지고 결국 최비는 고구려로 망명을 한다. 한편 패권을 잡은 모용부는 후계자를 선정을 하고자 하였는데 모용황이 모용광의 목을 베고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고 고구려 토벌을 부르짖는다.

 

사유는 숙신마 백여마리를 끌고 모용부의 사신으로 가서 협상을 하였으나 모용황이 고구려 사신단이 변을 당하고 원목중걸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보존한 채 추방 당하고 모용부와 고구려는 존망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싸움 중 왕자 무가 포로로 잡히게 되자 여노는 모용부로 들어가 자신과 교환할 것을 요구하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에 을불은 분노하여 직접 전장으로 뛰어 들자 창조리가 죽음으로 이를 만류한다.

 

을불은 전쟁을 앞두고 훈련장을 순시하다 고구려 병사가 실수로 쏜 화살을 맞아 몸이 급속도로 쇠약해 지고 모용외는 자객으로 온 무에 의해 칼을 맞았으나 주아영의 자식임을 알고 살려 보내자 모용황은 모용외를 폐위하고 자신이 대선우의 자리에 앉는다. 모용황은 고구려와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으나 어떤 사유로 인하여 패색이 짙자 후퇴하고 모용외 시대에 이름을 떨쳤던 장수들의 목을 쳐 훗날을 도모하였고 을불 또한 전장에서 생을 마감 하였다.

여기서 두 후계자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연약해 보이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고 대립보다는 협상이 백성을 이롭게 한다는 내유내강 형의 리더십을 보인 사유와 고인 물은 썩고 매너리즘에 빠지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강력한 지도력을 보인 모용황의 리더십이다. 어느 리더가 옳고 그른지 이분법을 적용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필요한 리더는 사유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무협지를 보는 듯 흥미로웠다. 4권이 마지막 인 줄 알았는데 5권이 기다려 진다. 아버지들이 하지 못한 일을 자녀들이 해결을 봐야 한다. 광활한 고구려의 영광을 보고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12-14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ttp://blog.naver.com/rataru?Redirect=Log&logNo=90158943975
여기도 김진명의관한소설 많던데요 가보세요
 
고구려 3 - 미천왕, 낙랑 축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진명 작가의 다작에 대해 깊이가 없다고 폄하하는 평을 들었다. 이 말에 공감할 수 없다. 세상에 모든 학생들이 일등일 수 없듯이 모든 작가가 깊이 있는 문학작품만 써야 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독자가 선택할 몫인 것이다. 깊이 있는 작품을 보고 싶은 독자는 그런 작품을 흥미위주의 작품을 원하면 그것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소설이 fiction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사실 속에서 전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고구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역사사도 아니고 깊이가 있는 문학작품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고구려라는 책을 통해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동북아공정으로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야욕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 역사조차 알지 못하면서 우리 것이라고 어필하는 것이 모순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저자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야기의 흐름이 빠르고 무협지와 같은 흥미 때문에 빠르게 읽었지만 3권의 포인트는 낙랑의 최비와 고구려의 을불, 선비족 모용외의 리더십과 통치 행태가 아닌가 싶다.

최비와 모용외는 착실하게 준비해온 리더라면 을불은 새로운 리더의 탄생이다.

최비는 주관이 분명하고 규칙준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로 지적이고 자기관리가 뛰어지만 결과 중심적이고 완고한 이미지 때문에 감성보다는 이성에 근거해 결정을 내래는 냉정하고 차가운 원리원칙형 리더로 보인다.

모용외는 건곤일척형 리더로 호기심과 모험심이 많고 고집이 세나 철두철미함이 부족해 간혹 실수를 범할 때가 있다. 이런 리더의 곁에는 철두철미하고 신중한 안전지향형의 원목중걸 같은 참모가 필요하다.

을불은 사람의 니즈와 마음을 읽는 능력이 탁월하여 대인관계가 좋고 조직원들에게 강한 비전과 목표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무성호인형 리더이다.

세 리더의 리더십 중 호불호를 가름할 수 없고 각각 장단점이 있어 보인다.

 

을불이 고구려 미천왕으로 등극하고 주아영과 혼인을 한다. 주아영은 낙랑과의 전쟁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삼각관계의 한 사람이었던 소청을 제거하고 백제로 하여금 낙랑을 견제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는다. 낙랑과 전투에서 승리를 앞두고 있는데 낙랑이 조선유민들을 성에 메달에 방패로 삼자 을불은 퇴각하려 한다. 이에 창조리는 전쟁하는 목적을 묻고 민초의 피는 붉고 병사들의 피는 푸르다고 여기십니까?로 설득하고 고노자 장군은 유민들에게 가서 고구려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설명하고 기꺼이 죽어 달라고 당부하고 자신이 죽음으로서 본보기를 보인다. 결국 이 두 사람의 살신성인 정신으로 낙랑을 추출된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낼 수 없다. 리더의 곁에는 훌륭한 참모들이 많을수록 leadership은 훨씬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세 리더 곁에도 뛰어난 참모들이 있었지만 유독 고구려에 유능한 참모가 많이 포진되어 있는 것은 작가의 의도인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 선비족의 모용외에 대해 호감이 갔다. 단순 무식하게 보이지만 심사숙고하는 면이나 주아영과의 약속을 지키는 부분에서 적이지만 그릇이 크다고 생각 하였다. 재미도 재미지만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파헤쳐보는 재미도 내용 못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구려 2 - 미천왕,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을불이 숙신 땅에 들어와 배가 고파 마을을 기웃거리던 중 부부가 가마솥에 음식을 삶는 것을 보고 돈을 줄 테니 나눠먹자고 했더니 부부는 거절하였다. 이유를 알지 못한 을불 일당은 또 다시 요구하였다. 이에 아내는 울면서 전식이라 나눠먹을 수 없다고 하였다. 傳食(전식)이 뭐냐고 물었더니 끔찍하게도 옆집 아이라고 하였다. 자기 아이를 본인들이 먹을 수 없으니 자녀가 죽으면 이웃집과 바꿔 먹는다고 하였다. 얼마나 가슴 아픈 모습인가? 도대체 고구려의 지도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무능한 지도자는 적보다 무섭고 목소리만 크다고 했다.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민이 사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왕의 몫임을 인지 하지 못한 체 공포정치로 모든 이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최비는 낙랑을 안정시켜 힘을 기른다. 그러던 낙랑 관리와 협상이 원활하지 않아 주아영이 옥에 갇히게 되자 모용외는 낙랑을 쳐들어와 최비와 대립하는데 최비의 유화정책에 휘말려 모용외는 의형제를 맺고 동생의 예를 갖추고 협력하기로 협상한다.

최비나 모용외는 서로의 됨됨이를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속마음을 숨긴 체 서로를 이용하고자 하였다.

한편 소청은 고구려로 들어와 을불의 소재를 찾다가 못 찾아 결국 고구려 내부간세인 서전까지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낙랑으로 돌아 간다.

을불은 숙신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상부를 제거하려고 하는데 명장 고노자에게 고립되자 을불은 전령으로 위장하여 상부를 죽이려 하는데 실패하자 이때만을 기다리던 창조리의 도움으로 상부를 제거하고 15대 미천왕에 등극한다.

 

참모로서 창조리의 역할을 보면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 이년도 아니고 수십 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와신상담하여 주군과의 약속을 지킨 점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내로서 모용외의 실행력 또한 대단하다. 일개 아녀자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목숨을 내 놓을 만한 사내가 얼마나 될까? 모용외라는 인물이 꽤 매력있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주아영의 지혜 또한 제갈공명 능가할 수준이다. 여자로서 가질 수 없는 대담함과 선견지명이 대단하다. 만약 이가 고구려를 선택하지 않고 최비나 모용외에게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백성을 위한 리더는 역사에 기리기리 남는다. 무기를 만들어 군사를 일으키려 했던 철들을 모두 풀어 숙신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소시킨 을불은 존경 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시대에는 왜 이런 리더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하기야 정치가 혼자 힘으로 가능하던가? 절대군주주의였던 조선시대에도 왕이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소위 기득권들이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방어하는 바람에 ….

우리나라 현재는 어떠한가? 별반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랍시고 세워놓고 아래서 지네들이 다 해쳐먹고 있으니 언제쯤 국민을 사랑하는 진정한 리더가 나타날까?

이번에 대통령에 뽑힌 사람은 국민을 위해 일을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