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5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뭔가에 대해 확실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물질적인 부나 정신적인 부나 마찬가지다.
내가 종종 겪었던 것처럼, 확실히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뭔가를 잃은 사람은 결국 깨닫게 된다.
진실로 자기에게 속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P.122

자신을 전부 내주는 사람,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한하게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한다면,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각자가 느끼는 것은 각자의 책임일 뿐,
그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나는 사랑했던 남자들을 잃었을 때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P.246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얻었다.
나 자신이기를 그만두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찾았다.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왠지 코엘료같지 않다.
낮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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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작가는 이 그림을 보고  ‘이 소녀는 누구일까’  ‘베르메르는 왜 이 소녀를 그렸을까’  ‘소녀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라는 궁금증에서 소설을 쓰기시작했단다.

나 또한,

그림속의 소녀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이 소녀의 눈빛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바라볼 수록 알수없는 묘함이 전해져온다.

무슨 할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로는 표현 못하고 눈으로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도 하고,
슬픈것 같기도 하고,
그냥 멍한 것 같기도 하고.....
참으로 그림속의 이 소녀는 명확한 표정이 아니다.
한가지 단어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은 너무 재미있지만 그래서 지금에와서는 이 책을 읽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이 그림을 나만의 느낌으로 만끽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 느낌이다.

책을 읽기 전 표지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바라볼 때와 이 책을 읽은 후 그림속의 소녀를 보는 내 생각은 이미 후자에 지배당하고 말았다.

이런,

나만의 시선으로 '진주 귀고리 소녀'를 보는 자유를 도둑맞아버린 기분이다.

그래도,
(항상 어쩌구 저쩌구해도 마지막 말이 젤 중요한거다)

이 책은 하룻밤 나를 사로잡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행복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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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 요시모토 바나나 글. 김난주 옮김. 북스토리.

영국에서 읽을꺼리가 궁해 고생을 했던 관계로 설에 와선 책방에들러 이것 저것 눈에 띄는데로 주섬주섬 책을 고르고 있던중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 칼럼에 글을 올렸듯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들은 내겐 흥미를 끌지 못한  작가였지만 딱히 읽을꺼리를 정해놓지 않은 지금같은때엔 본전치긴 될것이라는 생각으로 주저없이 골라온 것이 [N.P] 였다.

사가지고 온 다른 책들을 다 읽고난후에나 손에 들은 이 책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작가의 작품이 좋아 다음 작품을 자꾸 읽어가다보면 나중엔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고,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간혹 잼없게 읽었던 어떤 작가의 다음 글이 전보단 훨 나은 경우는 있었지만  [N.P]하나만으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작가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어떤 요소들이 작가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을 완벽하게 변화시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결한 문장과 문장속에 살아숨쉬는 느낌들이 신선하게 하나하나 와 닿았다.

스토리에서 주는 흥미로움과는 아주 다른 세밀한 느낌들이었다.


[N.P]는  마흔여덟 살에 자살한 '다카오 사라오'작가의 아흔여덟 번째 단편 번역을 의뢰받았던 쇼지의 연인 카자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쇼지는 번역하던 중 자살을 하고 그로부터 5년후 여름날 카자미에게 세명과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다카오 사라오의 이란성 쌍둥이 자녀인 오토히코와 사키, 그리고 스이.

그럼으로 카자미는 잠깐의 꿈을 꾼 듯 여름날을 보내게 된다.

마치 예정되어있던 만남처럼.

스이가 카자미에게 보낸 편지에 그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즉 아버지의 몸에는 그런 것이 쓰여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조금 귀엽기만 하면, 그 여자가 이국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일본인 여자라면, 딸만한 나이라도 안고마는(불행하게도 진짜 딸을 )성격. 좋아하기는 하지만 비관적인 오토히코, 풋풋한 여고생이랑 사귀고 있는 주제에 인생에는 한 자락 희망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쇼지 씨.>>>>>>>


이렇게 제한된 네명의 이야기는 카자미의 눈으로 섬세하면서도 절제있게 그려지고 있다.

절제된 시선으로 슬픔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암울함과 어두움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책머리 부분에 카자미가 알수없는 뒤숭숭함으로 앞으로의 일을 직감적으로 예감하는 부분이 있다.

<<<<< 그날 아침 나는, 갑자기 눈을 반짝 뜨고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 눈으로 날아든 풍경은 커튼 틈새로 보이는 투명한 여름 하늘이었다. 하늘은 눈뜨기 전까지 꾸던 꿈과 아주 흡사한 톤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맑고 깨끗한 꿈의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여 돌아온 것 같은 감촉이 남아 있었다.

 '슬퍼서 운 건지, 아니면 슬픈 일로부터 해방되어 운건지, 어느 쪽이  됐든 아직 깨고 싶지 않았는데.'라고. 멍하니 생각했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덕분에 그날은, 연구실에 출근하고서도 그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나는 찻잔을 깨기도 하고, 복사를 잘못하기도 하는등 실수만 연발하여, '참 이상하네'란 말을 연거푸 중얼거려야했다. 정말 뭔가 이상했다.

 꿈의 감촉이 현실에 파고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리면, 어떤 꿈이었더라,하고 줄곧 생각하는 자신이 느껴졌다......>>>>>>>


카자미는 쇼지와의 마지막 통화를 5년후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여보세요."
힘찬 목소리로 쇼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안심하여,
"학교예요"
라고 말했다. 뒤에서는 여자 고등학교의 점심시간 (생략)

"시끄럽죠?"

"눈이 부실 정도야."
,
,
,
,
,
,
시끌벅적한 소리는 마치 공간을 다 메울 듯, 온 학교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마치 30분에 온 하루의 자유가 꼭꼭 담겨 있는 것처럼, 마음껏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저 높은 곳에 파란 하늘이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거리를 질러가는 눈부신 오후.

"그럼 끊을께요."

"음"

이라고 전화를 끊었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전화선 이쪽과 저쪽, 쇼지가 있던 공간과 내가 있던 장소 사이의 거리, 천국과 지옥보다 더 멀고 복잡한, 아무리 좋아해도 결코 전해지지 않았던 것, 전하려 하지도 않았고, 전할 재주도 없었고, 수신 능력이 없어, 알 길조차 없었던 것.

(생략)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먼 사막에서 일어난 이야기처럼, 저 먼먼 옛날, 지금은 희미해진 슬픈 세계에서 일어난,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고통스런 이야기라 생각했었다. 나만은, 그런 낙원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었다.>>>>>


글재주가 없는 관계로 부분 부분의 느낌을 책가운데서 발췌하다보니 너무 많이 적고야 말았다.

특히 카자미와 오토히코의 대화로 글을 마무리하는 부분은 매우 좋았다.

헌데 책을 읽으며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앞서 발췌한 부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콤마(?)가 남발되어 있다.

콤마 (,)

너무 많아 문맥이 자꾸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과연 적절한 사용이었는지 궁금하다.

알길이 있어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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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여화 저/ 최용만 역 / 푸른숲

주문한 책이 배송되면 제일 먼저 손이 가는 책이있다.

배송료를 안 낼만큼 책을 주문하자니 항상 대여섯권을 한꺼번에 살 수밖에 없다.

몇권의 책 중 가장 늦게 손에 잡게 된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은 기대이상의 큰 재미를 보았다.

그야말로 책읽는 재미를 톡톡히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책을 사기전 간단한 리뷰를 읽게되는데 허삼관이라는 작자가 피를 파는 이야기가 그닥 궁금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의 전작이 '인생'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기에 호기심에서 주문하였던 책이다.

읽어내려가며 '우하하'소리내서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고 - 책을 읽으며 소리내서 웃어 본 기억이 까마득하기만하다 - 또 어느 순간 가슴이 찡하여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소설을 읽으며 지독히도 인간적인 허삼관이라는 작자에게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레뻘레 피를 팔러가게되어 얻은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심하다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피를 판 돈은 혼을 판 것과도 같다는 생각에 함부로 못쓰고 귀중히 여긴다.

허나 살다보니 남들이 보면 비웃을 일에 피를 팔게도 되고 때론 어쩔수없이 피를 팔게되는 허삼관의 삶이 참으로 웃음이 나올지경이다.

중국에선 '자라대가리'라는 말이 무척이나 존심상하는 욕임에도 허삼관은 자라대가리라는 소릴 들으며 치욕스러움을 느끼고 결국은 자라대가리짓을 하고야 말게되지만 마음속의 중심만은 꿋꿋하게 받치며 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는 이 책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을 만큼 재미가 있다.


(이부분은 책을 읽을 분들은 건너뛰길)
허삼관이 부인과 결혼하기전 그녀에겐 혼사이야기가 오가는 이가 있었는데 허삼관이 세 아들을 낳고보니 큰 아들이 날이갈수록 부인과 혼사이야기가 오고갔던 그놈을 닮아가니 주위에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결국 부인의 자백을 받게되고 이런 저런 사건으로 그 남자로 인해 온갖 수모를 겪게되니 허삼관은 다른 두아들을 앉혀놓고 하는 말이, '너희들은 잘 명심해라. 그 000라는 작자는 니들 형의 애비로 우리집을 망신시킨 장본인이니 너희들이 이 일을 꼭 명심하고 다들 훗날 원수를 꼭 갚도록 하여라.'
' 그에겐 두 딸이 있으니 훗날 니들이 크면 그 딸을 꼭 강간하도록 하여라. 그래서 우리집의 원수를 갚도록 하여라. 명심하거라. 꼭 훗날 그 딸을 강간하여라'라며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그간 허삼관이 당한 치욕이 물거품이 될 정도로 웃음보를 터뜨리고 만다.

극심한 가뭄과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적 궁핍함에 시달릴때 피를 판돈으로 큰맘먹고 외식을 하게되는데 자기자식이 아닌 일락에게만은 그 돈을 쓸 수없다며 군고구마 사먹을 돈만 쥐어주고 국수를 먹으러 간 후 일락이가 느끼는 그 쓸쓸함엔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을지경이다. 가출한 일락이를 마지못해 찾아나선 허삼관은 대뜸 험한 이야기를 쏟아붓지만 결국 일락이를 등에 엎고 국수를 먹게되는 따뜻함과 그로인한 부자간의 신뢰는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자식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 끈끈하기 그지없다.

마지막 장면마저 가슴저릿함을 뒤로한채 웃어버릴 수 밖에 없도록 만드니 작가의 글솜씨에 감탄을 하지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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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책을 읽은 소감을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든건 정말 오랫만의 일이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건 한 한달쯤전이다.
신간 소개의 첫 문장에 써있던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에 덥석 두권의 책을 주문했다. 나에게 움베르토 에코라는 이름은 일종에 종교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 종교를 종교일 수 있게 했었던 이유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제사장 중 한 명인 "이윤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에코에 대한 신앙심이기 보다는 이윤기에 대한 신뢰가 더 깊었는 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아니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이 책은 옷거름을 풀어주기를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아니다... 짙은 화장에 하얗게 허벅지를 드러내고 아찔한 향수로 남자의 본능을 유혹하는 카지노의 콜걸같은 모습으로...
그녀는 그렇게 나와의 합방을 기다리고 있었고, 무심한 나는 어느새 그녀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은 채 서서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쩌면 어설프게 유혹 당하지 않으려는 섯부른 자존심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달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훌리아, 혹은 베아트리스...

새벽 4시 40분,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던 나는, 마침내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6시간...
그녀와 나의 뜨거운 정사는 쉴 새 없이 계속됐다.

체스 게임이라는 1471년에 그려진 그림을 시작으로,
알려지지 않은 유럽의 역사를 거쳐,
체스의 묘미에 빠졌다가,
인생의 신비함으로, 사랑으로, 죽음과 질투로...
올라가는 듯 하다가는 내려서고, 조였다가는 풀어지며, 거칠게 몰아쳤다가도 안개처럼 스물거리며... 그녀와 나는 침대에서 책상으로, 책상에서 욕실로, 욕실에서 마루로... 거침없이 굴러다니며 아낌없이 몸을 불태웠다.
그렇게 불태우고, 사그라들었다.
좁은 작업실은 그녀와 내가 흘린 끈적한 땀방울과 욕망의 찌꺼기로 흥건히 물들었다.

그녀가 내가 느낀만큼의 오르가즘을 느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클라이막스에 다달아 내 안의 욕망을 하늘 높이 쏟아올리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그녀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천천히 천천히 우아하게 마지막 몸짓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성격 차이 일수도 있고, 어쩌면 궁합이 안맞아서 일 수도 있지만, 나는 가능하면 그녀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아주 부드럽고 느린 동작으로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나를 지치게 했는지도모른다. 어쩌면 나는 끝내 사정하지 못한채 아쉬운 마무리를 한 것 같기도 하다. 욕심때문일까?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 그녀 대신 에코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처럼... 나는 제풀에 지쳐 허덕일 뿐이었다.
그것은 허무라는 이름의 질투와 아쉬움이었다.

섬세한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녀의 아름다운 부인 베아트리스,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그녀의 연인이었던,,, 용감한 기사 로제 드 아라...

로제 드 아라... "기사는 누가 죽였는가?"
나는 더 이상 기사를 누가 죽였는 지 궁금하지 않기로 한다. 왜 죽어야 했는 지도 궁금해 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 밤 나는 "뒤마 클럽"에 들어갈 것이므로...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作 / 정창 譯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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