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미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내가 김전선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메스컴때문이었다.

자주 보는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김전선 선생님 스페셜을 다뤄 그 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때의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은 전부 기억나지 않지만, 김전선 선생님에 대한 인상은 강하게 남아있었다.

"점선뎐"이라는 책 제목에서 김전선 선생님을 떠올렸고, 그 더벅더벅 삐친 머리와 특유의 웃음짓는 모습에 그때 본 프로그램의 인상이 겹쳐지며 너무 반가웠다.

"이 책은 나의 전기다"라는 글귀에 TV 프로그램에서는 만날수 없었던, 삶을 만날수 있다는 기대감과 김전선 선생님의 전기는 다를 거라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내 기억속에 남은 김전선 선생님의 인상은 유니섹스. 당당함, 거침없음이었다.

유니섹스는 그녀가 태어남과 동시에 생긴 모습이라는 김전선 선생님의 회고에 난 꽤나 놀랬다.

또한 돌사진 한장에서 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남자 옷을 입은 모습에 특히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왼손.

한참을 그 사진과 함께 웃었다.

그녀 스스로 어릴적 남아 선호사상에 의해 성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고 하지만, 그녀의 사회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 또한 그녀의 외모, 성격 모두를 유니섹스하게 만든 듯 싶었다.

 

가장 김전선 선생님께 부러웠던 당당함, 거침없음은 그녀의 삶 모두에 담겨 있었다.

특히 대학시절부터 그녀의 결혼, 육아에서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녀의 그 당당함과 자유롭고 거침없음은 변화가 없었다.

참 너무 무책임하고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갖고 흔들림없이 변함없이 행동하는 모습이 딱 김전선 선생님이었다.

마치, 그녀의 상징인 삐친 더벅머리처럼 세상과 타협해 숨죽이지 않고, 자신만의 이유로 그렇게 내달렸던 것이다.

이런 용기와 당당함이 책읽는 동안 그녀의 기억속 장면에서도, 그녀가 써내려간 일필의 글에서도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아니 김전선 선생님에게 받은 인상에서 느끼지 못한 예외적인 것은 그녀가 사주팔자를 믿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태어날때도, 손자가 태어날때도, 심지어 암을 진단받는 순간까지 사주나 운세를 생각했다는 점에 놀라웠다.

질서, 규율, 관습등에서 자유로웠고, 자유로울려고 노력한 그녀가.......

예상외의 김전선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왜 사주, 운세를 보는지, 그리고 신경쓰는지 묻고 싶었지만, 이제는 고인이 되는 선생님께 직접 대답을 들을수 없게 되었다.

만약 살아 생전 그녀를 만나 물어본다면, 그녀는 아마 "그게 바로 김점선이야"라고 대답할거 같기는 하였다.

이제는 하늘나라로 간 김전선 선생님, 그녀는 그곳에서도 그림을 그리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기운을 풍기며 살아가고 계시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김전선 선생님의 많은 그림중에서 꽃그림이 좋았다.

꽃의 아름다운 색채와 느낌도 좋았지만, 강인하면서도 간결한 붓터치가 강인한 야생화같은 느낌이 들어서 김전선 선생님같기도 하였지만, 내가 가장 부러운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이상 김전선 선생님의 당당하고 거침없는 모습도, 내가 좋아하는 그녀의 그림도 더이상 볼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너무 뒤늦게 그녀를 만났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