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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5 - 고국원왕, 백성의 왕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독자들이 왜 고구려라는 소설에 열광하는가? 아마도 대리 만족 때문일 것이다. 고구려의 진취적인 기상이 인근 국가들을 제압해 나가는 무용담을 읽으며 우리 선조들이 강인함을 엿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내심 고구려 5권을 기다렸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고구려 17대 소수림왕인 사유의 통치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한다.
통치나 리더십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하도록 하자.
첫째 기존 방향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할 때 필요한 리더십은 비전형 리더십이다.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여 조직원들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유형이다.
둘째 높은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한 리더가 직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기 위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일일이 코치하는 코치형 리더십이다.
셋째 사기를 높일 필요가 있을 때 조직 내 친화를 도모하기 위해 사용하는 친화형 리더십이다.
넷째 방향이 바로서지 않았다고 판단될 때 구성원들과 토론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고 공통목표를 세우는 민주형 리더십이다.
다섯 리더가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조직원들을 강하게 독려하는 선도형 리더십이다.
여섯 리더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케하는 명령형 리더십이다.
이와 같이 여러 종류의 리더십이 존재 하지면 굳이 분류를 해보면 권위형, 민주형, 방임형으로 나뉜다.
고국원왕 을불이 무엇을 염두하고 둘째 무를 제쳐두고 사유에게 왕위를 계승했는지 모르겠지만 고구려 대신들과 왕비인 주아영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혹자는 이익, 또는 사회적 기업 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업의 목적은 생존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 나머지 것들은 지속가능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하물며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가 평화를 원한다고 하여 전쟁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굶주린 사자 앞에 선 호랑이가 싸움이 싫다고 하여 오른 발을 내주고 평화를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다른 사자를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이고, 사자가 아닌 힘이 더 약한 늑대를 만난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목숨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본인을 따르는 수 많은 호랑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도 나와 있듯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적 보다 더 강한 군대와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 한다고 하여 뺨을 내밀며 몇 대 때리라는 논리는 리더의 자질이 없고 통치자 교육이 덜 되었다고 본다.
사유의 여린 마음이 백성들을 사랑해서이고, 전쟁을 원하지 않는 것은 자기 대에서 매를 맞고 후대에 평화를 넘겨주기 위해서 행하는 정책인줄 알았는데 내가 봤을 때 처음 의도는 그러했는지 모르겠지만 유약한 리더의 생각에서 나온 비겁한 통치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내내 화가 났다. 말로는 백성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런 통치를 했단 말인가?
백성 5만 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버지인 미천왕의 시체를 빼앗기고, 왕모인 주아영과 왕비인 정효까지 빼앗긴 주제에 평화를 위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정말로 황당할 뿐이다. 자신의 동생인 무를 연나라로 보내 자신을 신하로 칭하며 머리를 조아리게하는 수모를 겪게 했으니 군주된 도리, 자식된 도리, 남편된 도리, 형이 된 도리, 심지어 자존심도 없는 못나고 나약하고 아주 못한 통치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명하다고 서술된 구부가 왕위를 계승하였다는 점이다. 고국원왕이 망친 국가를 이어받아 복구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진나라 왕맹이 연나라를 격파하는 바람에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었다. 아마도 고구려 후편에 서술될 내용이겠지만 모용황의 뒤를 이은 모용평이 진나라에게 패해 고구려로 쫓겨왔는데 이를 잡아 진나라로 보냈다. 소수림왕은 마지막 부분에 잠깐 언급되었지만 법을 제정하고 성문화하여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였으며, 불교를 도입하고, 최초의 국립대학인 태학을 설립하는 등 국가를 재건하는데 올인 하였다.
고구려 5권에서는 구부에 대한 언급이 주류를 이뤘지만, 마지만 부분에 잠깐 언급된 이련이 사유나 구부에 비해 좀더 고구려의 기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나 싶다. 이가 구부의 동생으로 고국양왕에 오른다. 고국양왕의 업적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고구려의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광개토대왕을 낳은 것이 가장 큰 업적이 아닌가 싶다. 광개토대왕 스스로가 뛰어 나기도 했겠지만 조선시대에 세종이 갈 길을 잘 닦아 놓았던 이방원처럼 고국양왕 또한 그리 했으리라 생각한다.
고구려의 다음 권이 연재되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고구려가 가장 강성했던 부분까지 연재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가 대리만족이 아니겠는가? 미국, 중국, 소련, 일본 강대국에 끼여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만 상상하다가 중국 본토까지 제패했던 고구려의 기상을 엿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