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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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다섯 번의 이별을 연대순으로 꼽아보라면 다음과 같다.

  1) 앨리슨 애시워스

  2) 페니 하드윅

  3) 재키 앨런

  4) 찰리 니콜슨

  5) 사라 켄드류

  모두 내게 정말로 상처를 준 여자들이다. 로라, 거기 네 이름 보여? 넌 10위 안엔 어찌 들 수 있을진 모르지만 5위 안에는 절대 못 낄걸. 5위까지는 내게 굴욕감과 비통함을 안겨준 사람들에게만 할애되거든. 너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말하고 보니 의도했던 것보다 더 잔인하게 들리는군. 사실 상대방에게 비참함을 안겨주기엔 우리 둘 다 너무 나이 들었지. 그건 다행이야. 나쁜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5위 안에 들지 못했다고 너무 빈정 상하지 마. 그 시절은 갔어. 빌어먹을, 속이 다 후련하군. 그때는 불행이라는 게 엄청 크게 다가왔었지. 이제는 그저 날이 춥다거나 돈이 떨어졌거나 하는 정도밖엔 안 되는데 말이야. 정말로 내 삶을 뒤흔들어 놓을 요량이었으면, 우린 훨씬 전에 만났어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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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우리는 열둘 아니면 열셋이었고, 막 아이러니를 깨달은 시기였다(바로 그때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얼마 후에는 그런 게 바로 아이러니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우리에게 허용된 거라곤 그네와 뺑뺑이, 그밖의 다른 애들 놀이 기구나 타고 빈둥빈둥 노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우린 아무 생각 없는 척하거나(휘파람 불기, 수다 떨기, 담배꽁초나 성냥갑 만지작거리기) 아니면 위험한 짓만 골라서 했다(그네가 가장 높이 떠오른 순간에 뛰어내리기, 뺑뺑이의 속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올라타기, 바이킹이 수직이 되는 순간까지 끝 부분에 매달려 있기). 유치한 놀이 기구일지라도 두개골을 박살낼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수위에 오르면 기꺼이 타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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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와 처음 동거를 했을 때 여자 속옷처럼 내게 참담한 실망감을 안겨준 것도 없었다. 여자들도 우리와 똑같다. 제일 좋은 속옷은 누군가와 잠자리를 하게 된 때를 대비해 아껴둔다. 그걸 알고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아마도 영영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일단 동거를 시작했다 하면 어느새 빛바랜 낡고 초라한 막스앤스펜서 속옷이 온 집 안 라디에이터 위에 출몰한다. 어른이 되어 영원토록 이국적 란제리에 둘러싸여 지내리라 생각했던 소녀들의 외설적인 꿈이여…… 아멘. 그 꿈은 산산조각 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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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지를 보면 여자들이 허구한 날 하는 불평은 하나다. 남자(열 살이든 스무 살이든 서른 살이든 남자는 모두 애다)들이 침실에서 가망 없다는 것. '전희'에는 도통 관심도 없고, 성감대를 자극해주려는 열망도 없으며,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서투르며 단순무식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 이런 불평이 일종의 아이러니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원하는 거라곤 오직 전희뿐이었건만, 여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만지는 것도, 쓰다듬는 것도, 자극받거나 흥분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시도라도 할라 치면 우리를 콱 쥐어박곤 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모든 것에 별로 뛰어나지 않다해도 놀랄 게 없다. 우리는 한창 성이 발달하던 그 길고 긴 이삼 년 동안, 그런 짓은 꿈도 꾸지 말라는 아주 강압적인 말을 들으며 지냈던 것이다. 열네 살에서 스물네 살 사이에 '전희'란, 소년들은 하고 싶어하지만 소녀들은 원치 않는 어떤 것이었다가 여성들은 원하나 남성들은 귀찮아하는 그 무엇으로 변해버린다(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희를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거라곤 오로지 '만지는 것'뿐이었던 그 시절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신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완벽한 결합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코스모폴리탄'잡지를 애독하는 여성과 열네 살 소년의 결합이라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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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친절하고 진실하며 사려 깊고 헌신적인 데다, 그녀 신상에 관한 일을 기억해주고,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주고, 최근에 나눈 대화에서 힌트를 얻어 작은 선물을 사주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억지로 한 적은 없었다. 계산속으로 한 적도 결코 없었다. 찰리에 관한 일은 뭐든 쉽게 기억했는데, 그건 내가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말 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작은 선물이라도 사주고 싶은 나 자신을 말릴 수 없었으며,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척할 필요도 없었다. 억지로 노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찰리 친구 중에 케이티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점심시간에 자기도 나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부러운 듯 말했다. 난 놀랐고 전율했다. 내가 전율한 이유는 찰리가 그 말을 들었기 때문이고(그건 내게 도움이 되면 됐지, 해를 끼치진 않을 것이다), 놀란 이유는 이 모든 게 나 좋자고 한 일인데도 그런 짓이 날 여자들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기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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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더는 초대형 술집이다. 천장이 어찌나 높은지 담배 연기가 만화책의 말 풍선처럼 머리 위에 뭉쳐있다. 지저분하고 썰렁한 데다 의자 쿠션의 찢어진 틈새로 솜이 삐져나와 있고 종업원들은 퉁명스럽다. 만날 오는 놈들은 겁나 몰지각한 자들뿐이고, 화장실은 흥건한 데다 악취를 풍긴다. 변변찮은 저녁 식사 메뉴에 포도주는 우스울 정도로 형편없고, 맥주는 부글거리는 게 너무 차갑다. 그냥 한마디로 노스 런던의 극히 평범한 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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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 혼비, <하이 피델리티>

 

  주인공이 얘기하는 음악을 모르는 데도 그의 입놀림에 계속 따라가 볼 수밖에 없게 한다. 이별 뒤의 찌질한 남자 이야기. 이 정도라면 두 번은 더 읽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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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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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세 번은 더 읽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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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1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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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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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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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소설이자 성장소설,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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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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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여기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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