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반복 - 트라우마를 가로지르는 마음의 지도
권요셉 지음 / 샘솟는기쁨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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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반복은 남수단에서의 극한 경험 그러니까 전쟁을 겪고 금이 간 마음의 결을 섬세히 포착한 책이다. 트라우마가 어떻게 생겨나고 치유해가는가의 과정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피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이 어떻게 배가 되어 커지고 그 커지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어떻게 자신을 바꾸었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글쓰기는 버티고 살아내는 호흡, 그리고 그를 살아내게 하는 통로이다.

P. 270 반복적인 행동으로 내 몸처럼 익숙해지는 것도 일종의 필요화이다. 타자기 치기, 자동차 운전, 악기 연주를 계속 연습하면 점점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러워지면서 안정성을 갖는다.

보통 트라우마는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상처는 나의 내면, 나의 약함, 나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러나 『변화의 반복』의 저자는 그 익숙한 생각의 틀을 단호히 벗어난다. 그는 고통을 개인의 심리적 결함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대신 ‘나’라는 울타리를 넘어 가족, 사회, 역사라는 더 큰 맥락 속에서 고통의 구조를 해부한다. 그에게 트라우마는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여러의 상황들이 인간에게 새겨놓은 흔적이며, 우리가 속한 관계망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그 과정에서 저자의 시선은 놀라울 만큼 균형 잡혀 있다. 그는 냉철하게 분석하지만,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은 연민을 잃지 않는다. 글을 읽다 보면, 학문적 언어와 감정의 언어가 서로 부딪히지 않고 조심스레 공존한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저자는 트라우마의 치유는 혼자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치유는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작은 변화 속에서 천천히, 아주 미세하게 이루어진다. 타인과의 관계가 무너졌던 자리를 다시 연결하고, 세계와의 접점을 되살리는 일. 그것이 곧 회복의 시작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말이 있다.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 고통의 두세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되묻는 듯하다. 진짜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속을 어떻게 살아내느냐라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에게 이제 그만 이야기할 때가 됐지 않느냐, 이제는 좀 잊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말한다. 나도 들었던 말이다. 치유가 되려면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아무렇지 않기까지의 상태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말은 언제나 고통 밖에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들은 그 상처를 살아낸 적이 없기에, 고통의 밀도를 전혀 모른다.

저자는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치유는 타인이 정해주는 시점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서 도달해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그것은 어떤 선언이나 결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치유는 느리고 불완전하다. 그리고 어쩌면 완전한 치유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 옅어지고, 마음의 살결이 다시 덮여가며, 이전보다 덜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변화의 반복>은 바로 그 덜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법을 탐구한다. 고통을 지우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끌어안은 채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 저자는 그것을 글쓰기라는 반복된 행위 속에서 실천한다. 글쓰기는 그에게 치료이자 기도이며, 현실과의 재접속이다. 반복되는 문장 속에서 그는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고,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욕망이라는 단어는 늘 부정적으로만 느껴졌지만 이 책의 글에서 만난 욕망은 달랐다. 그것은 타인을 해치는 충동이 아니라 삶을 앞으로 밀어주는 근원적인 힘이었다.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면,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필요하다. 그 욕망은 자기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자신을 세우는 에너지로 작동한다.

저자는 고통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을 글쓰기를 통해 해부하고, 변화의 반복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간다. 완전한 치유란 없을지 몰라도, 그는 반복되는 글쓰기와 욕망의 힘으로 조금씩 자신이 되어간다. <변화의 반복>은 그렇게 고통을 삶의 움직임으로 바꾸어낸, 단단하고도 조용한 회복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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