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요즘 보는 사람마다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 특히 여성들은 꼭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무엇일까? 연애소설이겠거니 하면서 책을 뽑아 읽었는데, 예상과 달리 "정신분석'에 대한 이야기였다. 프로이드가 이야기한 '오디푸스 컴플렉스'나 "에렉트라 컴플렉스'에 대해 평소 말도 안되는 사이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의 사고를 바꾸게 된 소설이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 그 운명적․ 숙명적 고리. 그 딸과 아들이 또다시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된다. 엄마나 아빠로부터 충분하고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은 자는 제대로 된 아빠와 엄마가 되어 자식에게 사랑을 줄 수 있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경우 그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타인에게 사랑을 많이 베풀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타인도 사랑할 줄 모른다. 같은 의미로 분노할 줄 모르는 자는 사랑할 줄도 모르는 것이다.



0세에서 3세 사이에 아이의 모든 정서가 형성된다. 이 시기에 부모의 영향력은 아이에게 절대적이다. 이 때 버림받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정신병자가 될 확률이 높고, 강아지의 경우 90%가 사망한다고 한다. 이때 처리하지 못한 분노와 적개심을 무의식의 세계에 꾹꾹 눌러놓고 이것들이 누적되면, 무의식에 뜨겁고 딱딱한 분노의 덩어리가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무의식의 세계가 의식의 세계보다 훨씬 깊고 영향력이 크다. 어릴 적의 일들은 잊혀진 듯하지만 무의식은 다 기억하고 있다가 성장한 후에도 곳곳에서 튀어나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의 말 한마디와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 책속에서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아이가 귀찮아할정도로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노이로제이다. 분명 똑같은 영화를 보는데 더 많이 우는 사람이 있고, 울지 않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상황인데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 있고, 화를 조금 내거나 아예 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슬픔이 혹은 분노가 가슴속에 많이 쌓여있는가의 차이이다.



  나는 내 스스로 감정이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한다. 여리다고도 이야기한다. 내 머리속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는데도 눈물이 잘 흐르고 얼굴은 잘 붉어진다. 그냥 남들보다 더 예민한 감정을 소유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게 느낀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다. 내면에 슬픔이 분노, 적개심이 많이 쌓여 있었던거다.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펑 터지고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서 필요이상으로 화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미처 제어하기도 전에 그렇게 된다. 그게 신경증이란다. 그건 무의식의 세계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그 땐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랑받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 분노와 적개심이 된다. 외로움과 적개심이 타인에 대한 분노와 지나친 자기방어의 심리로 변하게 된다. 타인을 잘 비판하는 자. 남의 흠집을 잘 찾아내는 자는 마음속에 분노와 적개심과 자기방어가 많은 사람이다. 필요이상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자, 이야기를 너무 하지 않는 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타인에게 투사시켜 이야기(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누군가를 함부로 비판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게 다 나의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온순하고 합리적이고 밝아 보이는 사람이 반대로 속으로는 어둡고 불만이 많고 자신을 억압하며 살아온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멋진 거짓말처럼.



인간성 좋아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 끝까지 설거지하고 사람,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채택한 생존방법이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나 팃낙한의 [화]같은 책은 남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그 나름의 논리적인 이유를 대고 있지만 웬지 공중에 뜬 이야기인 듯 하다. 이해는 하겠는데 실천이 잘 안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 공격적인 사람들, 편협한 사람들”에 대해 함부로 비판하는 대신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지옥을 안고 사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생긴다. 그러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말도 가려서 하게 된다. 결국은 [행복론]이나 [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과 결론은 같은 것이다.



전에 읽은 책에서 사람들이 실연의 상처에 아파하지만 또다시 '사랑'을 찾아 헤메는 이유는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다시 받고 싶어서라고 한다. 무조건 "정말 이쁘다." "정말 잘한다."라는 충만한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부모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대한 분노를 이성을 만나 채우려고 하는 심리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부모와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부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겠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하게 해 준 책이다.


우선은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엄마가 자꾸 떠오른다. 엄마라는 존재는 정말 위대하면서 중요한 존재이다. 우리 가족중에서 가장 희생적이면서도 우리 가족은 엄마에게 가장 짜증많이 부리기도 한다. (비단 우리집 뿐이겠는가.) 바꿔 말해서 사랑을 가장 원하는 대상도 엄마이고, 기대한 만큼 사랑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짜증부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저멀리 할머니의 할머니 세대로부터 가까이 우리 엄마세대까지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남자형제들에게 차별당하고 양보하며 살아왔다. 그런 것이 무의식에 베여 또자신의 딸들을 차별한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인 것이다. 차별하는 엄마들은 밉지만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더 많은 차별을 감내하고 자신의 소중함을 모랐으며 평생 남에게 희생하고 양보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엄마에게 잘 해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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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0-2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귀찮아 할 정도로 사랑하라! 정말 멋진 말이네요.
부족한 사랑 조금 더 노력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