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190413 백수린

박완서 작가 헌정 콩트집의 언제나 해피엔딩 이란 작가의 글이 좋아 첫 소설집도 구해 보았다. 생각보다 좋았다. 자꾸 언젠가 읽어 본 것 같은데 처음인 게 확실했다.  날이 따뜻해지고 소설 읽기 좋은 날들이다. 

-감자의 실종
다른 건 안 그랬지만 이건 왜 자꾸 읽어본 것 같았나 모르겠다. 감자, 개, 신념, 내가 쓰는 어휘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의미라면. 굳이 이렇게 쓰고 보면 언어가 가진 사회성 공유성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모두가 같은 걸 가리키지는 못하더라도 이만큼이나마 유사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기적이 아닐지. 내가 멍멍대면 너는 찍찍대고. 
-자전거 도둑
안나, P, 가질 수 없는 것, 상대적 박탈감, 관음, 치졸하고 질투어린 마음을 나름 잘 그렸다. 타인과 같이 사는 고충, 친하다가도 멀어질 수 밖에 없는 다름, 비교, 시기, 그런 날들이 있었지. 
-폴링 인 폴
조금 오그라들지만 못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더 좋은 소설 많은데 그저 제목이 느낌이 좋아 소설집 제목이 되었을 듯하다. 이 소설에서 한국어 교사가 한국어 배우는 교포를 짝사랑하는데 거짓말 연습에는 프랑스어학연수 떠난 언어를 배우는 화자가 등장해 약간 짝을 이루는 느낌이다. (소설의 온도나 어조는 전혀 다르지만.) 연인을 가져 본 적 없는 이의 짝사랑, 그런 입장에서 폴과 폴의 아버지와 폴의 연인에 대해 전해 듣는 상황. 한국적인 것에 대해 돌아보기.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
오래된 연인을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다시 보게 되는 이야기. 배경이 다른 나라인 소설이 제법 등장한다. 작가가 프랑스어를 전공해서 그런지. 디디의 우산에도 소수자여서 제거당한 이들을 기념하는 공간이 나오는데 이 소설도 비슷하게 유태인 박물관이 등장한다. 늘 보던 곳이 아닌 곳에서 관계라는 것을 다르게 볼 기회가 생겨서 그런지. 
-밤의 수족관
초반부터 너무 빨리 예측이 되는 전개라 아주 잘 쓰인 것 같지는 않다. 나도 믿을 수 없는 기억에 대한 건 아이디어는 좋지만 역시나 납득이 될 만하지는 않은 설정이었다. 예전에 연예인과 자신이 결혼했다 주장하고 자기 싸이월드에도 여보여보 도배해놓고 결국 정신 이상으로 자기 어머니를 살해했던 어떤 사람이 떠올랐다. 현실을 압도할 만한 픽션은 그리기 쉽지 않다. 하하. 우주처럼 화자를 감싸는 수족관에 대한 묘사는 좋았다.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
이 소설은 기묘한 분위기가 좋았다. 리와 킴 리와 이방인 여성 관광객을 대조하는 것, 말하고 싶은 게 약간 뻔하기도 하지만 까마귀가 달라붙은 성, 나무, 오래된 은행나무, 서울대공원 만큼 수도권 사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고궁 배경 묘사가 분위기를 잘 지어냈다. 노골적인 심리묘사로 리를 너무 대놓고 쓰레기로 보여주는 건 조금 재미가 반감된다.  
-거짓말 연습 
프랑스어학연수 간 화자가 머문 기숙사, 마을, 만난 할머니, 성당, 어릴 적 엄마의 거짓말, 정리하게 될 남편과의 관계, 끝나지 않는 파업과 오지 않는 입학허가 우편물 등 관계와 언어에 대한 고민이 압축되어 있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다른 소설들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계속 변주된다. 언어에 대한 고민, 소통, 이해할 수 있을까애 대한 불안, 회의, 닿고 싶지만 닿지 못하는 마음. 
-유령이 출몰할 때 
유령이 초토화시킨 대학 시절 머물던 K구역에 홀로 카르페디엠 카페를 지키며 커피를 내리는 선배를 만나러 가는 고시생 이야기. 굳이 화자가 그곳을 찾아가는 개연성이 약하긴 하다. 
-꽃 피는 밤이 오면
슬픈 이야기다. 언어를 잃은 남편.은 비유가 될수도. 굳이 진짜로 말을 못하게 되는 게 아니라도 세월과 함께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연인이 생각보다 많다. 받아 적는 일. 나름의 노력. 마음에도 자막이 있으면 정말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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