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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과 함께 아모르 파티 - 슬픔과 실패의 일상에서 다시 읽는 룻기
구미정 지음 / 비아토르 / 2026년 9월
평점 :
《룻과 함께 아모르파티》 구미정지음 #비아토르
#여성신학자의시선 #철학과신학 #나도아모르파티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들이 많다. 니체의 명언을 좋아한다. 그의 문장은 때로 가슴을 후벼판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도 그렇다.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올 때도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니체의 철학으로 성경 속 룻기를 새롭게 읽히기도 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고, 남편을 잃은 룻은 시어머니를 홀로 두지 않고 낯선 땅까지 동행한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두 여인에게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룻은 이삭을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고, 보아스를 만나면서 두 사람의 삶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결국 보아스와 룻의 결합은 새로운 생명의 계보로 이어진다.
룻기를 읽을 때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여성 신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룻기는 조금 다르다. 거대한 기적보다 서로를 향한 돌봄과 선택에 주목한다. 나오미를 향한 룻의 마음, 룻을 배려하는 보아스의 행동, 상실 속에서도 다시 삶을 꾸려가는 나오미의 모습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 룻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나 해피엔딩이 아니라, 무너진 삶을 서로 붙들어 주며 회복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룻기의 장면마다 니체를 비롯한 철학자와 작가들의 사유, 문학과 예술의 이야기를 연결한다. 그래서 더 좋았다. 성경과 철학을 함께 읽는 일은 내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이기도 하다. 익숙한 말씀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룻과 나오미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헤세드, 곧 인애와 신실한 사랑은 신앙을 추상적인 언어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자신의 몫을 조금 내어주며, 타인의 삶을 일으켜 세우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각자의 삶을 우선하는 개인주의와 핵가족 시대다. 가족의 형태는 작아지고 관계는 느슨해졌지만, 그렇다고 서로의 돌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도생의 시대이기에 서로를 보듬는 마음이 더 절실하다. 룻과 나오미의 이야기는 혈연을 넘어 한 사람의 곁을 지키는 일이 어떻게 다른 삶을 일으켜 세우는지 보여준다. 고통을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불행을 아름답게 포장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절망 속에서도 다른 사람의 손을 붙들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 것,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의 손을 붙잡고 가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만.
여성 신학자의 시선은 조금 더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 강한 자의 성공보다 상실한 자의 회복을, 개인의 성취보다 서로를 살리는 관계를 바라본다. 현시대에 더 필요한 이야기라고 보는 건 더욱이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철학과 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룻기는 오래된 성경 속 이야기를 넘어 오늘의 삶을 비추는 질문이 된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내게 주어진 삶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