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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맹목적으로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3년
전부터 무조건 읽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읽었던 책도 있고, 전혀
생소한 고전도 있다. 그 당시 고전을 읽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성인이 되어 읽으니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감동 때문인 듯 하다. 그런데
죄와 벌을 읽고 난 후 고전에서 얻는 색다른 감동뿐만이 아니라 좀 더 심오한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다. 고전이
현재까지 여전히 사랑 받는 이유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이 유명한 사람의 작품이 여전히 사랑 받는 이유는 비슷하다고 본다.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은 다빈치의 작품을 기호학으로 풀어 쓴 픽션으로 기독교와 갈등을
보이고 있지만, 다빈치의 작품을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재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의 사실여부를 떠나, 작품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 해석하면
될 듯 하다.
기왕 다빈치라는 사람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에
대해 좀더 알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는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였으며, 회화, 건축, 철학, 시, 작곡, 운동, 물리학, 수학, 해부학, 악기 제작 및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며, 키도 194cm로 훤칠하고 잘생기기 까지 했다고 한다. 부럽다.
다빈치 그림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첫째. 스푸토마 기법이라고 하여 안개와 같이 색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색 사이의 윤곽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도록
자연스럽게 옮아가는 명암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명암법을 사용했을 때 독특한 분위기에 온화하고 친밀한
느낌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모나리자의 묘한 미소가 이 기법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특징은 공기원근법을 사용하여 공간감을 표현했다. 공기원근법은 먼 곳의 대상이 고유의 색채를
잃어버리고 푸른 색조로 변하면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으로, 색채로 풍경의 원근감을 표시한다. 모나리자의 뒷배경이 하나가 아니고 두 개이며, 눈 높이가 달라져
시점의 변화나 사람들에게 착시를 주어 깊은 공간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세 번째 특징은 수학자 파치올리의 신성비례가 들어가 작품에 황금비율의 신비가 들어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으나, 죄와 벌 리뷰를 쓰다가, 삼천포로 빠진 것 같다. ㅋㅋ
이와 같이 죄와 벌도 모나리자 그림과 마찬가지로 독자의 시점에 따라 얼마든지 재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죄의 벌의 줄거리 자체만은 현대인들이 흥미로워 하거나 쇼킹한 소재는 아니다.
‘법을 공부하다 돈 때문에 휴학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절대 악이라고 생각한 고리대금업자를
살해하고 갑자기 등장한 그녀의 여동생까지 살해한다. 하지만 죄책감과 망상으로 정신 착란을 일으키며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 이에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두냐 그리고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와 그의 가족, 친구 라주미힌과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건이 진행되고, 주인공은
자수하고 시베리아 감옥으로 가서 죄값을 치른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가 크나 큰 감동을 주거나, 엄청난 교훈을 남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숨겨진 작가의
의도나 시사점을 찾아 가는 것이 쏠쏠한 재미다. 고전을 읽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해설에도 나와 있지만, 죄와 벌은 주정뱅이라는
단편소설과 참회라는 소설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작품이며,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작가가 뻬쩨르부르그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첫째 본인이 거주한 경험 때문이고, 둘째 가난한 뒷골목에서 볼 수 있는 값싼 선술집과 창녀, 주정뱅이와
거리의 악사, 가난한 수공업자와 상인, 고리대금업자 등이
범죄를 싹트게 하고, 그 모습이 인간의 정신세계와 닮아 있기 때문이란다. 즉, 공간적인 배경은 주인공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사건의 사회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철학적 사고를 하는 지성을 가진 몽상가에, 자존심과 자의식이 강한 젊은이에, 주변을 도울 줄 아는 휴머니스트에, 사랑을 갈망하는 낭만주의자이며 개성이 강한 인물이다. 주인공의 이름
라스꼴은 러시아 정교회의 개혁에 반발하여 분열되어 나온 구교도을 일컫는 말로 분열된 사람이란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소냐는 소피야라는 라틴어이며 지혜를 뜻하고, 성삼위
일체와 세계에 대한 우주적인 사랑을 내포한 존재로, 자기희생이라는 기독교적인 정신을 실천하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유로지비로 부르는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중세 러시아
정교적인 전통에서 ‘세상 속에서는 바보스러우나, 영적으로는
가장 지혜로운 하느님의 사람’ 이란 뜻이다.
소냐의 매개체 역할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여동생
두냐를 소냐와 비슷한 역할을 분담시키며, 루쥔과 스비드가일로프 등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라스꼴리니꼬프가 고리대금업자 자매를 살해했다고 소냐에게 고백하자, 소냐는 대지에 입을 맞추라고 한다. 그 이유는 창조자와 창조물의
성스러운 결합을 믿고 중재적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라주미힌은 어근인 라주움으로 이성을 뜻하기 때문에, 건전하고
상식적인 판단과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지닌 인물로 생생한 삶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인물이다. 또한 인간의 본성을 외면한 이론은 죽은 이론이라고 비판하며, 수학적인 계산으로 사회와 인류를 조직할 수 없으며, 오랜 역사가
되풀이 되면서 성취되고, 인간성 없이 진행되는 기계적인 개조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다채로운 삶을 살게
내버려 두라고 주장한다.
마르멜라도프는 직장을 팽개치고 알코올 중독자로 사는 것은 가족과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실을 두어, 논리와 이성에 의해 지배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모순을 표현하였다.
뽀르피리는 생명존중사상과 죄는 벌을 통해 정화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를 대변해주고
있다.
레베쟈뜨나꼬프는 사회에 내재하는 부조리와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급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인간의 모든 범죄는 환경에서 기인한다고 하며, 환경만 개선해 주면 범죄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사악한 천사의 역을, 소냐는
천사의 역을, 라스꼴리나꼬프는 천사와 악마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역을,
마르멜라도프는 나약한 인간의 역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주인공의 살인 동기 또한 모호하다. 살해하고
돈을 훔쳐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살해 후 정신착란을 일으키긴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백해무익한 이에 불과한 노파를 살해한 것뿐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비범인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노파를 살해했다는 형이상학적인 변명을 하지만 곧, 노파의 살해는 자신의 살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생각이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꼬리를 물고 늘어지듯, 이
작품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