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찬
장석주 지음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새벽.
나에게 새벽은 만나기 어려운 시간 중에 하나이다.
밤의 끝자락과 낮의 여명이 만나는 그 시간이 새벽이다.
우리시대에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올빼미 족에게는 새벽은 꿈나라에 빠지는 시간이다.
며칠 전 새벽에 깨어있은 적이 있었다.
정확히 깨어 있던 적이 아니라, 깨어나게 되었던 시간이다.
열대야에 시달리다가 너무 더워 일어나게 된 시간이 4시를 지나 5시를 향하고 있었다.
난 더위에 방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무지개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 무지개 덕분에 난 새벽부터 하루 종일 깨어있게 되었다.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기도 했고, 저 무지개를 난 지금 누구와 공유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도 들고, 뜻하지 않은 방문객을 맞은 반가움도 있었다.
참 별거 아닌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벽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무지개 때문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열대야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난 한참을 사색에 빠져 졸음을 쫓고 있었다.
그래서 이 새벽 예찬을 읽으면서, 작가의 사색적이고, 자연경외적인 글을 보면,
그때의 그 감흥과 겹쳐져 마음이 편해지고, 반갑기도 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아울러 살아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의심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육체는 그 진리를 가두고 있는 감옥이지요.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몸은 마음 가는데 따라가는 어린애지요. 항상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 61 –
몸의 노예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에 있어서 마음가짐과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중요하고 그것이 살아있다는 의미이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글속에서 작가가 삶에 임하는 자세를 비춰볼 수 있었습니다.

새벽은 장엄하고 신성한 시각이지요. 밤의 소란은 끝나고 새벽은 그 밤의 소란을 적나라하게 비춥니다. ~중략~ 혈기방장한 것들이 물러난 새벽 거리는 한산하고 고요합니다. – 129 –
작가의 이 글은 밤의 환락에 빠져 허우적 대는 현대인들을 비꼬고 있으며, 새벽녘의 정화된 느낌을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때 본 무지개 뿐만 아니라, 새벽녘의 조용함과 시원함에 반한 면도 있어, 이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고, 저또한 이 정화된 느낌이 고요한 느낌이 좋았습니다.

생각은 짧고 몸가짐은 살뜰하지 못했습니다. 그랬으니, 봄날 담 밑 모란꽃 붉은 움 돋듯 청신하지도, 가을날 창공에 매 날 듯 날렵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자에게 고맙게도 새해는 옵니다. – 241 –
새해는 오고 가는 것으로만 여겼던 나는 나의 한해 반성은 그저 반성일뿐 그리고, 돌아오는 새해는 당연히 받아들였는데, 작가는 그 또한 고맙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겸손함에 고개가 숙여지던군요.

스스로를 어리석은 자라 칭하는 작가의 글은 무척 동양사상이 가득한 자연회귀적인 사고를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있었다. 작가의 소개를 보자, 고전 노자, 장자, 공자 읽기를 즐거움으로 삼으며 삽살개와 함께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하였다.
정말 이 작가의 소개만으로도 이 책의 전부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자연과 새벽의 고요하고 정화된 깨끗한 이미지, 그리고 책, 음악, 개를 사랑하는 모습이 산문집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치 물안개 가득한 새벽녘 호숫가에 서있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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