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곽재구 지음 / 이가서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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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

          - 곽재구 / 이어사 -

 

 

이 책은 중고서점을 둘러보다가 시인 곽재구가 좋아서 골랐던 것이랍니다.
달랑 "사평역에서"라는 시 하나만 읽고 느낌이 좋아 에세이 하나를 읽고

그 느낌이 좋아 이번엔 다른 시집을 골랐으니,

사람이건 책이건 어떤 이어짐을 보게 됩니다.
그 인연들이 끝없이 이어져서 기다란 강물을 이루면

그것이 곧 나를 형성하는 빛깔들이 되겠지요.
시집은 자신만의 작품을 수록한 것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이들의 작품으로 소개하는 것도 있습니다.
어느 시인을 더 깊이 연구하고 탐독하는 경우도 있지요.
요즘 전 "묶음"을 자주 읽게 되네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그것도 즐거운 여행이 됩니다.
어느 한 사람을 깊이 있게 아는 방법에는 그가 살아온 길을 중심으로 듣는 것도 있지만,

그에게 영향을 미친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이 시집은 왼 편에 시인 곽재구가 소개해주는 시가 실려 있고

오른 편엔 조금 짧게 그의 느낌을 적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 곳이 시라고 딱히 고르고 싶지 않아집니다.
모두가 시이고 모두가 연한 향기가 묻어나는 그림이 됩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매번 생각이 납니다.

 

 

그의 책을 보다가 오늘은 문득 생뚱맞게도 '담배'가 떠올랐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담배와는 무관하게 자랐습니다.
학교도 기독교 학교를 나왔으니 그런 분위기는 더욱 더 많이 접하지 않았지요.
내 아이들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나보다 더 싫어하고 적응하기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나에겐 담배에 대한 묘한 연민이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는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지만,

정말 어쩌다가 한 번씩 피우는 그 모습은 즐겁게 바라볼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 중에 담배를 피웠던 이도 있어서이겠지만,

아마 그것보다는 좀더 오래되고 근본적인 이유가 내게 깔려있지 않을까,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중에 하나는

아마도 담배에 불을 피우는 그 찰나의 불에 대한 따뜻함이

체온의 따스함과 겹쳐지면서 생기는 어떤 현상이 아닐까,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들이마셨다가 내뿜은 연기의 자욱한 그 자리에

더 가득 몰려나오는 인생의 고독과 자유에의 갈망, 사람과 삶에 대한 애착,

그런 것들이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내 가슴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의 글은 그런 아련함이 있습니다.
소개해주는 시보다,

그 뒤에서 나직하게 뱉어내는 담배 연기에 묻어 있는,

생에 대한 애착과 사람을 향한 밑도 끝도 없을 것 같은 찬가가

소롱소롱 연기처럼 올라옵니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듯,

얼얼한 뺨을 한 번 어루만져주고 가는 바람을 만나듯,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 저 멀리에서 희미하고 작지만 따스한 불빛을 발견하듯,

그렇게 소리도 크지 않게, 우리 마음에 포근하고 얇은 이불을 덮어주는 것 같습니다.
품절이 되어 지금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이 책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따뜻한 차 한 잔을 손 안에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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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그림 하나, 시 하나
신현림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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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

            - 신현림 / 서해문집 -

 

 

무언가를 엮은 책들은 색깔이 짙거나 혹은 무향에 가까울 때가 있습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묶었는지에 따라 또 다른 맛을 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신현림 시인이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미술 작품들과 그에 어울리는 시들을 묶은 책입니다.
고독과 사랑과 위로 등의 큰 제목 다섯 개 안에 여러 시들과 그림들이 들어 있습니다.
때로는 그림이 먼저 사로잡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 옆에서 나직하게 뱉어내고 있는 시들이 가슴을 울리기도 합니다.
문학을 전공하기 전에 미술가를 꿈꾸었던 어린 나날들이 그의 세계를 더욱 풍성히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곳곳에 꽃처럼 피어 있기도 합니다.
그림과 시를 소개해주는 그 짧은 글 안에도 시인의 말은, 잔잔한 봄바람처럼 우리 마음을 도닥이기도 하고 강렬한 태양빛처럼 적나라한 우리의 내면을 꿰뚫기도 합니다.
그림과 시와 짧은 글의 세 균형이 적절하게 안배가 되어 은근한 묵향이 가득한 방에서 편하게 쉬다가 오는 느낌도 납니다.


표지도 독특하지요?
남자인 듯 여자인 듯, 생각하는 듯 고민하는 듯, 무표정한 듯 빙긋 웃는 듯,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각도로 다가오는 표정입니다.
난 이 표정과 더불어 턱에 괴고 있는 저 손도 마음에 들었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놓는다 할지라도, 냉기 가득한 말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먼저 앞섭니다.
다른 이의 말을 듣는다면 자신의 말보다 더 적극적으로 들어줄 것 같은 가슴을 표현하는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책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정작 우리 안의 소리에 더 기울이고 있는 시인의 눈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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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속에 종이 울린다 - 최돈선 스토리 에세이
최돈선 지음 / 작가와비평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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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 속에 종이 울린다 >
               - 최돈선 / 작가와 비평 -

제목만으로도 누군가가 생각나고 가슴 속 어디에서인가 종소리가 들리나요?
그렇다면 더더욱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사실 전 제목만 보았을 때엔 말랑말랑한 순정이 가득 차 있는 책일 거라 생각했어요.
우리의 감성을 두드리고 비와 그대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음악일 것이라 상상했지요.
물론 그런 부분도 있답니다.
시인의 글 답게 문장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은 슬픔과 감격과 다다르지 못할 어느 그리움을 품고 있기도 하지요.
그러나 또 어느 부분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색깔도 보여요.
마치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판을 보았을 때의 생소함과 떨림을 만나기도 하지요.
현실인 듯 가상의 세계와, 상상의 나라인 것 같으면서 현실을 풍자하는 글은 쓰리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맛을 전해줍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글썽거리기도 했어요.
이름만으로도 그리움과 애틋함을 자아내는 존재, 나 역시 그런 사람으로 남을까 스스로 늘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슴엔 어머니라는 방 하나만큼은 비울 수 없는 우리네의 인생이 아닐까요.
그의 이야기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입니다.
아니, 그 종소리가 계속 울리지요.
어느 후배, 어느 친구, 어느 시인, 어느 화가..
그의 곁에 있는 이들을 향한 애정이 담백하면서도 끈끈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울린 것은 마지막 글, '시인'이었어요.
몇 십 년을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어도 부끄럽다는 고백, 두 권의 시집을 냈고 남은 세 번째의 시집을 내는 것이 소원인 시인의 고백이 종소리가 되어 내 마음을 두드렸죠.

나에게도 그런 소원이 생겼던 적이 있었죠.
나는 시인이라는 이름표도 없고, 지금은 더더욱 그런 욕심도 더 비워버렸지만, 어느 해에 내게 들려왔던 종소리, "넌 나를 사랑한단 노랠 불러야지.."에 흔들려 무조건 시를 쏟아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세상에 태어나 나를 끝없이 사랑하시는 그 분, 내 하나님을 위한 시집 하나만 쓰고 갈 수 있다면, 그런 소망을 품게 된 날이 종소리가 되어 나를 다시 불러 세웠어요.
평생을 시인으로 살고, 수많은 시인들을 가르친 스승이 되었어도 자신의 생을 돌아보면 부끄러움이 더 앞서는 것은 막연하게 검은 점으로 그려져 있는 저 끝을 향해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아닐런지..
오늘은 그의 담백하면서도 도드라진 글들을 만나며 내게 다가오는 그리움들의 종소리가 새삼 감사하고 새로워졌답니다.
순하지만은 않은, 그러나 사람과 그 삶에
대한 애정이 진득하고 묵직한, 한 시인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으로 오래 흐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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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끝, 예수의 시작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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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nd of me / 나의 끝, 예수의 시작 >

                           - 카일 아이들먼 , 두란노 -



이 책은 두란노 서평단에 합류하여 처음으로 받은 책입니다.
<팬인가, 제자인가>로 우리에게 조금 익숙한 카일 아이들먼의 책인데, 일단 말투가 흥미롭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서 만나는 언어의 친근감이나 친숙함을 만날 수 있고, 자신의 밑바닥까지 쉽게 고백하는 용기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SNS에서 갓 빠져 나온 듯한 표현들이 많아서 젊은 층의 독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혼자 피식 웃기도 하고 묘한 흥분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내용은 그렇게 웃을 수만은 없지요.
인생의 끝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물어볼 땐 누구나 자신의 끝을 떠올려야 합니다.
적게 살아왔든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이젠 끝이라고 절망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경험하는 영역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그 깊이도 다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기어이 보고야 마는 "끝"이라는 절망의 얼굴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넘어선 절망감.
삶이라는 것마저 더 이상 자신을 유혹할 수 없는 비애.
무언가 대신 바꿀 수도 없고 딛고 일어설 수도 없다고 느끼는, 우주에서 하염없이 떠도는 미아 같은 심정.
자신의 발목을 누군가 붙잡아주길 바라지만 아무도 떠올릴 수도 없고 어쩌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는 양가적인 마음.
끝이라는 곳에 뚝 떨어져서, 바닥을 쳐다 봐도 떨어진 그곳을 올려다 봐도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모를 공허함과 막막함.
그런 곳에 예수를 만나는 시작이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예수의 가르침을 '반직관적'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나의 끝에서 만나는 예수의 시작이란 무엇일까요?
첫번째 큰 방에서는 나의 끝이 깨어짐과 애통, 낮춤과 벌거벗음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깨어지지 않고 온전하길 원한다'는 표현에 저도 사실 찔렸답니다.
온전히 깨어지지 않고도 동시에 좋아보이는 것들을 소유하려는 모습이 내 안에도 얼마나 음흉스럽게 있는지 모릅니다.
또 나에게서 머무르는 애통은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나 아픈 자에게로, 고통스러운 공동체에게로, 그리고 더 크게는 죄를 향한 애통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저자는 말해 줍니다.
이제는 '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부담으로 여기는 시대에, 죄와 비슷해 보이는 '실수'나 '중독' 혹은 '병'이라 부르지 말고 '죄'라고 확실히 부를 때에 애통의 깊이를 알 수 있음도 알려 줍니다.
전 '능동적인 낮춤'도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유혹당하는 교만에서 벗어나는 또 하나의 길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
외줄 하나로 나이아가라폭포나 그랜드캐니언을 건넜다는 닉 왈렌다가 모두가 열광하는 그 시간을 끝낸 뒤 자발적으로 몇 시간 동안이나 팬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주으며 '그 시간이 내 영혼에 유익'하다고 고백했다는 예화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이제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대면하기를 원하시는, 보이는 삶과 실제하는 삶이 같아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기대를 기억하게 합니다.
두 번째 방에선 이러한 끝에 서서 예수님을 만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비움은 하나님의 채움과 정비례하며, 무기력한 삶을 연명하던 나의 항복은 나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럼에도' 나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일하시는 그 분의 깊은 사랑도 만납니다.
나의 약함이 곧 그 분의 능력을 표현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나의 강함과 똑똑함과 과시할 만한 것을 보여달라 요구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아프고 약한 부분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끝이라 생각하던 그곳을 용기 있게 내어놓을 때 그 분은 그곳을 새로움과 기쁨의 시작으로 바꿔주십니다.



언어적인 표현은 쉽게 쓰여 있지만 사실 쉬운 삶은 아닙니다.
자신의 끝에서 자신을 아예 버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더더군다나 나의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분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일은 무모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삶을 경험하고 걸어가는 인생이 값지고 소중합니다.
올해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나의 인생부터 온전한 깨어짐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나의 약함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세밀하게 느끼고 싶습니다.
작은 곳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삶의 향기가 나의 주변을 봄으로 인도하는 창문이 되고 싶습니다.



‪#‎나의끝예수의시작‬ ‪#‎카일아이들먼‬ ‪#‎팬인가제자인가‬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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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터 - 나희덕, 장석남 두 시인의 편지
나희덕.장석남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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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더 레터 > - 두 시인의 편지 / 좋은생각

 

 

 

이 책은 나희덕과 장석남, 두 시인이 서로 오가던 편지를 묶은 것이랍니다.
편지라는 이름은 추억과 애정과 그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따뜻함을 모두 맛보게 하는 단어이지요.
요즘처럼 이메일이나 문자를 주고 받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이들은 우표를 붙이는 수고를 자진해서 심어가며 편지를 부칩니다.
손으로 쓴 편지를 언제 썼던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이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의 하얀 화면이 익숙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편지와 우체국, 우표와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은 더욱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가 봅니다.
시인들의 편지답게, 책의 전반에 걸쳐 정갈하면서도 시적인 표현들이 곳곳에 많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기도 하고 현재의 정치를 걱정하기도 하며 이웃에 대한 배려와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눈물도 보입니다.
중간중간, 그들의 시가 더 깊은 침묵의 세계로 인도하며 그 강가를 거닐도록 메말랐던 나의 손을 이끕니다.

 

 

 

내게도 손편지를 장황하게 썼던 적이 있습니다.
가장 길게 썼던 첫 손편지는 아마 첫사랑이었던 그 소년이었지 싶습니다.
공책 하나에 매일매일 편지를 썼던 것을 모아 그의 생일에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에 감동 받았던 그 소년은, 악필이었던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그 당시엔 유행도 아니었던 펜글씨 교본으로 열심히 연습하여 편지를 전해주었던 일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편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아마도 서로의 마음을 조금 늦추어서 전해주고 또 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며 사랑은 더 깊어지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쌓이는 그 순간들은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설렘과 나의 사랑을 잘 전해주었을까 싶은 자기 반성이 동시에 일어나게 됩니다.
비단 사랑의 편지에만 그 향기가 묻어나올까요.
편지를 쓰려고 하얀 여백을 펼치고 있는 그 순간, 이미 향기는 받는 이를 향해 여행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예전에 그런 편지를 나눈 적이 또 있답니다.
만난 지 40년이 넘었지만 만날수록 자꾸 알아가는 것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친구와의 추억이지요.
여섯 살에 만나 열세 살에 헤어졌던 그 친구를 스무살에 다시 만났답니다.
그 어간, 스무 살에서부터 스물 넷이나 다섯 쯤에 나누었던 편지를 모아 책으로 내주시마 약속해주셨던 지인에게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묻혀졌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그 분의 서랍 깊숙히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숨 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책이란 것이, 쉽게 내면 쉽게 나타나지만 고민을 하다 보면 끝도 없는 우물에서 빛을 보지 못하더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요.
아마 그 분은 우리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내어놓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잊어버리신 게 아닐까 싶긴 합니다.
그래서 편지는 또 다른 그리움을 낳고 말았지만..^^

 

 

 

요즘 다시 손편지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차오릅니다.
제 방에도 <들꽃편지>라는 이름으로 하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이 있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날은 조금 길게 안부를 물어봅니다.
예전엔 자기 고백적인 성격이 강한 일기를 썼다면, 올해는 작은 일상의 이야기를 편지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혼자 생각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는 분명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라면 '빛의 양'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편지 안에 스며 있는 이 '서로'라는 것에는 나의 모습도 바라보지만 상대를 더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나의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지도 들어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방에 들어가면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고 고민하지만, 서로에게 열려 있는 방에 들어가면 나와 너에게서 나오는 빛이 몇 배가 되어 서로를 밝혀 줍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떠올리며 쓰는 편지 안에는 얼마나 많은 반딧불이들이 춤을 추고, 조절조잘 강물들은 흘러갈까요..

 

 

 

얇은 책 하나에 수많은 기억들이 나타났다가 스러집니다.
편지로 해결하려다가 낭패를 본 일도 떠오르지만, 그래도 내게는 편지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사는 따뜻한 담벼락 하나를 얻은 것만 같습니다.
두 시인의 투명하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들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답니다.
내일은 담백한 편지지 하나를 사야겠습니다.
들꽃이 그려져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좋겠지요.
바람 따라 날아갈 그 편지엔 당신이 거기 그렇게 있어 감사하다고 쓰고도 싶습니다.
한 마디 더.
제 마음을 울린 문구는 나희덕 시인의 편지에서 인용된 것이었는데, 천양희 시인의 <뒤편>이라는 시에 대한 문태준 시인의 단상이라네요.
등을 많이 생각했던 몇 년 전이 떠오르며 그 등을 안아주던 시를 꽤 썼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그 등을 서로 안아주는 일이 당신과 나에게도, 편지를 주고 받는 많은 이들에게도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뒤편을 감싸 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뒤편에 슬픈 것이 많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마치 비 오기 전 마당을 쓸듯 그의 뒤로 돌아가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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