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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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쉽지 않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이러한 일상이 인간답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한다. 그러므로 행동이란 생각의 발현인 것이다. 그 행동을 보고 평가를 받는다. 결국 좋은 생각은 좋은 행동을 낳고, 좋은 행동은 좋은 평가를 낳고, 좋은 평가는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녹취하여 재 구성한 책으로 사람과 삶에 관한 인문학적 담론이다. 이 글을 읽고 평가한다는 것 자제가 무의미 하여 강의를 summary 한다고 생각하고, 교훈이 될만한 글을 옮겼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핸 공부…….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고, 자기 성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에는 반드시 고생이 따른다. 하지만 고생을 하면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고 삶이 풍요로워 집니다. 이 세상에 공부 아닌 것이 없고 공부하지 않는 생명도 없다.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의도를 읽는 것보다 그 의도를 깨뜨리는 것이 진정한 공부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다.

 

인류 문명의 중심은 항상 변방으로 이동했다. 오리엔트에서 지중해의 그리스 로마반도로, 다시 알프스 북부 오지에서 바흐, 모차르트, 합스부르크 600년 문화가 꽃피고, 다시 북쪽 바닷가 네덜란드와 섬나라 영국으로 이동하다가, 미국으로 이동했지만, 중국은 중심부가 변방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다만 변방의 역동성이 끊임없이 주입되면서, 서쪽 변방 진나라가 통일을 했고, 글안(거란)과 몽고의 만주 등 변방의 역동성이 끊임없이 유입되면서 변방의 의미가 퇴색되었던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최고의 역사서이긴 하지만 올바른 중국고대사를 대표할 수는 없다고 한다. 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130여 명 인데 그 중 130 여명이 저자와 비슷한 비극의 인물들로 채워 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중국 고대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사마천을 읽는 것이라 한다,

헤겔의 변증법 역시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정의 단계에서 지배계층이 그 들에게 이익이 있으면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반의 단계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변증법을 알고 가야 가기 때문에 간단하게 정리 하면,

은 자신이 암암리에 가지고 있는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단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서양의 계몽사상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한 사상이었는데,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으로 믿었는데, 사실 과학기술이 발달 하면서, 경쟁이라는 모순이 발생했지만 알아 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은 모순이 밖으로 드러나는 단계로, 인간의 감정을 무시하고 너무 경쟁을 부추기는 모순이 겉으로 드러나 다른 새로운 것이 나타나게 된다.

은 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단계로, 실존주의가 나타나 인간의 감정을 중시하거나, 마르크스주의가 나타나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복지자본주의를 지향하거나 하지만 이것 또한 완벽한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또다시 - -합의 단계를 계속 반복한다는 논리이다.

 

김소월의 진달래 꽃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는 예이츠 willian butler yeats의 시의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어서 그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밝으세요. 당신이 밟는 것이 내 꿈이니까요.’에서 나왔다고 한다. 김소월의 스승 김억이 이 시를 번역했다. 서정주의 국화꽃 옆에서라는 시도 마찬가지다.‘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는 백거이의 시 국화에서 오살고절(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다는 뜻으로 충신 또는 국화를 말함)의 시상을 가져 왔다고 한다. 엘리엇도 초서의 이야기를 착상했고, 아인슈타인도 갈릴레이와 뉴턴의 지식을 가져 왔다. 즉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 우리 정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북방과 남방이 싸우면 남방이 패배한다. 그런데 현재의 중국은 남방정권이다. 중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시경은 진나라 등의 북방문학이고 초사는 양자강 유역의 남방문학이다.

남방 문학의 낭만성과 창조성은 이상과 현실, 패배와 변방, 낭만과 창조의 이야기로 시경보다 더 풍부한 인문학적 담론을 제공한다고 한다.

계란에는 노른자와 흰자 그리고 그 사이에 티눈이 있는데, 티눈이 DNA라 한다. 계란을 끓는 물에 넣으면 흰자가 노른자를 감싼다. 이유는 티눈이 자기의 영양분인 노른자를 놓지 않으려는 집착 이라는 것이다. 이에 DNA는 닭을 만들고, 그 닭으로 하여금 수많은 계란을 낳게 한다는 것이다. 즉 닭은 DNA의 서바이벌 머신이고, 생명을 가진 사람 또한 서바이벌 운동원리가 작용되므로, 사람이란 일단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추상력은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압축하는 것이고, 상상력은 시서화로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읽어 내는 것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핵심을 요약하고, 추출할 수 있는 추상력을 키워, 유연하고 조화로운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고전은 과거의 책이지만, 가기만 하고 다시 반복되지 않는 과거란 없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인 것이다. 고전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이유다.

 

노자가 강물을 최고의 선이라 했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물은 만물을 이롭데 한다. 둘째 물은 다투지 않는다. 산을 만나면 돌아가고, 바위를 만나면 나누어 갈라지고,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나가기 때문에 절대 무리 하지 않는다. 셋째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 즉 소외된 곳,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노자는 5천자, 논어는 1 2천자, 맹자는 3 5천자, 장자는 6만 오천자, 한비자는 10만오천자로 되어 있다. 고전에서 답을 구하고 싶거든 이런 책을 읽어 보라.

 

산업자본은 공장이 있고 그 뒤편에 노동자 가족이 있으나, 금융자본에는 사람이 없다.

광우병은 풀을 먹는 소에게 육식을 먹여서 생기는 병이다. 사람은 모두가 똑 같다고 생각해야지 사람을 거름 삼아 내가 성장하면 어떤 병이 올지 아무도 모른다.

최소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유해한 것일 수 있지만 지구나 우주 아님 상대방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존재의 이유가 확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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