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12 황석영 대하소설 12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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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청룡사에서 사당패 모가비 였던 고달근은 철원 용담역말에 객점을 내고, 북어를 매점하여 부상대고의 꿈을 꾸며, 이시흥과도 연결되어 있어, 그를 만나러 왔다가 수달피 사냥하던 이학선을 만나고 이어 장길산과도 대면하고 은자 3천냥을 융통해 간다.

잇속에 능했던 고달근은 모신을 찾아가 양남의 양곡을 주문했고, 이경순에게는 길산의 지시라고 하면서 사주전 만량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옛말이 있듯 좌포청 포도부장 박완식의 기찰에 걸려 쇠와 유기를 담당했던 까마귀가 검거된다. 여환이나 석산진 같이 꼬리를 잘랐으면 되었을 텐데 본디 배운 게 없고 없던 살림이 살만 하니까 재물이 아까웠던 까마귀는 도적들을 잡게 해주면 죄를 사면해 주겠다는 말에 횡성 금굴이에 미륵도와 검계원들이 있으며, 고달근이 장길산과 연계되었다는 말까지 토설하자 나라는 발칵 뒤집히고, 장길산을 잡기 위해 최형기를 토포장으로 하여 토포군을 구성한다.

 

최형기는 고달근을 찾아가 장길산을 잡게 해주면 사주전에 대한 죄를 묻지 않을 것이며, 선달의 공명첩을 내리고, 포도논상도 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어, 이경순과 천동이 조무인을 위험에 빠뜨려, 이경순을 죽게 만들었으나, 이경순의 재치로 묘옥과 전생 그리고 여문이는 도망에 성공한다. 하지만 최형기는 천동이를 사로 잡아 우대용, 낭림산맥 일대의 녹림당, 함경도 산간 일대의 녹림당, 송도 박대근, 경강의 모신이 장길산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상부에는 보고 하지 않는다. 탁상 행정에 능한 상부는 장길산 보다 그들을 먼저 잡아들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달근을 앞세워 원산포 객점의 이시흥를 사로잡아 심문하여 고원 객점 김선일이 길산과 연계되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김선일과 끝춘이와 아이들이 최형기에게 잡혔으나, 끝춘이의 재치로 선일과 아이들을 뒤로 한 채 탈출하여 조진포 어계방 주인에게 토포군이 왔다는 사실을 길산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하자 점주는 이를 승낙하고 조천의 길산에게 향했으나, 초천역에서 군졸들에게 검문을 받았으나, 말고삐를 당겨 도망가니 매복하였던 기패관의 오발로 방포가 되면서 현감 안신과 최형기, 길산 까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에 길산은 강말득과 김기에게 가족들을 데리고 박달령에서 만나기로 약조하고, 나머지 일행들은 관군을 맞아 싸우며 도피에 성공한다. 하지만 쌍봉 쪽에는 최형기와 토포군이 숨어 있다가 김기와 강말득을 사살하고 가족들을 사로 잡았으나, 토포는 거기서 멈추고 만다. 이 사건으로 안신은 의금부로 압송 되었고, 최형기는 훈련원의 선전관으로 승진하였으며, 고달근은 공명첩 양반의 선달이 되어 파주 이경순에 객점과 원산포의 객점까지 차지 하여 원산포와 철원 한양을 잇는 상로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정승처럼 되었으며, 명화율에 따라 토포에서 잡힌 장정은 참형, 절도 유배되고, 아녀자는 삼남지방의 관노비로 끌려갔다. 고달근과 최형기는 정경유착의 정형적인 모습을 보이며, 상생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길산 일행은 흥복을 고달근에게 보내, 박거사를 사로 잡아 최형기가 썼던 방법 그대로 고달근 제거에 끌어들여, 고달근의 목을 벤 뒤 관가 삼문 앞에 효시한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것은 일찍이 알았지만 그렇게 많은 재물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인삼을 탐내다 결국 목이 베인 고달근이 모습이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까마귀나 박거사, 고달근 모두가 우리들 마음 깊숙이 들어 있는 본심이 아닐런지?

 

여섯 해 동안 계속된 흉황과 역질의 참변으로 백사십만에 달하는 백성이 죽었고, 팔도에 군도가 번성한다는 장계가 보고 되었으나, 백성들은 누구 하나 발고 하는 자가 없었으며, 조정에서는 그저 오가작통으로 도적을 막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훈련대장에서 병조판서가 된 신여철은 최형기를 은밀하게 불러 장길산 토포 계획을 세우고, 운산군수로 보낸다.

 

길산은 가평 현등사에 가서 풍열스님을 만나고 모신이 보낸 서기가 전하길 '봉순과 수복, 구월은 나주목 관비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슬퍼하다 묘옥을 만난다.

묘옥은 길산에게 여문이 양민의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그를 부탁하자 길산은 강계에 있는 윤덕이 부부에게 보내 기르도록 하였다.

강선홍, 최흥복이 이끄는 이백명의 활빈도들이 북방마를 타고 운산으로 향해 최형기를 사로 잡아 결투를 신청한 후 제압하고 '일찍이 관가의 통인으로 자라나 약한 백성의 온갖 수모를 모두 겪고 보았으면서 오히려 양반 사대부보다 더욱 우리 같은 천민을 미워한 자, 자신의 하찮은 출세를 위하여 이름없는 양민의 목숨을 벌레같이 알았고, 활빈도를 토포한다는 핑계로 병장기도 없는 아녀자들을 살해한 죄는 천추에 씻지 못할 것이다. 라고 꾸짖고 죽인다.

 

묘정과 옥여는 전국 각처에 다니며 산간 승려들을 체결하였고, 운부는 선비들을 통하여 세속의 인재들을 묶어 나갔다. 11권에서 선비나 관료들이 없는 것을 아쉬워했는데, 부사, 첨사, 부자, 술사, 역사, 선비, 충의, 군수 등이 3월 계획에 동참하였으며, 강계에서는 박대근과 최윤덕을 통하여 자금과 군기를 묘향산과 금강산에 반입하는 등 반전을 기했으나, 거사계획은 미루어 지다 한양에서 일을 맡던 선비들 사이에 고변이 터져 흩어 졌으나 활빈도들은 더 극성을 부렸으며, 장길산을 자처 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이론적으론 왕이나 귀족, 관료들은 백성들을 잘 살게 하라고 만든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고 본인들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는 것은 사람 뿐인걸 느낄 수 있다.

정부에 대항하여 갖은 고통을 당한 사람들의 노고가 있기에 현재가 있었지만 아직 까지도 만족할 수 없고, 위에서부터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제부터 붕당 정치가 시작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당이 나뉘어 국민을 위하는 것 보다는 자신들과 당을 위한 일만 하고, 상대 당에 대한 반대를 위한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혹자는 정치인의 옥석을 가지리 못한 책임이 무능한 국민에게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보지 않는다. 가장 큰 잘못은 국민이 뽑아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지 못한 정치인에 있고, 다음 잘못은 이들의 과오를 물타기 하여 자신의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언론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보에 어두운 자는 성공할 수 없듯이 눈과 귀를 막고 옥석 가린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2달에 거쳐 읽은 장길산......화려함 보다는 민초들의 삶을 엿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특히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토지 등은 남한이 무대였다면, 장길산의 경우 북한이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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