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평점 :
페터 빅셀은 처음 만나는 작가였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이 저자소개만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의 산문집을 접했다.
완전히 백지에서 시작되는 산문집이었기에 온전히 그를 편견없이 만날 수 있었다.
전혀 다른 나라의 다른 세대의 작가의 산문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현대사회 현상과 같음에 너무나 놀랐고, 작가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참으로 세상에는 스승이 될 사람들이 많고, 배울 것도 많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책은 크게 1장 '기다림을 기다리며', 2장 '작은 세상, 큰세상', 3장 '내 고향은 어디일까?'로 구성되어 있었다.
책이 나뉘어 있지만, 어느 페이지를 펴도 무관하며, 어디부터 읽어도 무관할 정도로 책은 나름대로의 스토리와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작은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소소한 일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 가득했고,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인류애가 느껴졌다.
전혀 다른 문화권이고, 전혀 다른 세대임에도 이질감 보다는 친근함이 느껴졌고,
삶을 살아가는 여유로운 자세가 오히려 현대사회에 더 빛나게 다가왔다.
가끔 지하철을 타보면, 정말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내가 서울에 상경해서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는 지하철이라는 존재와 사람들이 많음에 압도당하였지만,
서울에 살면서 지하철을 타는 것은 더이상 아무런 의미도 내게 미치지 못하는 그저 서울 시민의 단면인 듯 하다.
무관심한 얼굴,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들, 조는 사람들, 물건을 파는 사람들, 왠지 화난 듯한 표정들.
어느새 나도 그속에 한 얼굴로 다니고 있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또한 바쁘게 어디론가를 향하는 사람들이 마치 경마장의 말들과 같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 나에게 페터 빅셀의 삶의 자세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나는 일기 쓰기가 두렵다. 살면서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이삼을 뒤에는 늘 포기했다
~ 중략 ~
의미 있는 일만 해야 한다면 인생은 삭막해진다.
일기장에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었음'이라고 적은 그 오늘도 상황에 따라서는 눈부시게 아름당누 날이었을수도 있을 테니."
이렇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있고, 그것을 찾아내는 만나보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특히 마지막 3장에 등장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은 나에게 날카롭게 다가왔다.
"그저 한 인간에 불과했던 황소"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있었고, 나에게는 권력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정리되는 듯 하였다.
"모든 권력은 공포다. 권력은 자신이 퍼뜨리는 공포를 먹고산다.
~중략 ~
그래서 공포에 떠는 사람들은, 공포를 퍼뜨리고 안전을 약속하는 사람의 뒤를 좇는다.
불합리한 결합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기들 스스로 권력이 있다고 믿는다.
자기가 권력자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산문집이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을 온전히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장르인데,
이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도 산문집이 가지는 독특한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였고,
페터 빅셀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향기를 온전히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