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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천하제패경영
구스도 요시아키 지음, 조양욱 옮김 / 작가정신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미개한 나라라고 무시했던 일본이 메이져 유신을 통해서 무려 500년을 건너 뛰는 발전을 가져와 주변국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미국까지 공격하는 엄청난 제국주의적 팽창주의를 가져왔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오백년을 뛰어넘을수 있었으며 그 배경은 어디에 있나를 찾아보다가 직접적인 영향은 미미했겠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세 명의 걸출한 지도자들이 그 기반을 마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공통점은 전쟁터에서는 뛰어난 장수였고, 통치자로서 경제에 능통한 지도자 였다.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이 최우선이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안으로는 구체제. 구관습의 타파, 새로운 인재등용, 금은 광산의 개발, 화폐주조(찬전령, 금, 은, 동), 도로, 교량의 정비등 경제에 많은 힘을 기울였고 밖으로는 영토를 넓혀가고 자유시장경제정책을 펼치면서 겉치레 보다는 실리를 중요시하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의 방해로 그가 가진 완벽한 개혁은 이루지 못하고 그들과 타협을 하며 뒷날을 기약하였으나 뜻밖의 부하의 배신으로 죽음을 당하고 그가 닦아놓은 기반이 고스란히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넘어 간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별명은 원숭이 였다고 한다. 그의 외모가 작고 집안은 가난한 농민출신으로 처음에는 노부나가의 하인으로 시작하여 그의 충성심에 탄복하여 노부나가의 오른팔로 거듭나게 된다. 거기에는 그의 뛰어난 잔머리와 실행력의 덕이크다. 그는 전쟁을 하는 것도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얄미운 잔머리를 썼으며 경제감각은 노부나가 보다 더 뛰어 났다는 평이다. 그는 재정기반을 농업에 두어 철저한 농지조사를 실시하고 석고제를 시행하였으며 병농을 분리하고 철저한 자유경제를 추진하였다. 이렇듯 경제가 활황을 얻고 발전한듯 보였으나 이면에는 그의 사치로 인하여 경제가 거품경제가 변했으며,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거품경제는 붕괴되고 그의 기반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바톤이 넘어가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와는 달리 집안은 마카와의 오카자키 성주마쓰다이라 히로타다의 장남으로 태어나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고 동해 지방에 세력을 구축하며 그의 야심을 드러내지 않은 채 서서히 천하제패를 준비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히데요시의 지지세력를 제거하고 지방제후를 압도하여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에야스 역시 금은을 산출하는 광산을 차지하여 경제력을 키웠으며, 직접 화폐를 발행하고 교통망을 정비하는등의 인프라를 완벽하게 구축하였다. 그는 토요토미히데요시의 실패를 교훈삼아 내실을 다지는데 노력을 하였으며 앞의 두 지도자가 닦아 놓은 기반아래 일본의 천하를 통일하였으며 태평성대를 이루어 낸다.
삼대에 거친 튼튼한 기반아래 스펀지 처럼 선진문물을 받아 들여 지금의 일본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정통성이 없다. 당이 다르면 아무리 좋은 안건이라도 무조건 반대하고 개인의 실리 챙기기에 급급하다. 조선후기의 대신들이 그러했고 지금의 정치인들이 그러하다. 우리나라도 김대중 독트린에 노무현의 제국주의(?)노선을 이어받아 진행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는 연일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오히려 1980년대로 되돌아 가는 것이 하닌가 하는 착각을 할 때도 있다. 어느나라는 500년을 앞으로 건너 뛰는데 우리나라는 30년을 뒤로 후퇴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