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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단편선 ㅣ 소담 클래식 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6월
평점 :
《도스토옙스키 단편선》 도스토옙스키 지음 / 이은연 옮김 #소담 #도스토옙스키탄생205년
고전은 오래 살아남은 책이 아니라, 오래도록 인간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의 고뇌와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5주년을 맞아 다시 읽히는 <백야>를 비롯해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첫사랑>이 실린 이 단편선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를 끝까지 추적한 기록처럼 다가왔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시선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하지만, 정작 그가 들여다보는 것은 가난 자체가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흔들리는 인간의 영혼이다. 돈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비참한 것은 존엄을 잃어가는 과정이며, 외로움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조차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인간을 향한 오랜 사색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작품은 <백야>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사랑의 성공과 실패를 말하는 소설은 아니었다. 홀로 공상에 잠기는 기분, 고독을 즐기는 주인공이 현대의 인간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사랑을 소유로 증명하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 자체가 한 사람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스첸카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애틋한 것일까. 현실은 주인공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지만 그는 끝내 그 사랑을 원망하지 않는다. 문득 우리의 삶도 결과를 움켜쥐려 할수록 공허해지고, 지나간 시간을 감사할 줄 아는 순간 비로소 풍성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는 인간의 우스꽝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웃음 끝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질투와 열등감,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에도 존재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제법 이성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질투나 인정욕구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나 역시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다. 욕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하기 전까지는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인간의 연약함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끝까지 응시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못하게 만든다.
책을 덮고 오래 생각했다. 인간은 생각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누구나 상처를 품고 살아가며, 그 상처는 사랑이 되기도 하고 욕망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론을 내리는 일이 아니라, 끝없이 질문을 이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것은 한 권의 소설을 읽는 일이 아니었다. 인간을 읽고, 결국 나 자신을 읽는 일이었다. 시대는 변했고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인간의 외로움과 결핍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