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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처럼 -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
박현모 지음 / 미다스북스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 역대 왕 중 가장 훌륭한 왕이 누구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세종대왕이라고 하고 가장 존경스러운 왕이 누구냐고 물어도 역시 세종이라고 한다. 굳이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세종의 업적을 잘 알고 있다. 그 중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만약 한글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의 존속이 오늘 날까지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때 전세계 60%를 지배했던 몽골제국도 글자가 없어서 망했다는 설이 있다. 매우 타당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세종은 업적 중 리더들이 본 받아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 첫째 인재를 선발하고 양성하고 재교육하는 일을 매우 큰 일로 삼았다. 한 시대가 부흥하는 것은 그 시대에 인물이 있어서이고, 한 시대가 쇠퇴하는 것은 세상을 구제할 보좌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며 인재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세종의 치세 중 인물들을 검증하는 인물로 허조 라는 재상을 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세종이 평가한 것처럼 이 인물을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기득권 세력으로 자신이 가진 권력을 더욱 강화 시키는 법률을 결의하고 통과시켜 힘 없는 서민들을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든 장본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양반이 아닌 일반 서민으로 태어났어도 그와 같은 법률에 찬성했을지 매우 궁금하다.
또한 세종 때 청백리 재상으로 이름을 떨쳤던 황희라는 인물에 대해 전에 몰랐던 사실을 다음과 같다. 그가 강릉부사 황군서의 서얼이었으며, 사관들은 설우의 금을 받아 황금 대사헌이라 비판하였으며, 덕 놀라운 것은 반역자(2차 왕자의 난 때 방간에게 선제공격을 제안했던 박포)의 아내와 간통하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종은 경륜이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며, 인재 선발 및 정리 능력이 뛰어나고, 언어 능력이 출중하였기에 위와 같은 허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중용하였고 이에 보답하고자 황희는 청렴한 정승으로 변화하였던 것이다.
세종의 인재사랑은 부패관리의 후손 등용 문제에 대해 현능하다면 써야 한다고 하였다. 개인적으로 현직 관리의 부패는 등용하지 말아야겠지만 부패관리의 후손까지 등용을 막는다면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세종은 조말생이라는 인물은 여러 차례 뇌물을 받았지만 그의 능력이 있다 하여 유배 후 재 등용하였다.
세종은 사람의 마음은 읽었던 직임을 다시 주면 전에 허물을 면하려고 애쓰기 마련이나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의 시각으론 타당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본다면 당연 탄핵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세종은 경연을 통하여 아이디어를 도출해 냈으며, 이질적인 구성원을 회의에 참석시켜 격론을 벌이다가 합의를 도출해 내는 회의를 하였으며, 좋은 의견에는 왕이 직접 힘을 실어주는 등 소수의 의견이라도 경청하였으며 틀리다는 말보다는 다르다는 표현을 씀으로 신하들과 격이 없는 토론을 즐겼다.
세종의 회의규칙
첫째 곧은 자세로 회의에 임하라.
둘째 국왕의 잘잘못을 모두 직언하라.
셋째 긴급 사안 발생 시 한자리에 모여 의논하라.
넷째 소수의 의견도 끝까지 경청하되 한 사람의 말만 가지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
다섯 모든 말을 다 듣되 그대로 따르지 않고 결정은 본인의 생각대로 한다.
여섯 좋은 의견이 나오면 힘을 실어 주어 정책화 한다.
세종의 공적을 쓰자면 끝이 없겠지만 여기서 마무리 하는 것으로 하고 세종의 단점은 없었는지 살펴보자.
첫째 후계자 육성에 실패하였다. 세종이 이렇게 칭송 받는 왕이 되었던 것의 이면에는 아버지 이방원의 힘이 매우 컸다. 태종이 정적을 제거하고 세종에게 해가 될만한 일은 본인 치세 때 해결하였던 이유는 훌륭한 후계자를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훌륭한 후계자 육성이야 말로 조선의 지속성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에 있다.
둘째 물론 유교가 조선의 통치이념이긴 하지만 왕족이나 양반에게 매우 관대한 처벌을 내렸다. 물론 양민이나 노비들을 가엽게 여겼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신분에 따라 차별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 힘이 신하들에게 있었다곤 하지만 역대 왕 중 최고의 왕으로 추대 받는 입장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