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3 (무선) - 제1부 한의 모닥불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애병원에서 치료받던 안창민은 이지숙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하나 염상구는 직감으로 이지숙을 의심하고 자애병원 간호사를 협박하여 안창민을 치료한 사실을 알게 되어 이지숙과 전명환원장이 체포되고 전원장은 고문을 당하지 않고 구두 진술로 끝났지만 이지숙은 엄청난 고문을 당하고도 빨갱이라고 누설하지 않자 둘 다 순천지법으로 넘어 전원장과 간호원 이지숙 모두 1년 징역형을 받았다. 이에 이지숙은 학교에 사표를 내고 서민영을 찾아가 야학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지숙이 야학에 숨어 들어 염상진의 명령을 성실해 수행할 것이며 엄청난 일을 할 것 같은 인물이다.

 

이 사건으로 200여명의 중대를 이끌고 벌교, 보성지구 사령관으로 심재모가 등장하며 현지경찰, 파견 토벌대, 청년단을 지휘하게 되고 작전지구 내 준수사항을 전달한다. 첫째 군기철저확립. 둘째 근무철저 수행, 셋째 부녀자를 희롱하지 말고, 민간인을 구타하지 말고, 민간인의 재산에 손대지 말 것을 지시하고 이를 어긴 자는 즉결처분을 한다고 공포하였다. 민초들의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토벌대나 청년단과는 차원이 다른 사고였다. 2장에서 나왔던 썩은 행정관료들과는 다른 인물이 출현하였다. 리더로써 당연한 일을 했지만 이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많은 일을 해결하여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으면 하는 인물이다.

남자란 권력이 약해지거나 없어지면 순식간에 허수아비가 되고 만다. 구정물을 좋아하는 임만수 또한 심재모의 등장으로 힘을 잃었다.

 

정현동 사장과 서운상의 거래를 알아버린 소작인들이 몰려와 난동을 부리자 이들을 잡아들여 심재모는 공정한 수사를 하는데 농민과 학생들이 이북식 토지개혁을 실시하라고 시위가 일어난다. 심재모는 소작인들에게 유리하게 해결하고자 400여 명의 진정서를 받아 피해자에게 치료비 및 피해일체를 보상하게 하고 사건을 종결시키다 지주들은 항의가 거세 대책을 고심하고 있던 중 정하섭에게 돈을 보태준 낙안댁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하대치의 아내 들몰댁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동네 사람과는 달리 살갑게 굴던 구룡댁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을 감지하고만 내색하지 않고 지내다 죽은 시아버지 굿을 위해 소화의 집에 가서 사정 얘기를 하자 서로 의지 하며 같이 살자는 소화의 말에 동의하고 이사를 한다. 그러나 정하섭이 현 부자네 별장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돈을 장만해 떠난 사실을 청년단에서 알아내 소화와 들몰댁은 취조를 당하고 정사장 부부까지 유치장에 갇혔다. 소화를 취조하다 애가 떨어지고 그 애가 정하섭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아난 염상구는 낙안댁에게 모사를 꾸며 소화에게서 애를 떼어달라는 청부를 받고 댓가로 쌀 21가마니를 받는다.

 

하대치는 주막집 장터댁과 몸을 섞어 안심시킨 후 본격적인 공작(솜바지 30벌 만드는 일)을 시키고 혁명의 날을 기다리다 배성오, 고두일, 하대치, 강동식이 임무 수행 중 면사무소에 다니던 배윤호의 밀고로 배성오와 고두일이 사살 당하고 이에 과수원댁은 목을 메어 자살한다. 왜 배윤호는 친동생을 고발하였을까? 면사무소 공무원이었던 배윤호는 동생의 빨갱이 활동으로 자신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무원으로 가족이 좌익으로 분류되면 지금도 좋게 보지 않으니 과거에는 오직 했을까? 동생을 밀고한 형으로 보면 좋아 보이는 그림은 아니지만 국가관 특히 공무원으로써만 본다면 정당 하다고 본다.

 

정사장이 구속되는 등 다른 관료들과 달리 지주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심재모을 견제하기 위해 남원장에서 읍장 이병주, 최익달, 윤삼걸, 세무서장 최익도, 금융조합장 유주상이 모여 대책을 논의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곧 이들의 욕심이 탐욕으로 바뀌어 많은 이들이 고통 받게 될 것이다. 이들뿐만 아니었다.

그러나 심재모는 이에 굴하지 않고 농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범우에게 농촌문제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청하자 이에 김범우는 서민영 선생을 소개하였고 동학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동학에 대한 공부를 할 겸 발췌하였다.

 

동학은 내적요인과 외적요인이 있는데 내적요인은 농민의 힘으로 농민이 원하지 않는 집권세력을 타도하려 한 것이고 외적요인은 외세배척이었다. 그런데 왜 일본이 동학란을 잔인하게 진압하려 했을까? 청국세를 압도하려는 요인과 우리 땅을 손에 넣고자 함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소작농들이 이북식 토지개혁을 주장 했을까? 아마도 소작농들한테는 찬밥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유재산이 인정이 되던 그렇지 않던 상관이 없었다. 이북은 국가에서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 하여 무상으로 재분배하였지만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이 부분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싶다. 또 다른 점은 이북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를 완전하게 숙청하자 50만명이 넘는 친일파들은 이남으로 도망쳤고 이남은 오히려 이들을 옹호하고 보호하며 핵심세력으로 정권을 세워나간 점이다. 한쪽은 절대다수의 민중들이 권력기반을 이룩했는데 다른 한쪽은 국소수의 반 민중들이 다수민중을 노예화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느 방법이 낫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방법이든 지도자들이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국민을 위한 일에 열중했다면 어느 방법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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