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거절의 기술
데이먼 자하리아데스 지음, 권은현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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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웃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너는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얽매여 살거나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주고 있었을지도 몰라.” 이 말은 결국 같은 뜻이지만,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하자면 상대에게 종속된 삶을 살았거나, 자신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처음엔 농담으로 들렸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에는 나의 성격과 과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늘 상대방의 부탁이나 필요를 나의 일처럼 전심을 다해 들어주고 해결해주려 했다. 그 과정에서 정작 나 자신의 상황이나 여건은 고려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맞추고 배려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고마움이 아니라 서운함과 피로였다. 왜냐하면 당연히 나는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때문에 조금만 거절해도 상대방은 큰 타격감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거절을 하지 않으니 자신의 리스크가 있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큰 일도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너무 받아주기만 하고 단호히 선을 긋지 못하는 내 태도 때문에, 결국 관계가 삐걱거리고 심지어는 얼굴도 안 보는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친밀하지만 그래도 어렵지만 이야기하려는 것은 더욱 길게 오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살고, 상대방과 관계를 오래 지속하려면 ‘건강한 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히려 가깝지 않은 관계일수록 거절은 쉬웠다. 문제는 가까운 사이였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인정욕구, 관계가 나빠질까 두려운 마음 때문에 부탁을 들어주곤 했다. 거절 한마디면 될 일을 질질 끌고 결국 내 마음이 지치는 일이 반복됐다. 사실 거절은 관계를 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인데 나는 그것을 몰랐다.

이제는 확실히 달라졌다.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단호히 “노”라고 말할 줄 아는 태도를 연습하고 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어도 거절하는 법은 쉽게 체득되지 않는다. 꾸준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 다행히도 지금은 나를 대놓고 협박하거나 가스라이팅하려는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내 곁에 머물게 한 것도 결국 나 자신의 태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 나는 예스맨으로 살며 남의 부탁에 휘둘리다가 불행해졌지만, 이제는 배려와 단호함 사이의 균형을 배우고 있다. 부드럽지만 분명한 거절, 상대방도 존중하고 나도 지켜내는 그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연마해야 할 삶의 과제다.

P. 130 “노”라는 답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거절을 당해도 물러설 줄 모르고, 끈질기게 부탁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상대방 회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든 “예스”라는 답을 받아내려고 상대방의 감정을 조종하기도 하고, 심지어 대놓고 협박하기도 한다.

P. 199 우리는 항상 시간과 돈, 노동력, 기타 자원을 소모하려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유혹은 보통 우리를 목표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런 유혹을 이겨내는 능력,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노”라고 말하는 능력은 건강하고 보람찬 삶을 사는 데 핵심이다.

“당신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 스티브 잡스(Steve Jobs),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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