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앤테이크 Give and Take -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
애덤 그랜트 지음, 윤태준 옮김 / 생각연구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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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신사가 매일 산책을 하는데 산책하는 길에 동냥하는 사람이 있어 언제나 천원씩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신사가 여행을 가느라 열흘 동안 산책을 하지 못했다. 여행이 끝난 다음 날 산책길에 동냥하는 사람을 만나 똑 같이 천원을 주었다. 이에 거지는 노신사에게 만 천원을 요구하였다. 이유인 즉 매일같이 천원씩 주었으니 빠진 날까지 달라는 것이었다. 노신사가 어이가 없어하자. 거지는 당신이 나에게 천원씩 줄 때 당신의 기분은 어땠나요?’ 당신은 나에게 천원을 주었지만 나는 당신에게 천원이상의 행복을 주었습니다. 황당하게 지어낸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의문점을 가질만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누가 기버이고 누가 테이커인가?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고 나눔 활동을 하지만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100% 타인을 위한 것일까? 어쩌면 100% 나를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과정이 없는 결과나 결과가 없는 과정이 있을 수 없듯이 100% 주기만 하고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면 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고 자신한다.

둘째 기버의 대상이 결코 물질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보상이라 하면 물질적인 부분을 먼저 떠올리는데 사실 그건 아니다. 사람에 따라 물질적 풍요에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고 정신적 풍요에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호불호라고 이분법적인 판단은 할 수 없고 본인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판단을 하라고 하면 보상의 기준을 물질로 원하면 테이커고, 물질적 보상은 필요 없고 자기 만족을 찾으면 기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구가 글로벌화되고 자본주의가 성행하는 바람에 물질만능주의가 되어버렸지만, 인간이 동물하고 가장 큰 차이점이 사고 아닌가? 본능 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이 세상이 살만해 진다. 하지만 테이커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고, 기버들은 비주류로 전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불합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화가 나는 것은 기버인 척 가장한 테이커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인간은 상호관계 속에서 살아가는데 테이커가 누구인지 기버가 누구인지는 인지해야 원만한 인간관계가 유지된다.

먼저 테이커의 특징이다. 이들은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이 받기를 원한다. 타인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그의 말투나 행동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먼저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형 대명사보다는 라는 일인칭 단수형 대명사를 즐겨 사용한다. 둘째 자기 능력보다도 훨씬 많은 연봉을 받아간다. 셋째 회사를 대표하는 보고서에 전면사진으로 도배를 한다. 넷째 허세와 거만하다. 다섯 페이스 북 친구가 유난히 많다. 피상적인 관계 구축을 과시하기 위해서이다.  여섯 타인의 의도를 의심하고 상대를 경계한다. 자신이 그러니까 남들도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곱 자기 주장이 강하다. 타인의 지식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지식을 내세우는데 만 집중한다.

여덟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강력한 언어적, 비언어적 신호를 보내 대화를 통제하려 한다. 그러므로 기버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지배력을 얻는다.

아홉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지배력과 권위가 약해질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버의 특징은 테이커의 반대일 것이다. 기버라고 하여 모두가 성공하지는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최소한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기버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과 더불어 자신의 이익도 챙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심이 전혀 없는 기버는 실패한 기버라고 표현하였다.

기버와 테이커의 중간인 매처는 주는 대로 받고, 받은 만큼 돌려준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일방적으로 주는 것 보다는 매처의 특징이 현 사회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렇다면 기버, 테어커, 매처는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아님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걸까?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타인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 중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해 보자. 그러나 지속적인 교육이나 경험을 통하면 남을 도울 때 자신에게 훨씬 이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힘의 논리로 타국을 정복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정복하는 쪽에서 관용을 베풀지 않으면 오히려 와해되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로 관용을 베풀었을 때 피정복자들은 정복자들에게 동화되면서 강력하고 지속가능 한 대국이 되었다. 순종보다는 이종교배를 통해 더 강한 것이 탄생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성공이란 잣대가 개인마다 다르긴 하지만 주는 사람이 결국엔 성공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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