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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칙릿...... 전문직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판 섹스
앤더 시티 정도로 보면 될까?
영화나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아마도 소재거리가 다양하고 특수한 지적
능력과 신념, 자기규제나 소명이 일반인들과는 달라서 일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개방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실연당하지는 않았을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말하고 사랑의 행위를 하고 사랑을 꿈꾸지만 사랑을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사랑의 정의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어떤 이는 육체적 본능을, 어떤 이는 베푸는 것을, 어떤 이는 희생하는 것을, 어떤 이는 전기가 통하는 것을, 어떤 이는 밀고 당김을, 어떤 이는 달콤함을 사랑이라 표현한다.
놀라운 사실은 열정적인 사랑의 최대 지속기간은 900일이고 이후에는 열정이 50%로 감소하며 이 시점에서 연인들이 헤어질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꽤
그럴싸해 보인다.
실연당한 사람들은 왜 상대방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의학용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등장한다.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으면 스트레스로 인하여 위의 물질이 발생되는데 그 물질 때문에 버린 사람이
더 생각나고 사랑했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실연은 일종의 감기 같은 병(?)이고 치유가 가능 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 실연당한 사람들이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석 했을까?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미도가 계획한 것처럼 실행하면 쉽게 치유가 될 것 같다.
첫째 나를 버린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된다. 물론 좋은 사람의 판단 또한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실사모의 계획은 사업적인 음모가 숨겨져 있었지만 기획자나 참가자 모두
윈 윈 하는 구조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째 사랑했던 사람과 연결 고리를 모두 끊어 버린다. 실사모 회원들이 했던 것처럼 사랑의 추억이
깃들은 물건을 버리는 것이다. 지훈이 버린 카메라나 사강이 버린 소설책 ‘슬픔이여 안녕’처럼
셋째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는데 효과가 가장 큰 것은 육체적인 운동을 통하여 엔도르핀과 도파민 수치를 올려주는 것이다. 근육이 찢어지고 상처 받으며 조금씩 두꺼워지고 부풀어 갈 때 마다 가학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P98
넷째 햇볕이 있는 야외에서 유쾌한 사람을 만나라. 쉽지 않겠지만 상대방이 유쾌하면 그 기운이
나에게 전이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시간이 약이다. 인간의 두뇌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남자는 1년 정도면 회복이 되고 여자는 5년에서 8년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실연하고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 재미있는 통계를 본적이 있다. 부부가 별거하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약 2억7천만원 정도가 줄어드는 괴로움과 맞먹고, 배우자가 죽었을 경우 3억4천만원이
줄어드는 괴로움과 맞먹는다고 한다. 돈으로 환산한다는 것이 좀 거시기 하지만 돈으로 환산하니 어느 정도
괴로운가가 확 와 닿는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오전에 스파이더맨이란 영화를 봤는데
스파이더맨이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하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길 조차 주지 않는 장면을 보았다. 이 소설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사강이 한정수와 헤어지고 나서
한정수가 사강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하였다.
사실 인간의 존재는 나약하기 그지 없다. 거대한 은하계 속에 작은 모래알 같은 지구 그작은 지구에서 60억명 중 하나인 인간...... 백 년도 살지 못하면서 상대방을
가슴 아프게 하지 맙시다. 열심히 사랑하면서 살아도 시간이 없습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밤이면 편안히 침대에 기대어 앉아, 두꺼운
소설을 조금씩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이라면, 그건 어떤 식으로든 성공한 삶이 아닐까 p276 사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행복이다.
인생은 언제나 밝은 곳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곳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밝은 곳만이 인생이라 한다면 이 세상은 더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칙릿이 중년 남자인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사실 궁금했었다. 다이아몬드의 블링블링은 아니었지만 햇볕이 강하게 비치는 사막의 정오에 멀리서 비치는
오아시스의 블링블링 이라고나 할까? 이 소설은 우리 집에 있는 제라늄을 닮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햇볕만 있으면 언제든 꽃을 피우고, 강한 줄기를
가지지 못해 약해 보이지만 추위나 더위에도 끄덕 없고, 꽃이 향기를 품을 수 없지만 잎이 이를 받아
모기를 쫓아내는 나를 가장 기쁘게 하고 이롭게 하는 식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