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 요시모토 바나나 글. 김난주 옮김. 북스토리.

영국에서 읽을꺼리가 궁해 고생을 했던 관계로 설에 와선 책방에들러 이것 저것 눈에 띄는데로 주섬주섬 책을 고르고 있던중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 칼럼에 글을 올렸듯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들은 내겐 흥미를 끌지 못한 작가였지만 딱히 읽을꺼리를 정해놓지 않은 지금같은때엔 본전치긴 될것이라는 생각으로 주저없이 골라온 것이 [N.P] 였다.
사가지고 온 다른 책들을 다 읽고난후에나 손에 들은 이 책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작가의 작품이 좋아 다음 작품을 자꾸 읽어가다보면 나중엔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고,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간혹 잼없게 읽었던 어떤 작가의 다음 글이 전보단 훨 나은 경우는 있었지만 [N.P]하나만으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작가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어떤 요소들이 작가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을 완벽하게 변화시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결한 문장과 문장속에 살아숨쉬는 느낌들이 신선하게 하나하나 와 닿았다.
스토리에서 주는 흥미로움과는 아주 다른 세밀한 느낌들이었다.
[N.P]는 마흔여덟 살에 자살한 '다카오 사라오'작가의 아흔여덟 번째 단편 번역을 의뢰받았던 쇼지의 연인 카자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쇼지는 번역하던 중 자살을 하고 그로부터 5년후 여름날 카자미에게 세명과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다카오 사라오의 이란성 쌍둥이 자녀인 오토히코와 사키, 그리고 스이.
그럼으로 카자미는 잠깐의 꿈을 꾼 듯 여름날을 보내게 된다.
마치 예정되어있던 만남처럼.
스이가 카자미에게 보낸 편지에 그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즉 아버지의 몸에는 그런 것이 쓰여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조금 귀엽기만 하면, 그 여자가 이국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일본인 여자라면, 딸만한 나이라도 안고마는(불행하게도 진짜 딸을 )성격. 좋아하기는 하지만 비관적인 오토히코, 풋풋한 여고생이랑 사귀고 있는 주제에 인생에는 한 자락 희망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쇼지 씨.>>>>>>>
이렇게 제한된 네명의 이야기는 카자미의 눈으로 섬세하면서도 절제있게 그려지고 있다.
절제된 시선으로 슬픔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암울함과 어두움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책머리 부분에 카자미가 알수없는 뒤숭숭함으로 앞으로의 일을 직감적으로 예감하는 부분이 있다.
<<<<< 그날 아침 나는, 갑자기 눈을 반짝 뜨고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 눈으로 날아든 풍경은 커튼 틈새로 보이는 투명한 여름 하늘이었다. 하늘은 눈뜨기 전까지 꾸던 꿈과 아주 흡사한 톤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맑고 깨끗한 꿈의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여 돌아온 것 같은 감촉이 남아 있었다.
'슬퍼서 운 건지, 아니면 슬픈 일로부터 해방되어 운건지, 어느 쪽이 됐든 아직 깨고 싶지 않았는데.'라고. 멍하니 생각했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덕분에 그날은, 연구실에 출근하고서도 그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나는 찻잔을 깨기도 하고, 복사를 잘못하기도 하는등 실수만 연발하여, '참 이상하네'란 말을 연거푸 중얼거려야했다. 정말 뭔가 이상했다.
꿈의 감촉이 현실에 파고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신을 차리면, 어떤 꿈이었더라,하고 줄곧 생각하는 자신이 느껴졌다......>>>>>>>
카자미는 쇼지와의 마지막 통화를 5년후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 "여보세요."
힘찬 목소리로 쇼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안심하여,
"학교예요"
라고 말했다. 뒤에서는 여자 고등학교의 점심시간 (생략)
"시끄럽죠?"
"눈이 부실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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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소리는 마치 공간을 다 메울 듯, 온 학교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마치 30분에 온 하루의 자유가 꼭꼭 담겨 있는 것처럼, 마음껏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에너지가 폭발하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저 높은 곳에 파란 하늘이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거리를 질러가는 눈부신 오후.
"그럼 끊을께요."
"음"
이라고 전화를 끊었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 전화선 이쪽과 저쪽, 쇼지가 있던 공간과 내가 있던 장소 사이의 거리, 천국과 지옥보다 더 멀고 복잡한, 아무리 좋아해도 결코 전해지지 않았던 것, 전하려 하지도 않았고, 전할 재주도 없었고, 수신 능력이 없어, 알 길조차 없었던 것.
(생략)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먼 사막에서 일어난 이야기처럼, 저 먼먼 옛날, 지금은 희미해진 슬픈 세계에서 일어난,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고통스런 이야기라 생각했었다. 나만은, 그런 낙원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었다.>>>>>
글재주가 없는 관계로 부분 부분의 느낌을 책가운데서 발췌하다보니 너무 많이 적고야 말았다.
특히 카자미와 오토히코의 대화로 글을 마무리하는 부분은 매우 좋았다.
헌데 책을 읽으며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앞서 발췌한 부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콤마(?)가 남발되어 있다.
콤마 (,)
너무 많아 문맥이 자꾸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과연 적절한 사용이었는지 궁금하다.
알길이 있어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