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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운명과 숙며의 차이는 무엇인가?
각자마다 받아들이는 운명과 숙명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다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인간이고, 한국인이고,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이며, 내 동생의 누이라는 것이 숙명이다.
내가 전공한 공부, 내가 현재 다니는 직장, 사랑한 사람들, 친한 사람들은 운명으로 받아들여 진다.
즉, 선택권이 나에게 있어서는 운명과 숙명을 구분하는 핵심인 것이다.
항상 누구나 선택을 한다.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쉽게, 때로는 신중하게.
바로 이러한 선택이 주어지는 상황은 운명인 것이고,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 상황은 숙명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바뀔수 있다고 믿는다.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쓰리> 서평 서두에 왠 운명과 숙명을 이야기 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느낀 것이 바로 운명과 숙명이었으며, 분명 바꿀 수 있는 선택권 앞에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작가는 이 책 <쓰리>를 통해 애매모호하게 운명과 숙명의 선을 흐트려트리며 넘나들었다.
우연은 운명이 되고, 운명이 숙명이 된다.
주인공 니시무라는 우리가 흔히 '쓰리 당했다'라고 표현하는 그 쓰리의 가해자이다.
즉 소매치기인 것이다.
그가 이 책의 주인공인 만큼 그는 작가가 놓아놓은 우연과 운명과 숙명의 수레바퀴에서 맴도는 역할이다.
니시무라에게는 행방불명된 이시카와라는 친구가 있다.
니시무라와 이시카와와의 만남, 동행 그리고, 헤어짐은 이 책의 핵심이다.
또 한명의 주인공이자 우연과 운명과 숙명의 수레바퀴를 교묘하게 돌리고 있는 기자키.
그는 잔인하고 잔혹한 모습으로 니시무라와 이시카와 앞에 나타난다.
마치, 운명의 신처럼, 낫을 든 죽음의 신처럼.
사실 책을 읽고나면 처음 드는 말은 "아~"라는 한숨섞인 한마디이다.
결론이 그만큼 예상 밖이었다는 이유도 되겠지만, 어느정도 예상가능하였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조금 후에 드는 생각은 결론은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다.
기자키의 수레바퀴속에서의 니시무라.
그와 나는 어쩌면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항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법이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가 만든것이다라고 이야기 하듯, 그의 운명도 누군가에 의해 정해졌다는 생각.
분명 니시무라는 한 아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변화의 노력도 선택도 하지 않고, 소매치기의 삶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것이 기자키가 바로 니시무라를 선택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운명은 분명 선택권이 주어진다.
절대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진정 나를 위한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