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1 황석영 대하소설 1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부터 독서 테마를 고전으로 잡고 동서양 이름있는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대하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조정래의 아리랑, 태맥산맥, 한강을 시작으로 박경리의 토지를 거쳐 황석영의 장길산에 이르렀다. 장길산 이후 러시아 문학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고전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인간이 가진 특유의 습성이나 구성원들과의 관계 그리고 주류와 비주류간 제로섬 같은 것은 거의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러한 간접 경험을 통해 우리는 현실 속에서 통용될 수 있는 tip을 찾아 적용 하면 되는 것이다.

장길산은 조선 숙종 때의 황해도 지방의 구월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활동하던 도둑의 우두머리로 실존 인물이다. 1권에 그의 친 부모와 양 부모 그리고 자라온 환경이 잘 설명되어 있다. 친 아버지는 사노이고 친 어머니는 외거노비였다.

사노비와 공노비만 있는 줄 알았더니 노비의 종류도 많았었던 모양이다.

공노비는 관청에 직접 노동을 제공하는 선상노비와 공물을 제공하는 납공노비로 나뉘고, 사노비는 주인집 밖에서 거주할 수 있는 외거노비와 가사 사용인의 솔거노비로 나눠었다. 공노비는 관청에 나가 근무하든 국유지에서 경작을 하든 본인의 집에서 출퇴근했기 때문에 솔거노비는 없었다.

외형상 독립적인 주택과 농토를 가질 수 있어서 솔거노비보다 낫지만 풍흉에 따라 파산의 위험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부모 가운데 한 명이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되었으며 소유권은 종모법에 따랐고, 사노비를 죽인 경우 법의 제재를 받지 않았고, 노비도 주인이 반역하지 않은 이상 배반할 수 없었다. 공노비의 경우 16~60세까지 노동력을 제공하고 면천 되었다. 노비도 사람인데 어떻게 상속, 증여, 매매가 가능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양 아버지는 재인 광대이고, 양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사당패, 숫대쟁이패, 대광대패, 초라니패, 걸립패, 중마구패, 궂중패, 광대패, 각설이패, 얘기장패, 남사당패, 풍각쟁이 패 등 많은 유랑 놀이패들이 있었다.

사당패 - 여사당 중심으로 구성된 연행패로 사당벅구춤이나 산타령 같은 민요나 판소리 때로는 줄타기와 재담등이 있었고, 하류계층을 상대로 은밀한 매춘행위가 있었다.

초라니패 - 탈 놀음을 종목으로 삼는 떠돌이 집단이었다.

솟대쟁이 패 - 경남 진양을 본거지로, 동네 입구에 솟대에 줄을 매달아 행사를 했다.

걸립패 - 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음악과 춤, 노래가 주 종목이었다.

중매구패 - 중들이 주로 하는 승 걸립패를 말한다.

광대패 - 신청이나 재인청 출신들이 떠돌아 다니면서 행사하는 것으로 장길산의 양 아버지와 장길산이 여기에 해당이 된다.

대광대패 - 장대타기와 탈 놀음이 주종목이고, 오 광대놀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집단이다.

무동패 - 두 어깨에서 무동이 춤과 재주를 주종목으로 삼은 패이다.

얘기장사 - 한 사람의 이야기 구연자와 1~3인의 악기잽이로 편성된 이야기 패이다.

풍각쟁이 - 지제 부자유자들이 해금이나 퉁소 등으로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남사당패 - 광대패와 함께 가장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놀이패이다.

당초에는 이렇게 갈렸겠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중복된 종목이 많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조선의 최 하위계층이며 도둑이었던 장길산을 저자는 왜 재 조명한 것일까? 이 소설 12권을 읽는 것보다 이 이유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 일 수도 있다.

우리가 잠재력을 말할 때 빙산에 비유를 많이 한다. 수면 위로 떠오는 작은 빙산은 숨겨진 부분이 90%. 역사에 기록된 삶이 이 정도였으니 기록되지 않은 삶은 어땠을까?

태어남과 동시에 사람이 재산이 되는 세상에서 아웃사이더들의 삶이란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길산이 활동했던 시기가 숙종 때니까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지난 후였으니 평상 시 보다 갑절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백성들이 잘못하여 일어난 일인가?

이런 시절일수록 가렴주구가 판쳐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다 보니 도둑이 관리들 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도덕적으론 큰 도둑, 작은 도둑 모두 나쁘지만 착취 당하는 백성들 입장에서는 작은 도둑은 분배라도 조금씩 해주는데 큰 도둑은 분배는커녕 하나라도 더 빼앗아 가려고 하다 보니 민심이 돌아섰던 것 같다.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는 백성들이 천지를 개벽시켜 세상을 한번 뒤집었어야 하는데 리더의 리더십 부재 때문인지 백성들의 뒷심 부족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바꾸지 못한 걸 보면 안타깝다.

1980년대에 작가가 소설을 썼으니까 그 당시는 박정희의 유신시대였다. 작가가 봤을 땐 유신시대와 장길산이 활동했던 시대와 별단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가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유신시대란 박정희가 61년도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야당과의 당파 싸움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하고 북한의 김일성을 크게 부각시키고 이에 맞설 사람은 본인 뿐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경제, 통일의 제반 사항을 신속히 대응한다는 명분아래 본인 입맛에 맞는 유신헌법을 만들어 공포하고, 4공화국을 시작하며 새마을 운동, 긴급조치 발동, 74 남북 공동성명, 부마사태 등 여러 일들을 하였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979 10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유신시대는 종말을 맞는다.

1권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노비의 자식으로 길에서 태어난 길산은 비슷한 계층으로 입양되어 재인의 길을 걷다가 뛰어난 싸움 솜씨 덕에 송도 행수 박대근과 친분을 쌓아 호형호제 하는 사이가 된다. 박대근이 신복동에게 린치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길산과 갑송은 신복동을 납치하여 징계하다가 들통나 관군에 잡히게 된다.

대하 소설은 1편에 백여 명 이상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묘옥, 그리고 장길산 주변인물들과 신복동이나 박대근과 같은 상인들 정도가 비중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작가는 최대한 옛 것을 살리려고 하는 노력이 보이지만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더디게 읽혀지는 것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진다. 책 한 권을 읽어도 옛 선현들은 의심이 나면 또 읽고 읽어서 의심이 가지 않게 하라고 했는데 좀 귀찮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다 보니 자연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