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11 황석영 대하소설 1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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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환과 원향은 부부의 연을 맺고, 미륵도의 중심이 되어 새 세상에 대한 당위성을 설파하고, 설유징, 계화, 황회, 시동, 정원태, 김돌손, 시금, 이원명, 오계준, 방승남, 방의천, 전성달 등은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꿈꾸며 미륵도 지구장이 되어 향도들을 모으고, 장길산 일당과도 은밀하게 연결되어 뭔가가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미륵도가 설파 했던 '양주 대전리에서 벽력소리와 함께 성인이 내려와 만백성을 구한다.'라고 했는데 시기를 지정하지 않고 천지개벽(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할 때하고 하자 백성들은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오자 그 시기가 온 줄 알고 대전리로 모여 들었다. 이에 여환 일당은 당황하며 역성혁명을 앞 당기려 하지만, 당초 약속했던 시기도 아니었거니와 다른 조직들과 연계가 어렵다 보니, 타 조직들은 움직이지 않고, 미륵도만 조용히 제거되어 버린다.

 

역성혁명이란 왕조는 대부분 세습되는데, 혁명으로 성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장길산을 비롯한 조직들과 미륵도들은 이씨에서 정씨로 바꿔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맹점이 있다. 왕이 바뀌면 모든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 하지만, 조선시대의 경우 왕권 보다 신권이 강하였고, 경제 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아 어느 누가 오더라도 굶주린 백성 전체를 보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장길산과 미륵도, 살주계, 스님들이 역성혁명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정치에 문외한이므로 만 백성을 인도하기는 역 부족일 것이다. 비리를 저지른 탐관오리들과 무분별하게 백성들을 착취한 부상들을 벌주는 것 이외 별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백성이 착하게 사는 네 가지 방법이 나오는 데 첫째 남을 베풀고 도와라. 둘째 스스로 계행을 닦아라. 셋째 하늘나라에 사는 것처럼 세상을 이루어라. 마지막 욕심은 더러우니 버려라.' 이러면 참다운 도가 현세에 이루어 질 것이라 하였다.

사실 이런 건 백성들 보다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갖고 있어야 할 생각 같은데.......

 

임방의 좌장을 맡은 박대근은 사행길에 함께할 상인들과 역할분담을 하는데 가장 이익이 적은 백사 수입과 책문저자(청나라와 밀무역하던 시장) 그리고 관은 대하만 스스로 배정하고 승낙을 받았다. 하지만 이 결정에는 박대근의 꼼수가 숨어 있었다. 첫째 재배한 인삼을 밀무역하여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려 한 것이고, 관은 십 오만 냥은 백사를 수입하여 왜인에게 3배의 차액을 남기려는 속내가 있었던 것이다. 잠상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굳이 관의 눈에 띄어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이번 사행길에 삼 재배에 성공했던 언실의 나무꾼 남편 윤덕을 행수로 삼고 동행한다. 하지만 묘향산에 은거하던 서용의 졸개들에게 봉물을 빼앗기지만, 길산의 칼을 보여 주며 물건을 되찾고, 채삼꾼 신거복을 만나 잠상의 계획을 현실화 한다.

뇌물로 연결되었던 강호방의 도움으로 청상 오대인을 만나 백사 오만냥어치와 인삼 잠상을 임토대마을에서 거래를 시작하기로 한다.

 

길산은 혁명에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김선일에게 금 잠채를, 봉산 만동이에게 난전을 휘어 잡게 하는 등 다각도로 자금을 모으고, 상고에도 쓰고 거병에도 쓸 수 있는 북방마와 총과 화약 그리고 믿을 만한 장정들을 모으고 있었다. 장길산 혈당들과 연계된 사람들을 살펴보면 송상의 좌장으로 않은 박대근, 강화에 홍천수, 경강엔 서강의 모신, 파주 문산에는 이경순, 포천 철원에는 복만이와 고달근, 혜음령에는 중길이와 살주계가, 황해도 황주에 오계준과 김승운의 미륵도 잔당이, 해주 재령에는 무계원, 봉산에는 천동이와 만동이네가, 수안은점에는 조무인이, 곡산 수철점은 만동이네 형제가, 평안도 낭림산맥 운봉산 일대는 산돌이와 수돌이가, 묘향산에는 서용이네가, 의주 용암포에는 박성대가, 벽동 불암골 채천동은 이학선이, 강계에는 최윤덕이, 순안과성천에는 거사패와 괴뢰배들이, 함경도 원산객점은 이시흥이, 고원 객점은 김선일 끝춘이 부부가, 회령에는 정대성이, 그리고 각도의 승병들, 설유징, 최현경, 정학, 정신과 같은 선비들이, 풍열스님은 가평 현등사에, 대성법주는 횡성 덕고산 봉복사에, 금굴이 수철점에는 오경립, 이정명, 방귀선이 번수 노릇을 하며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기는 숙종 십철년으로 남인들이 집정을 하고 있었고, 장희빈이 왕후가 되었으며, 흉년이 거듭되어 아사자가 길거리에 넘쳐나고 있었다.

상인들과 스님, 무당, 건달 등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머리 역할을 하는 수뇌부가 없어서 아쉽다. 좀더 기반을 확대하여 정치인들까지 끌어 들였어야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피가 당겼던지 길산은 보현사를 거쳐 풍열와 운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안심사의 명근 스님을 찾아가 자신의 과거 행적을 이야기 하고 둘은 부자지간임을 확인한다.

 

가지 많은 고목나무 바람 잘 날 하루 없고, 자식 있는 우리 부보 속 편한 날 하루 없네. 이산 저산 산곩짝에 우는 부엉새야 네 아무리 섧게 운들 부모 없는 날만 하랴. 산아 산아 높ㄹ은 산아 눈비 잦은 묘향산아, 저기 저기 구월산에 우리 부모 누었거늘 계신 부모 생각 하면 뭣 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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