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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평점 :
바리는 일곱 번째 딸……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놋쇠로 만든 여자의 밥 그릇이란 뜻도 있고 바리데기라 하여 버려진 일곱 번째 딸이 아버지를 구한다는 제주도 설화도 있고, 비바리라 하여 제주도 방언으로 처녀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 바리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모두 비슷하게 여자라는 의미인 듯 하다.
남아를 선호하는 것은 선사시대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남녀의 능력 구분이 모호해졌다. 하지만 자녀를 일곱씩이나 낳은 것은 아들이 낳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 결과이고 남아선호사상이 유독 강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닐까 싶다.
바리의 뜻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사실 알고 보면 7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의미로 쓰인다.
Lucky seven 행운으로, 007 첩보영화는 불사신으로, 기독교에서는 7은 천지창조를, 생명을 관장하는 별이라 하여 북두칠성을, 불교에서는 상승의 의미를, 7일단위로 7번 제사를 지내는 49제 등
백치미
주인공 바리의 느낌이다.
본디 인간의 정신 상태가 이러지 않았을까?
인간은 교육을 통하여 자아를 형성해 간다. 자아형성이란 결국 이성을 말하는 것인데 교육이 없다면 본능대로 살아 갈 것이다. 단순하게 교육의 정도로 본능과 이성을 논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바리는 본능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체면 때문에 주인공을 버린 엄마
자신들의 갈망 때문에 주인공을 훔친 산파와 동조한 토끼
자신의 성적욕망 때문에 주인공을 파괴한 트럭 운전사
재물을 위해 아버지 살해를 지시한 사장 아들
그렇다면 본능적으로 사는 것이 좋은가 이성적으로 사는 것이 좋은가를 물었을 때 선뜩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최소한 이 책에서만큼은
엄마나, 산파나 토끼, 운전사, 사장아들 등은 주인공 보다는 교육을 많이 받았기에 이성적인 사람일 텐데 행태로 봐서는 바리의 생각보다 뛰어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무게를 내려 놓겠다는 확신과 자신이 있는 사람이 통증 없이 죽음을 원한다면 바리는 기꺼이 나선다. 법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신이 관장할 부분을 바리가 나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모처럼 보이지만 간절한 이들에게는 천사일지도 모른다.
온 몸에 암 덩어리가 퍼져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산파
노인과의 사랑으로 생기를 찾았다가 노인의 죽음으로 이승과 작별하려는 청하사
몸을 팔아 가족을 부양했으나 가족들의 외면에 더 큰 상처를 받아 생을 마감하려는 연슬 언니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자식을 위해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인 영감
그리고 본인이 원한다며 토끼까지 …….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책에 몰입되어 그 상황들이 개인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시련은 가난한 자, 약한 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따뜻하고 행복한 내용이 좋은데 사실 그런 종류의 소설은 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좀 어둡고, 무거운 소재인 최하위나 차 상위계층의 사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으로 인한 큰 수확은 구조를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소설을 쓸 때 구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해 layout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