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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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씀만하소서 #박완서 #세계사

나의 마음도 침잠한 시간에 가라앉을 것 같다. 박완서작가의 일기는 개정판으로 나왔다. 작가가 아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기록한 일기이다. 가톨릭 잡지<생활성서>에 1년간 연재하였던 것이다. 인간의 깊은 심연에 있는 깊은 내면을 바라보며 리얼리스트적인 면모가 보이는 한국문학의 지평을 열어준 그녀이다. 너무나 슬프게도 1988년 넉 달 상간으로 연이어 남편과 아들을 잃어야 했다. 그 고통을 글로 토해내고 몸부림쳤다. 한여성의 고통과 절망을 한 개인으로써 어미로써의 진솔하고 토해내듯이 쓴 글은 슬픔과 고통을 극복해과는 과정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불과 동생을 잃은지 15년이 다 되어간다. 박완서의 엄마시점보다는 곁에서 있는 딸의 심정으로 읽기도 했다.

P. 78 그 애에게서 생명이 없어지다니. 들꽃으로라도 풀로라도 다시 한번 피어나렴.

P.105,106 산책길의 나무와 풀의 공기가 하루하루 조금씩 가을빛을 더해가는 것도 바다 빛깔의 변덕보다는 위안이 되었다. (중략) 공기는 또 어찌나 청량한지 체내에 침체했던 피돌기가 화들짝 깨어나는 걸 느낄 정도였다.

딸내집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의 위로를 받고 그 높은 아파트에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으리라. 온가족이 패닉상태였지만 누구보다 남편과 자식을 잃은 그녀보다 더할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었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달이 매일매일 지옥이었으리라. 식음을 전폐하는 날이 계속되었지만 다시 인간은 어떤 모양으로든 살게 되어있나보다. 참척(慘慽)을 겪은 애통함과 비통함은 목숨을 단축시킬 줄 알았지만 그녀는 다시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기도로 마음을 잡는다.

산책길을 내려가면 수녀들의 빨래터가 보였다고 했다. 빨래터를 내려오며 수녀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내가 왜 여기있는가 다시금 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여기있는 이유는 무얼까. 산책을 하며 풀과 공기의 흐름과 사람들을 보며 저자는 무엇을 느꼈을까. 나의 복잡한 마음과는 다르게 미사를 참예하는 몸이 불편한 노인의 표정은 오히려 순하고 유순하다. 식구들이 그녀를 보러 수녀원을 왔는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좋았다고 했다.

P.136 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 세상 사람들이 예서 제서 자기들의 근심이나 걱정을 위로 받으려고 내 불행을 예로 들어가며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남의 고통에 쓸 약으로서의 내 고통, 생각만 해도 끔찍한 치욕이었다.
주여, 어찌하여 나를 이다지도 미천하게 만드시나이까. 나는 마음으로 무릎을 꺾으며 이렇게 탄식했다.

옆방에 온 부인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지만 옆방부인은 그녀에게 무언가를 위로 받으려고 해서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았다. 털어놓은 순간 옆방부인은 자기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자기자신의 상황을 바라보며 안도와 위로를 받았고,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에 그녀는 크게 자신에게 실망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나보다. 끊임없이 신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내가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하는가. 죄를 지은적은 그다지도 많지 않은데 나를 이렇게 고통을 주는 이유를. 참척을 겪은 애통과 절망의 깊은 심연의 바닷속으로 갔다가 조금씩 서서히 회복되는 자신을 돌아본다. 세상을 다시 살아 갈 이유를 조금씩 다시 찾으며 회복되어 성찰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큰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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