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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토피아 - 소외와 편견이 없는 유토피아
키티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김영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을 관찰하면, 맑고 밝은 웃음과 티없는 순수함에 매료된다.
그러나, 가끔 아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들의 그 순수함과 호기심이 매우 잔인하게 다가올때가 있다.
특히, 난 아이들이 벌레나 애완견들을 장난 삼아, 호기심으로 괴롭히거나 죽게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가끔은 섬뜩하다.
벌레를 죽이고 난 후 아이의 천역덕스러운 웃음. 왠지 등꼴이 오싹하다.
그때의 느낌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 바로 이 피그토피아였다.
피그토피아, 돼지 왕국을 지키기 위한 잭 플럼과 돼지 소녀 홀리 록의 행동이 바로 벌레를 죽게하고 나를 향해 웃던 한 아이의 웃음을 떠올리게 하엿다.
책은 처음 마치 동화같기도 하고, 순수한 느낌으로 시작하였다.
잭과 홀리의 외모를 뛰어넘는 공감과 우정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잭의 기형적 외모도 왠지 동화속 느낌을 가지게 하였다.
그런데, 엄마의 폭력이 점점 그 순수함을 잔인함이라는 멍을 남기게 되었고,
그들이 서로 공유한 비밀은 돼지 왕국은 아이들의 순수함에 핏빛으로 물들게 하였다.
오래전 [파리 대왕]을 본 적이 있다.
난 이 [피그토피아]를 읽어가면서 [파리 대왕]을 떠올리게 되었으며,
선과 악, 그리고,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파리 대왕]에서의 남자아이들은 자신들 무리내에서의 권력다툼 속에 들어나는 잔인함이었다면,
이 [피그토피아]에서는 잭과 홀리의 생존을 위한 잔인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생존이라는 것이 심하다는 말을 할수 도 있지만, 박해와 학대를 받는 아이들에게는 생존과도 같은 의미일거라고 본다.
선과 악에 대한 개념과 기준이 생기지 않는 아이들.
그리고, 기형적인 외모 등으로 차별받고 박해 받던 아이들.
그들에게 선을 기대하는 것이 어쩌면 죄악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가 [파리 대왕]과 [피그토피아]의 아이들을 탓할수 있을까?
그들을 비판하고 싶고, 탓하고 싶지만, 그럴수 없는 안타까움과 아픔이 전해왔다.
이처럼 이책은 내게 많은 질문과 고민을 던졌고, 무언가 특별함이 오랜동안 기억에 남을 책인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