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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7 - 제3부 어둠의 산하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식량 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서는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했는데 요시다는
조선사람들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영구소작권을 주고, 개간비를 따로 지불하고, 소작료도 3년간 면제해준다는 거짓말로 농민들을 꾀어 간척사업을 하여
농토를 확장해 나갔고, 이동만은 동원된 농민들에게 줄 식비로 장난을 쳐 많은 돈을 착복해 갔다.
백남일은 백종두가 죽고 나자 건달패들이 자릿세를 받아가고 경찰서에서도 그를 더 이상
비호해 주지 않았다.
공허는 득보와 함께 옥녀를 팔아먹은 주막집에 가서 주모에게 옥녀의 행방을 물었으나
놀이패에게 팔아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으나 옥녀가 성장하여 오빠를 만나게 되고, 득보는 신세호의
집에서 글도 배우고 일을 도왔는데 그의 딸 월엽과 서로 좋아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그리워 한다. 큰 딸
화엽이는 송수익의 장남 송중원과 혼인을 시켰으나 아버지를 따라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양치성은 수국이를 속여 같이 살았으나 양치성이 밀정이고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양치성을 칼로 찌르고 필녀가 있는 통화로 간다.
공허는 손수 탱자나무로 홍씨의 비녀와 대추나무 노리개를 만들어 홍씨에게 미안함을 비쳤고
홍씨 또한 공허가 큰 일하면서 본인과 아들까지 생각하는 것을 고마워 했다.
장상규는 정재규에게 받은 삼천석의 토지로 만석꾼이 되려고 독하게 자린고비짓을 하며
쌀밥도 먹지 않고 방에 불도 넣지 않은 체 살며 소작인의 아내를 탐하는 등 소작인들에게는 못된 짓을 일삼았다.
다행히 정씨 형제 중 정도규는 일본 유학을 하며 애국정신이 고취되어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정씨 가문의 허물을 상쇄시키려 했다.
윤철훈과 이광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제와 투쟁을 하였고 윤철훈의 사촌동생 윤선숙은
이광민을 사모하였다. 이들은 이동휘 선생과 뜻을 같이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 들었다.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지만 코미니테른에서 인정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이용당하고 만다.
춘원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을 들고 나와 조선인은 허위와 공상과 공론만 즐기고 게으르며
서로 신의와 충성이 없으니 이를 반대방향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이 글을 쓴 이광수를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다른 쪽으로 보면 맞는 얘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을 비롯한 문무대신, 관공서 관직에 있는 고위, 하위 공무원들 심지어는 지주에 농감들까지
개념이 없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일파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글이라면 그렇게
이해해도 무방한데 이광수는 아니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가 중 걸출한 인물들이 많았으나 그 중 사상이 다른 4명의 지도자를 살펴보자. 먼저 도산 안창호 신민회와 만주 흥사단
활동이 후 임시정부 총리직을 연임하고 국민회의를 주도하였으며 재건 분열에 앞장서고 임시정부 통일전선을 구축하였음.
성재 이동희 신민회 활동을 하였으며 공산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한인 사회당, 고려 공산당을 창당하고 코르테른과 접촉을 시도 하고 이승만과 대립하였으나 코민테른 자금조달 문제로 임시정부를
떠났음.
단재 신채호 좌익이며 무정부주의로 정치운동을 벌였고 이승만 위임통치에 반발했으며 의혈단이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강경한 폭력 투쟁으로 민중혁명노선을 쟁취하고자 하였슴.
우남 이승만 강력한 대미외교를 중시하였고 많은 지도자들과 반복을 하였기에 거론하기
싫음.
어디에 있든 애국을 하는 사람은 애국을 하고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은 나쁜 짓을 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