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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9
너대니얼 호손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평점 :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독서 테마는 고전읽기다.
현재 경제 상황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내용이 밝은 편은 아니다.
1640년도에는 간통이 큰 범죄였는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에서 형법 241조는 위헌으로 판결되어 간통죄는 범죄가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시대가 변했으니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결정문은
‘사회구조와 결혼 및 성에 관한 국민의식이 변화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중요시하는 인식이 확산 되었고, 간통 행위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더 이상 국민의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과연 헌법재판관들의 부인이 간통을 했더라도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묻고 싶다.
개인적으로 간통죄 폐지에 반대하는 쪽이다. 우리나라는
명분을 실리 못지 않게 중요시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간통을 부도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에 노출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기득권이다. 루머인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전직
대통령, 기업의 총수나 임원, 검찰총장, 국회의원, 변호사 등 자타 공인 우리나라의 주류 층이고 기득권세력들이다. 이들이 간통죄 폐지에 앞장 선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있는 헤스터 프린은 목사인 딤즈데일과 간통을 하여 펄이란 딸을 낳자, 장터 교수대에서 주홍색으로 간통(Adultery)을 의미하는 A를 평생 달고 다니라는 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헤스터는 타인의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 죄가 없다는 듯 당당하게 살아간다. 심지어 남을 도와가면서 존경까지 얻는다.
당시는 미국 보스턴이 청교도(영국 및 미국
뉴 잉글랜드)의 식민지였다. 시대적 배경은 칼뱅주의로 신의
절대적 주권을 강조하는 시대로,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고는 정해져 있고 오직 신만이 구원을 관여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엄격한 도덕성과 신에 대한 복종, 쾌락의
제한 등이 기조였다.
시대 상황 만 보면 헤스터 프린은 도덕적, 법률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를 통해 청교도의 억압에 반항하고 자유를 부르짖고 싶었던
것 같다.
청교도에 대항하여 자유를 쟁취한 헤스터를 투사로 만들고, 이웃들에게 봉사하여 신의를 얻게 한 다음, 그녀의 죄를 탕감해 주었지만
개인적으로 불만이다. 죄만 사하여 준 것이 아니라 한술 더 떠 A를 Able(능력있음)로, angle(천사)로, apostle(사도) 등으로
승화시켜 신성시 하였다.
딤즈데일 목사는 헤스터 프린이 죄를 받자, 비겁함과
반성으로 정체성에 혼란스러워 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모든 것을 대신한다. 목회자의 경우 법률보다 도덕적인
것에 훨씬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데 저자는 목사의 부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득권의
비겁함?, 아님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실수 할 수 있다?, 아님
사랑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아님 기존의 틀은 기득권에서 깨어야 한다?, 청교도라는 낡은 유물을 청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콕스 목사의 반발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이 간다.
헤스터 프린의 남편 로저 칠링워드는 간통한 상대 남자 곁에서 서서히 괴롭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그의 잔인한 복수에 대해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로저 필링워드를 악의 축으로 묘사 했는데, 어쩌면 그도 선의의 피해자일 수 있다. 수년에 거쳐 목숨 걸고 찾아온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겼는데 잠자코 있어야 했나?
내가 본 로저 필링워드는 인간의 내면을 가장 잘 묘사한 인물이다. 신이 아닌 이상 웃고
넘길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또한 죽으면서 자신이 낳지도 않은 펄에게 전 재산을 상속 한 걸 보면 결코
악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아내가 있는 남편입장에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딤즈데일의 곁에 붙어서 지속적인 고통을
가했다는 점이 가혹하다. 인간에게는 짐승이 가진 본능과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이성이 존재한다. 일시적인 고통에는 이성이 본능을 지배하지만, 지속적인 고통에는 이성이
본능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잔인한 것이다.
안정과 불안정, 문명과 야만, 도시와 숲, 어른과 아이, 긍정과
부정, 죄와 벌 등 상반된 가치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보편적인 호 불호는 있겠지만 결국 결정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사회의 원활한 흐름을 위해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이 규칙은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것이다. 법률을 잘 지켜야 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된다. 개인적으로 법을 잘 지키는 사람보다는 도덕적인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