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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평점 :
북한이 연일 강경일변도로 위험 수위를 높이고 이제는 마지막 연결 통로인 개성공업지구까지 폐쇄하겠다고 한다. 믿을 구석도 없으면서 그들은 왜 이렇게 강경한 정책을 펴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옛 속담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그들은 지속적인 폐쇄정책으로 경제가 무너져 인간의 기본 욕구인 식욕조차 인민들에게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가와 맞서 똑 같은 방법으로 대립하는 것을 타국에서 볼 때 똑 같은 놈(?) 아니 국가로 치부될 수 있다. 우리는 가진 자로서 여유를 가지고 그들의 노림 수를 예측하고 만약에 사태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본능인 먹는 것에 문제가 생기면 문학이나 예술은커녕 자신의 안전에 조차 신경을 쓰지 못한다. 이런 지경에 식도락이나 미식은 꿈 같은 이야기 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기근에서 탈출한지가 몇 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 기본욕구가 해결되니 자연스럽게 상위 욕구인 미식이나 식도락가들이 나타나고 건강을 위해 채식, 절식, 단식, 1식, 2식, 소식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상전벽해라고 하더니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는가?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근대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는 사절단과 함께 네덜란든, 영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각국의 기술이나 풍속, 제도를 연구하여 귀국 후 귀족들을 대상으로 서 유럽식 문화를 강요하였다. 만약 그 당시 러시아의 기본 인프라가 갖춰진 상태라면 어려움 없이 타국의 문화를 융합했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백성들의 수고가 엄청났을 것이다. 모든 일의 결과에는 공과가 있지만 자신이 속한 분야가 어느냐에 따라 평가는 상반될 수 있다. 저자와 같이 음식이나 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남의 것을 나의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높이 살 것이고 노동운동을 하시는 분이라면 호화로운 이면을 생각하며 민초들을 대변해서 점수를 후하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음식 문화에 확실한 족적을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다. 첫째 음식의 종류가 많아졌다. 자국 음식에 타국 음식 그리고 두 음식이 만나 퓨전음식까지 나왔으나 종류는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둘째 음식의 의미가 달라졌다. 과거는 허기를 충족시키는데 지나지 않았던 음식이 미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즉 식도락가가 생겼다는 말일 것이다. 셋째 음식 문화가 생겨났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하듯 유럽의 테이블 매너를 러시아에 접목하여 한층 세련된 음식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러시아 음식이나 문학에는 문외한 이지만 몇 분의 이름은 낯설지 않았고 소개된 몇몇 작품을 접한 적도 있지만 그 작품 속에 이렇게 심오한 음식 코드가 숨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고등학교 때 접한 푸슈킨의 작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라는 시의 제목과 액면 그대로의 내용 정도에 열광했었는데 그의 외조부가 표트르 대제를 모셨던 에티오피아 황태자였다는 사실과 사랑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투를 하다가 38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꽤 충격이었다. 그가 식도락가였던 것은 귀족 집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아내 곤차로바는 무엇이 부족하여 그를 배신하고 조르주 단테스와 염문에 휩싸였을까? 그의 무절제한 바람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조르주단테스의 언론 플레이에 놀아난 것이었을까 궁금하다.
세계 3대 진미는 거위간을 요리한 푸아그라, 땅속에서 자라는 송로버섯, 철갑상어의 알 캐비아라고 하는데 푸아그라하고 송로버섯 요리는 못 먹어 봤고 캐비아는 맛 본적이 있는데 세계 3대 진미라 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은 아니고 약간 흙 맛과 비릿한 맛이 나던데 미식가의 입맛이 아니라 진미라고 느끼지는 못했다. 푸아그라, 송로버섯은 프랑스 음식이고 캐비아는 러시아 음식이다 보니 우리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톨스토이는 아버지가 백작이고 어머니는 또한 부유한 보르코 스키 공작의 외동딸의 후광으로 외국인 가정교사의 교육, 귀족으로의 취미, 교양 등을 충분히 익혔고, 젊었을 때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 생활을 하며 성욕과 도박 등에도 빠졌으나 곧 환멸을 느낀 뒤 작품활동에 열중하였다. 이런 경험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 꽃을 피우지 않았나 싶다. 전쟁과 평화와 이 책에 소개된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유명세를 떨치며 많은 집필 활동을 하였다. 너무 많은 작품 활동을 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은 감히 근접할 수 없을 만큼의 안락한 삶을 살면서 청빈과 금욕을 예찬하는 모순적인 모습이 작품 속에 들어 있다. 그의 죽음은 더욱 황당하다. 아내가 자기의 서류를 뒤적이는 것에 격분하여 가출을 감행하고 기차 여행 중 감기에 걸리고 이 것이 폐렴으로 번져 가출한지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음식에 이념적 색깔을 부여했다. 그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에는 프랑스 문화가 유행이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음식은 물론이고 옷이나 프랑스 언어까지 싫어했다. 아니 증오했다고 한다. 왜 그는 프랑스 문화를 그렇게 싫어했을까? 혹시 국수주의였을까? 그건 아니고 저자는 러시아 상류층의 도덕적인 타락을 증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한 미식을 혐오했다. 인간의 미각은 끝이 없기 때문에 결국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논리다. 그래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는 어떠한 의견이라도 개진 할 수 있지만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내보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식인으로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문학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톨스토이(1828-1910)와 비슷한 시기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상반된 삶을 살았다. 평생 가난에 허덕이고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고 하니 식도락이나 미식은 꿈도 꾸기 힘들었을 것이다. 출신은 가난 했어도 귀족출신의 의사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인도주의와 가난에 대한 동정과 사회 불공평과 부정한 사회 조직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셰익스피어에 필적할 만한 세계 문학의 거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문한과 통신과정을 밟고 세계2차 대전에 참가해 대령까지 진급했으나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를 썼다가 체포되어 8년간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하다가 복권되어 중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재직하던 중 데뷰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발표하며 일약 스타 작가로 등극한다. 그러나 반체제 비판과 검열폐지를 호소하는 편지를 소련작가 협회에 보냈다가 작가 동맹에서 제명당한 다음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조국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가 생활했던 강제노동수용소 내막을 폭로한 ‘수용소 군도’라는 작품이 국외에서 출판하자 소련은 그를 미국으로 강제추방 해 버린다. 소련 연방 붕괴 후 러시아 시민권을 회복하였으나 서방의 물질주의를 비판하고 조국 러시아 부활을 위해 많은 조언을 한 공로로 예술가들의 최고 명예상인 국가공로상을 받고 2008년 8월 심장마비로 타게 한다. 솔제니친의 작품에는 식도락이나 미식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다만 수용소 생활에서 먹었던 단순한 음식들이 순서대로 나열될 뿐이다.
이 외에도 많은 이들의 작품이 소개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작가가 세분이기 때문에 그 분들에 대해서만 알아 보았다. 개인적으로 책을 많이 보는 편이지만 문학작품에서 음식코드를 골라내는 섬세함은 전혀 없다. 사실 문학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읽고 말다 보니 작가의 의도를 캐치하지 못할 때가 훨씬 더 많다. 문학작품도 어려운데 거기서 음식코드까지 뽑아내는 작가의 섬세함이 경이롭다. 이 책을 음식에 비유하면 기름진 푸아그라에 탄닌이 풍부한 풀 바디 와인을 한잔 곁들인 느낌이다. 평소 접할 수 없었든 기라성 같은 작품들을 살짝 이지만 맛볼 수 있어서 좋았고, 작품 속에 내포된 작가의 의도와 음식에 대한 부분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놓아 일반 독자들이 놓치고 넘어가는 부분까지 알게 되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