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거리 창비청소년문학 58
김소연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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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창비에서 출간되는 청소년 소설은 자주 읽는 편이다.

<완득이>라는 굵직한 청소년 소설이 출간된 이후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청소년 소설이라서 청소년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무너뜨리기도 한 작품이라서 창비 출판사에 대한 청소년 문학의 신뢰도가 있는 편이다.

이번 책 <야만의 거리>도 같은 맥락에서 읽기 시작했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점은 항상 성인이 된 내가 읽어서 유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편으로 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접해본 청소년 소설과 시대적인 배경이 달라서 읽어보고 싶기도 했다.

 

책소개를 읽은 분들이라면 이 소설의 배경이 일제 식민지 통치시절이라는 것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어보면 대지주의 아들이나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동천'이라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운명 아니 숙명과 같았던 시절의 아픔이 담겨져 있다.

분명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현대의 사람이며 더우기 청소년 소설을 타이틀로 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요즈음 아이들에게는 일제 식민 통치시절은 소위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이다.

성인이 된 나에게도 경험하지 못한 그저 할머니와 그 윗분세대의 이야기이다.

왜 이 시대를 작가는 선택했을까?

그리고, 홍길동으로 대변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첩의 자식 동천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좀 고리타분한 생각일수 있지만, 요새 청소년들의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꼬집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시절에는 하고싶어도 할수 없는 압박의 세대이었고, 현대 청소년들은 하고싶은 것은 모두 할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시절이다.

이처럼 극한적 대비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가진것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세대간의 이해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청소년 소설의 작가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3자입장이 이 소설에서도 뚜렷하다.

그저 작가는 동천이라는 주인공의 눈을 빌려 서술만 하는 입장이다.

어떠한 개입도 없이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서술해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왜 이런 방식을 청소년 소설 작가들이 선호하는지 꽤나 궁금하다.

섯부른 감정이입보다는 객관적 서술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주로 하는 것같은데.... 예민한 청소년들의 배려(?)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어쨋든 객관적인 서술속에서도 느낄수 있는 그시절의 아픔은 고스란히 전해온다.

그리고, 마치 동천의 성장소설처럼 동천의 경험을 열거하면서 감정이입은 적절히 빠져나가고 있다.

우선 이 책이 마지막이 아니라 만주로 옮겨갈 동천의 이야기가 남겨져 있기에 좀더 지켜보아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잘 읽히는 편이다.

요새 뉴스에 분노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 다시한번 일본의 만행에 분노할수 있다.

그러나 요새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공감될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 소설보다 성장소설임이 더 부각되었으면 적절한 행보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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