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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 - 참 나를 찾는 진정한 용기
파올라 마스트로콜라 지음, 윤수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귀여운 그림의 표지, 그리고, 제목에 난 속았다.
이책이 그저 쉽고, 밝고 명랑한 이야기일줄만 알았다.
물론 밝고, 간결하고, 단순한 문체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주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너는 누구이고, 누구이고 싶은가?"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었다.
이책의 스토리는 전반적으로 한 고아의 자아 찾기 여정을 그리고 있다.
크리스마스 밤, 잭이 저녁식사에 처가에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 정신없이 운전하던 트럭에서 태어난 작은 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부모가 누군지도 모를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저 태어나 쥐모양 슬리퍼에 의지할뿐이다.
그녀는 슬리퍼를 자신의 엄마로 여기고, 자신이 슬리퍼라고 인지한다.
그런 그녀의 자아찾기 여행은 비버인 조지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비버 조지는 유명한 건축가이자 노동을 중요시 하는 비버가운데 가장 연장자 이며, 공동체 우두머리 레지널드의 아들로 옥스퍼드 유학을 꿈꾸는 사색가이다.
그는 그녀에게 그녀의 엄마 주모양 슬리퍼를 이동시킬수 있는 수레를 만들어주었고,
그녀가 비버마을에서 지낼수 있게 해준다.
이때까지도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어떤 모습인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그녀는 비버마을에서 비버이기를 갈망하고 그 무리에 속하여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엄마가 사라졌고, 그녀의 여행은 엄마찾아 시작된다.
그녀의 첫 여행에서의 만남은 박쥐 폴트론 스트렐이다.
그는 매우 바쁜듯 움직였고, 실체도 없는 것을 위해 위원회를 만들고, 항상 검은색 샤워를 하고 검은색으로 돌아다니는 박쥐집단 공동체 회장이었다.
그녀는 실체도 없는 것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박쥐이고 싶지 않았고,
그속에서 폴트론의 아들 회색 박쥐 피피 스트렐을 만난다.
그는 자신의 회색빛 때문에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숨어지낸다.
피피와 그녀는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서로를 칭찬해주면서 지낸다.
그때 그녀의 정체 하나가 들어난다. 노란색 깃털.
그녀는 하나씩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박쥐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다시 박쥐마을을 떠난다.
그녀가 여행끝에 만나 사람은 여자아이.
그녀는 입양된 여자아이로, 그녀에게 입양되길 권한다.
입양되기위해 떠난 길에서 만난 마담학과 펜니 코터.
그들은 긴다리마을에 살고 있는 부부로, 그녀에게 남자친구를 찾으라고 권한다.
학과 펜니코터 (플라밍고)는 겉치장을 중요시하는 사람으로서 남의 이목을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남자친구찾기를 시작하게 되고, 그녀는 자신이 오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오리클럽에 참석하지만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꼬리가 짤릴까봐 걱정하는 도마뱀 루치오를 만난다.
그리고, 남자친구 찾기는 프랑코 폰닥을 만나면서 끝이난다.
하지만, 프랑코 폰닥의 양다리에 실망하고 좌절하여 그녀는 그렇게 다시 마담학과 펜니 코터의 곁을 떠난다.
그녀는 사막에서 두더지를 만나게 되고, 사막을 떠나 날아간 바닷가에서 늑대를 만나게 된다.
결말은 책을 읽어보고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좀더 나을듯 싶고, 결론은 이책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책은 오히려 여행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녀, 즉 노란오리가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속에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는듯 싶다.
제목에서 처럼, 오리는 자신이 누군이지 몰랐다.
때로는 슬리퍼이기를, 비버이기를, 때로는 박쥐이기를 소망하고 인식하였지만,
그것은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오리라 불리어도, 오리라 불리지 않아도, 그녀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책에서 독특한 구조중 하나는 그녀를 진정 이해하는 친구들은 이름이 없다.
그저 늑대이고, 두더지이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저 그녀일뿐이다.
또하나 그녀가 자신을 찾아 여행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맞는 곳, 스스로가 만족할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난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날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을 날아서 모두 만났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돌아온 바닷가. 그곳이 바로 그녀가 원하는 곳이며, 그녀가 만족감을 얻을수 있는곳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때로는 비버공동체처럼 살수도 있고, 박쥐처럼 살수도 있을것이고, 긴다리마을사람처럼 살수도 있을것이다.
스스로가 바라고 원하는것, 주변의 기준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물음과 질문을 통해 만족하고 바라는 것을 하고, 그 집단에 속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생복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