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책을 읽은 소감을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든건 정말 오랫만의 일이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건 한 한달쯤전이다.
신간 소개의 첫 문장에 써있던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에 덥석 두권의 책을 주문했다. 나에게 움베르토 에코라는 이름은 일종에 종교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 종교를 종교일 수 있게 했었던 이유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제사장 중 한 명인 "이윤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에코에 대한 신앙심이기 보다는 이윤기에 대한 신뢰가 더 깊었는 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아니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이 책은 옷거름을 풀어주기를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아니다... 짙은 화장에 하얗게 허벅지를 드러내고 아찔한 향수로 남자의 본능을 유혹하는 카지노의 콜걸같은 모습으로...
그녀는 그렇게 나와의 합방을 기다리고 있었고, 무심한 나는 어느새 그녀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은 채 서서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쩌면 어설프게 유혹 당하지 않으려는 섯부른 자존심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달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훌리아, 혹은 베아트리스...

새벽 4시 40분,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던 나는, 마침내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6시간...
그녀와 나의 뜨거운 정사는 쉴 새 없이 계속됐다.

체스 게임이라는 1471년에 그려진 그림을 시작으로,
알려지지 않은 유럽의 역사를 거쳐,
체스의 묘미에 빠졌다가,
인생의 신비함으로, 사랑으로, 죽음과 질투로...
올라가는 듯 하다가는 내려서고, 조였다가는 풀어지며, 거칠게 몰아쳤다가도 안개처럼 스물거리며... 그녀와 나는 침대에서 책상으로, 책상에서 욕실로, 욕실에서 마루로... 거침없이 굴러다니며 아낌없이 몸을 불태웠다.
그렇게 불태우고, 사그라들었다.
좁은 작업실은 그녀와 내가 흘린 끈적한 땀방울과 욕망의 찌꺼기로 흥건히 물들었다.

그녀가 내가 느낀만큼의 오르가즘을 느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클라이막스에 다달아 내 안의 욕망을 하늘 높이 쏟아올리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그녀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천천히 천천히 우아하게 마지막 몸짓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성격 차이 일수도 있고, 어쩌면 궁합이 안맞아서 일 수도 있지만, 나는 가능하면 그녀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아주 부드럽고 느린 동작으로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나를 지치게 했는지도모른다. 어쩌면 나는 끝내 사정하지 못한채 아쉬운 마무리를 한 것 같기도 하다. 욕심때문일까?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 그녀 대신 에코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처럼... 나는 제풀에 지쳐 허덕일 뿐이었다.
그것은 허무라는 이름의 질투와 아쉬움이었다.

섬세한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녀의 아름다운 부인 베아트리스,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그녀의 연인이었던,,, 용감한 기사 로제 드 아라...

로제 드 아라... "기사는 누가 죽였는가?"
나는 더 이상 기사를 누가 죽였는 지 궁금하지 않기로 한다. 왜 죽어야 했는 지도 궁금해 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 밤 나는 "뒤마 클럽"에 들어갈 것이므로...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作 / 정창 譯 / 열린책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