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0701 카렐 차페크
체코어 노동, 부역에서 로봇이란 말이 나왔다는 어원 설명은 자주 봤다. 우연히 로봇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체코 작가 차페크의 희곡을 읽게 되었다. 
로숨 박사와 그 아들은 인간을 닮았지만 노동에 방해되는 인간의 쓰잘데 없는 특성을 제거한 새로운 생명체 로봇을 창조하고, 대량 생산 공장을 갖춘다. 그들에 이어 도민은 인류를 비참한 노동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꿈으로 섬의 공장에서 끊임 없이 로봇을 만들고 세계로 퍼뜨려 나간다. 도민과 그를 돕는 무리들은 로봇을 해방시킬 목적으로 섬에 도착한 인권단체 회원 헬레나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헬레나는 도민과 결혼한다. (레스터가 쓴 헬렌 올로이의 1930년대 헬레나보다 1920년대 헬레나가 원조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
헬레나가 섬에 온지 십 년 , 세계는 그간 로봇의 노조 결성, 로봇이 동원된 인간의 전쟁, 로봇의 반란을 겪는다. 섬의 남자들은 헬레나에게 그런 문제들을 감추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감상하는 데만 바쁘다. 로봇 제조의 핵심 문건을 넘기냐 마냐 문제를 의논할 때도 그녀의 의견은 무시한다. 그러나 정작 로봇에게 인간다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특성을 (헬레나에게 반해 그녀 의견을 거절 못할) 갈 박사를 통해 로봇에게 심은 것은 그녀였다. 또한 핵심 문건을 태워 로봇과 협상 여지를 없애고 로봇의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도 그녀다. 이런 부분은 트로이 전쟁을 헬레나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핑계 좋게) 그린 서사시의 오마주 처럼 보이지만, 헬레나의 바람대로 실험이 진행된 로봇은 극소수였고, 인간에게 노동을 착취당하던 로봇들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생겨났다는 대사를 통해 결국 인간들이 자기들 편한대로 이용할 수단으로서 로봇을 만들어낼 때부터 로봇의 반란은 일어날 수 밖에 없던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 그런 와중에도 유니버설 로봇이 아니라 인종별 로봇을 만들어 만국의 로봇이 단결하지 못하게 하려는 인간들의 아이디어란...성경에 언어를 갈라 민족들을 흩어뜨려 바벨탑을 못 쌓게 한 것도 생각나고, 노조 분쇄하려고 이간질하고 회유하고 어용노조 만드는 자본가의 계략도 떠오르고, 1920년대 막 산업화가 무르익던 시절 과학 기술 발전과 산업의 고도화와 자본의 발전이 어떤 식으로 흐르게 될지 작가가 너무도 통찰력 있게 파악하고 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 로봇은 왜 필요한데? 하는 물음과 (거기에 내가 기대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지만...변태 새끼)헬레나를 대하는 태도는 아마도 그 당시 프로토 타입이겠지만 지금 관점으로는 그런 모습을 부각시켜 놓은 게 의도적인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음 이건 너무 나갔다...그래도 성역할에 대한 인간 남자들의 관점은 꽤 거슬리고 눈에 띈다. )
인간은 로봇을 착취하면서 일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부실한 인간보다 우리가 못한 게 뭔데!(로봇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하는 각성을 한 로봇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생각이 담긴 도서관 책을 읽고)  강한 자신들이 인간을 지배하고 싶다, 힘으로 때려 부숴야지, 하는 못된 것을 배워 실제로 인간을 거의 다 죽여버린다. 
로봇 노동 시대에도 여전히 벽돌을 쌓으며 일하던 노인 알퀴스트를 로봇을은 일하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다, 하면서 유일하게 살려둔다. 그에게 불타버린 제조 비법을 알아내 로봇의 재생산, 그들 말로 생명 탄생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부추긴다. 일하던 손을 자랑스러워 하던 알퀴스트는 로봇 다몬을 실험체로 해부하다 포기하며 피로 물든 자기 손을 저주한다. 그리고 빡대가리 문과생...아, 아니 정말 번역에서 서툰 이과생 운운하며 자기가 생명 탄생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할 것을 진즉에 알고 자책하다 기적을 바라다 오락가락 하며 인간을 그리워한다. 
때마침 갈 박사 생전 남겨둔 최신 로봇 헬레나(CEO 부인과 동명의 아름다운 로봇)와 로봇 프리무스가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서로를 대신해 자기 희생을 감수하려는 모습을 본 알퀴스트는 태초의 아담과 이브를 보듯 희망을 느끼며 생명의 불멸을 확신한다. 알퀴스트가 다몬 해부하려다 좌절하고 곧바로 더 인간적인 헬레나랑 프리무스를 해부하겠다고 나서는 건 이거 미친 놈인가 싶었다. ㅋㅋ

모든 인간 닮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차페크도 자기 소설을 두고 작가들이 토론한 것에 대해 반론을 통해 그 점을 밝혔다. 블레이드 러너도 그렇고 로봇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터스텔라도 그렇고 결국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랑 탓, 사랑을 잃은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남기 힘들다. 인간 같지 않은 무슨 짓이든 한다. 
그러면 인간 아닌 존재가 사랑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인류로 품을 수 있을까? 헬렌 올로이의 사랑을 부정하지 않고 안을 수 있나? 루카의 사랑에 그의 전원을 끊지 않고 화답할 수 있나? 알파고가 세돌 형님한테 바둑 잘 두는 당신에게 반했어 하면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 상황을 대할까? 
에이, 인간끼리 빚어내는 갑작스러운 사랑에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 마당에. 멀었다. 그냥 상상과 소설과 픽션으로만 막연하게 남겨둘 뿐이다. 어제 홀로그램 기술 검색하다 홀로그래피랑 결혼한 남자(다키마쿠라에 이어 다들 경쟁적으로 미개척 신분야 도전하는 듯)란 영상 제목보며(도저히 클릭할 자신이 없어) 절레절레 한 나도 멀었다. 마음으로 빌어줘야지. 예쁜 사랑하세요. 
 연극으로 시연되는 로봇도 정말 보고 싶다. 소재 자체가 당시로도 파격적이어서 무대 장치나 로봇 연기에 여러 실험적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실현된 미래가 아니니까 지금도 재미있는 무대가 나올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