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직톤의 초상 이승우 컬렉션 1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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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책 한 권 읽는데 꼬막 이틀이 걸렸다. 괴테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느낌이다. 한 문장 한 문장씩 읽는 것은 좋은데, 한 단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집중을 하지 않으면, 책을 읽고 있지만 생각이 다른 곳을 향하기 때문에 정신 잡는데 신경을 쓰면서 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소설 이라고 읽었는데 에세이 같은 느낌이 나고, 에세이인가 생각하고 읽다 보면 신학적 논문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게끔 하는 책이었다.

겨울 문턱에 와 있는 요즘 날씨와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한 경제상황을 대변이라도 하듯 인간의 무거운 내면을 성찰하라는 주문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문은 수직의 축과 수평의 축인 듯 하다.

 

이야기는 현대인을 대변하고 있는 에리직톤과 요환 바오로 2세 저격사건에서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를 비롯한 수 백 명의 신들이 등장한다. 그리스 탄생에 관한 신화로 어쩌면 성경만큼이나 많이 회자 된다. 에리직톤 역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오만하고 불경스러워 요정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성의 정원에 있는 나무를 베어버려, 땅과 식물의 성장을 주관하는 여신 데메테르의 분노를 사, 아귀로 변하여 자신의 딸을 팔아 먹고, 종국에는 자신을 뜯어 먹다 삶을 마감한다.

 

나는 무신론자이다. 이 때문인지 신들에 대한 평가는 냉혹한 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은 질투가 많고, 독선적이고, 관용이란 없는 것 같다. 그리스 신 중 가장 큰 힘을 가졌던 제우스는어떠한 신이나 여신도 나의 뜻을 어겨서는 안 되며, 만약 어길 경우 캄캄한 타르타로스(무한지옥)로 던져버릴 것이다.’라고 했고, 야훼 또한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였고, 데메테르 역시 에리직톤을 처참하게 처벌하였다.

 

제우스는 아버지인 크로노스에게서 권력을 찬탈하였고, 크로노스는 그의 아버지 우라노스에게서 권력을 찬탈하였다. 권력이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모양이다.

권력 찬탈에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것이고, 쿠데타에 성공하면 혁명인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만 보더라도 수많은 쿠데타가 존재 하였다. 하지만 역성혁명에 성공한 사람은 왕건, 이성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몇 명 밖에 되지 않는다.

 

폭력으로 얻은 것은 지속될 수 없다. 그렇다면 폭력은 무엇인가? 저자는 인간이 인간을 향해 저지르는 폭력을 수평적 폭력, 신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폭력을 수직적 폭력이라 하였다. 신과 인간 사이 관계의 궤멸이 인간과 인간 사이 관계의 괴멸을 불러왔다. 절대자와의 비뚤어진 수직관계를 방치하고 인간 사이의 평등한 관계만을 기획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 하다.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폭력의 뿌리는 뱀이다. 우리는 각자 우리 영혼의 습지 한쪽에 독성의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 하지만 교육과 예술을 통해 우리 안의 뱀을 제거할 수 있다. 그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고, 신과의 관계를 옳게 설정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답이라는 것이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방언인 것 같지만 메시지는 정확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교황을 쏜 사람이 붙잡히면서 한 말이다. ‘한 사람이 터무니 없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정의롭지 않다. 삶은 총을 똑바로 쏘는 것이다. 나는 총을 쏘았다.’다수를 위하는 일이라 하여 그것이 절대 선일 순 없다. 생각을 많이 하게끔 했던 문장이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자의 길이 아닌 신문사 기자로 나선 김병욱, 정상훈 교수의 딸이면서 병욱의 애인이었던 정혜령이 목회자의 길을 거부한 김병욱 대신 제자였던 형석과 함께 독일 유학을 가지만, 형석의 편집증 때문에 복귀하여, 수녀가 된다. 수녀원에서 대학동기 태혁을 만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과의 수직적 관계가 절대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태혁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구별은 무의미 하다. 신은 인간적이고, 인간은 신적이다. 신은 인간적이지 않으면 안되고 인간은 신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수직은 수평으로 하여 존재가 가능하고 수평은 수직을 지향한다. 신에게 피신함으로써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환상이다.’

그래서 보육원에 들어가 새로운 삶을 살아 가고, 태혁은 공권력에 고문을 당하고, 김병욱은 신문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희수와 결혼을 앞두고 있고, 형석은 교황을 저격하려다 실패한 델부루케를 뒤로 한 채 추크슈피체 계곡에서 삶을 마감하고, 정교수는 퇴진으 대상이 되며 소설이 종결된다.

 

모택동은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태혁에게 영향을 받은 혜령은 모든 신화는 권력으로부터 나온다. 권력만이 신화를 생산할 자격을 가진다. 권력구조의 신성화. 그것이 신화의 참된 기능이다. 권력을 건드린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신성한 것이 권위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 있는 것이 신성하고, 혹은 그 것만이 신성하다.’고 했다.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시대는 80년대이고, 저자는 광주 출신이고, 당시 상황이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것에 대한 단죄가 진행 중이었다. 혹시 이건가?

관념적이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이고 인간적이다. 그래서 어렵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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