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항아리] 와타나베 준이치 글, 고성미 옮김, 창해출판사

"실락원"으로 진가를 발휘했던 와타나베 준이치의 작품은 말만 들었지 아직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눈물 항아리]는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들어 우연치않게 손에 잡게 되는 것들이 모두 단편집인 것 같다.

나름대로의 유명세로 기대를 많이 하고 읽었는데 생각보단 문체나 글의 구성이 그리 훌륭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레이몬드 커버작품을 읽고 난 후인지라 더더욱 비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읽은 두 작가를 굳이 비교해보자면 레이몬드의 단편집은 일상의 소소한 일이 예상치 않은 변화를 주는 등 잔잔한 가운데에서 펼쳐지는 반전이 매우 놀라웠던 것에 반해, 와타나베 준이치의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쭉 풀어나가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작품중 유난히 한장면이 영상화되어 내 머릿속에 남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레이몬드 커버는 하나의 단편에 여러 영상으로 내 기억속에 자릴 잡게  되는 경우에 해당되나  특별히 강하게 기억되는 영상적 장면에 대한 기억은 없고 단지 느낌들이 남아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눈물 항아리]는 떠오르는 하나의 영상만으로도 하나의 단편작품을 긴 설명없이 대신할 수 있을 것같은 책이었다.


6개의 단편은 "결혼반지 / 눈물 항아리 / 봄날의 이별 / 꽉 잡은 손 / 안녕, 안녕 / 후유증"등이다.

[꽉 잡은 손]과 [후유증]에선 와타나베가 과거 정형외과 의사생활을 했던 작가임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들은 대부분 남녀관계에서 마음이 멀어지거나 헤어지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있다.

# 결혼반지

'...... 침대끝에 있는 스탠드의 은은한  불빛속에서도 반지를 빼고 난 흔적은 하얗게 두드러져 보였다.

치나미는 몸을 일으켜 속옷을 입고 잠시 생각에 뺘졌다.

이 선명한 반지의 흔적은 십 년이 넘게 혹은 자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을 것이다.

당영한 일이지만 이 하얀 띠와 똑같은 흔적이 이 남자의 아내에게도 있을 것이다.

이 남자로서는 나름대로 자신을 배려해서 반지를 빼버렸지만 우습게도 이 남자가 얼마나 오랜 세월 아내와 함께해왔는지 세월의 길이와 무게를 과시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 눈물 항아리

영국의 '본 차이나'가 소뼈와 흙을 50:50으로 섞어 만들어 도자기내의 무기질과 뼈의 유기성분이 서로 잘 맞아서 독특한 은은한 색깔을 내며 감촉또한 여느것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그릇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에 그의 아내는 암으로 죽기전부터 자신의 뼈로 항아리를 만들어달라고 남편에게 유언을 하게 된다.

아내가 세상을 뜨고 남편은 아내의 유언대로 아내의 뼈를 섞어 항아리를 구워 집에 놓고 살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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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웃긴 남자] 이경숙 글, 자인출판사.

"도올은 전 국민이 보는 테레비에 나와서 고전 강의를 한 것이 아니라 삼류 개그쑈를 한판 때린거다. 개그쑈라는 것이 사람들을 웃겨보자는 거라고 볼 때 우리는웃어줘야 하는거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희석이보다 더 골때리는 도올의 명개그쑈를 감상하면서 웃어 보자. 나라 꼴도 한심한데 이런거나 보고 웃어야지 우짜겠노?"

일단 이렇게 시작되는 글로 이경숙이라는 여자가 책을 한권냈다. 그저 가정주부라고 하는데 그 해박한 지식이 장난이 아니다.
일단 그 골치아프고 이해하기 어려운 "도덕경'를 무진장 쉽게 술술 해석해나간다.나같은 문외한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게.
글을 읽다보면 도올 김용옥의 해석은 말도 안되는것이 되는데
이경숙이 해석한 것을 보면 아주 그럴듯하다. 내가 지식이 해박하지 못하여 제대로 해석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보아도 좋을듯하다.

첨엔 인터넷으로 글을 올리다가 낸 책이라하여 싸이트를 방문하였는데 책으로 접했을때하곤 영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책 사서 읽기 여의치 않은 분들 싸이트 방문하여 맛 보세요.

도올의 노자해석과 이경숙의 해석을 올렸으니 비교감상해 보시라~


  ( 중간 발췌 )

제2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제1장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자. <도덕경>의 원문과 도올의 번역문과 구름의 번역문을 차례로 보면 무엇인가 느끼는게 있을거다.

<도덕경 제1장>

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無名天地之時,有名萬物之母,故常無慾以觀其妙,常
도가도,비상도,명가명,비상명,무명천지지시,유명만물지모,고상무욕이관기묘,상

有慾以觀其 ,此兩者同,出而異名,同謂之玄,玄之又玄,衆妙之門
유욕이관기요,차양자동,출이이명,동위지현,현지우현,중묘지문


◆ 도올 역 ◆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 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의 처음이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의 어미라 한다.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그 묘함을 보고

늘 욕심이 있으면 그 가장자리를 본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으로 나와 이름만 달리 했을 뿐이다.

그 같은 것을 일컬어 가물타라고 한다.

가물코 또 가물토다.

모든 묘함이 이 문에서 나오지 않는가!

 

소감이 어떻노? 저게 천하의 대 사상서라는 <도덕경>의 서문이란다. 당췌 무신소리를 하는건지 알아먹을 수가 없제? 우찌된 글이 그래, 불과 13줄 밖에 안되는데 서로 연결되는 소리가 안 보이노 말이다. 열세줄이 전부 딴 소리다. 글이라는 것이 앞줄의 내용을 받아 뒷줄로 이어져야지 줄마다 딴 소리를 하는 글이 어딨더노? 이래 놓고 이걸 가치로운 고전이라꼬 21세기 사람들한테 내민다 말이야?

만약 이게 정말 <도덕경>이라면 구름이 '벽운'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겠나? 내가 뭐 할 짓이 없어서 도를 배우고자 하겠노? 나는 공자가 말했다 해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버리는 사람이다. 성령이 임해서 하나님이 기록했다는 바이블이라도 개떡같은 소리는 안 돌아보는 사람이다. 내가 부처님한테 귀의하고 노자 할아방을 좋아하는 이유인즉슨 그 하시는 말씀이 전부 도리에 맞고 이치가 합당하고 앞뒤가딱딱 어울리는 고매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할아방 말씀을 저렇게 조잡한 맹탕으로 둔갑을 시켜갖고 사람들한테 팔아묵는 꼴을 두고봐야 되겠나 이말이다.

제대로 된 구름의 번역을 보고 다음 장으로 가보자. 진짜르 골때리는 쑈가 벌어지고 있었응께.


♡ 구름 역 ♡

도(는 그 이름을 )를 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그 이름이) 꼭(항상) 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이름으로 (어떤 것의)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꼭(항상) 그 이름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천지의 시작이니 따질 수 없고

(우리가)이름을 붙이면 만물의 모태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름을 붙이기 전(도의 이전)에는 (천지지시의) 묘함을 보아야

하지만 <묘함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붙인 후(도의 이후)에야 그것의 요(실상계의 모습)를 파
악할 수 있느니라.

이 두 가지는 똑같은 것인데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 이름뿐이니

(도 이전의 세계와 도 이후의 세계가)검기는 마찬가지여서
이것도 검고 저것도 검은 것이니

< 도와 도 이전의 무엇은 같은 것이니라>

도는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니(지금부터 그것을 말하려 하느니라)


>>>>> 어때요? 해석이 비교되지요? 한번 읽고 직접 비교해보세요.

근데 이글 첫머리만 읽구 한문나오는 부분부터 슉~ 지나가서 마지막 부분만 읽는 분들 이름 다 적었어요.

 

2001년3월12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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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소담출판사. 에쿠니 가오리 지음 / 김남주 옮김.

제목이 맘을 확 끌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던차에 이제사 읽게 되었다.

두명의 작가가(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냉정과 열정사이]이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두권의 책을 내었다.

내가 읽은 책은 주인공 아오이의 이야기이며, 아직 읽지 않은 또 한권의 책은 아오이가 모르는 준세이와, 아오이가 모르는 아오이 자신에 대한 글이다.

"냉정" 과 "열정" 이라!

굳이 나 자신을 냉정과 열정의 비율로만 보자면 스스로의 진단결과 3 : 97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도대체 냉정과 열정의 차이가 무엇일까?

단순무식하게 퍼뜩 지나쳐가는 생각은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라는 것의 존재 유무가 아닐까 싶다.(에너지는 둘째치고)

일이든 사람과의 관계이든 열정이 많으면 항상 아쉬운게 많은 것 같다.

무엇보다 열정적인 경우는 사람과의 관계에선 오해가 생겨 어긋날까 두렵고 관계가 삐그덕거리게 되면 안타까움이 발목을 부여잡고 있지만, 냉정한 사람은 그러면 할 수없는 거지!라며 잠깐 고개를 든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조차도 단순간에 잠재워 버릴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싶다.

고로 난 냉정과 열정이 3:97로 자가진단을 받은 단계이므로 항상 아쉬운게 많고 안타까운게 많은 것 같다.

책의 초반엔 주인공 아오이의 조용하면서도 미동없는 일상을 늘어놓지만 그녀에겐 항상 마음속에 또 다른 모습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일상엔 언제나 넓고 따뜻한 맘으로 한결같은 사랑을 듬뿍주는 마빈이 있다.

cool하지만 안정적이고 조용한 아오이의 삶속에서 문득 문득 불현듯 고개를 쳐드는 도쿄에서의 기억들이 있다.

오랜시간동안 지내온 모습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

순식간에 쏙 빠져들어 읽고 말았다.

2002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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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싶다]

오래전에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을 읽었었다.
나름대로 좋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엔 딸에게 쓰는 글인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싶다]를 읽었다.온통 설교조라서 읽는 내내 부담스럽기만 하였다.
아무래도 "자유를 위한 변명"을 펴낸후 반응으로 인한것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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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배수아

이상하다.요즘소설책을 보면 다 자신들 신변잡기인지 소설인지 헷갈릴때가 많다.
이책도 '배수아'의 자전적요소가 짙다는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한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다.

독신녀로 세상을 적당히 조롱하며 살아가는 유경과 그 주위의 독신자인지 그저 짝을 못찾은 무늬만 독신자인지 모를 속물 친구들, 세상에서 흔히 킹카라고 불리울만한 그러나 자기실속 캡으로 잘 챙기는 사촌 금성, 사회적으로 부족할것없이 잘 나가며 유부남이지만 자유로운 연애지상주의자 길, 등등 많은 인물들이 주인공 주위에 배회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렇든 저렇든 난 이책에서의 사고방식이 싫다.
존재의 가벼움도 아니며 무거움도 아닌것이
그저 독특하고싶어서 무진장 애만 쓰고 있다고나 할까?

쥐뿔도 없으면서 책읽고 이게 싫다 저게 맘에 안든다하니
나 또한 한술더뜨는 한심한 인간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


2001년2월2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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