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터 - 나희덕, 장석남 두 시인의 편지
나희덕.장석남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 더 레터 > - 두 시인의 편지 / 좋은생각

 

 

 

이 책은 나희덕과 장석남, 두 시인이 서로 오가던 편지를 묶은 것이랍니다.
편지라는 이름은 추억과 애정과 그 속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따뜻함을 모두 맛보게 하는 단어이지요.
요즘처럼 이메일이나 문자를 주고 받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이들은 우표를 붙이는 수고를 자진해서 심어가며 편지를 부칩니다.
손으로 쓴 편지를 언제 썼던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이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의 하얀 화면이 익숙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편지와 우체국, 우표와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은 더욱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가 봅니다.
시인들의 편지답게, 책의 전반에 걸쳐 정갈하면서도 시적인 표현들이 곳곳에 많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기도 하고 현재의 정치를 걱정하기도 하며 이웃에 대한 배려와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눈물도 보입니다.
중간중간, 그들의 시가 더 깊은 침묵의 세계로 인도하며 그 강가를 거닐도록 메말랐던 나의 손을 이끕니다.

 

 

 

내게도 손편지를 장황하게 썼던 적이 있습니다.
가장 길게 썼던 첫 손편지는 아마 첫사랑이었던 그 소년이었지 싶습니다.
공책 하나에 매일매일 편지를 썼던 것을 모아 그의 생일에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에 감동 받았던 그 소년은, 악필이었던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그 당시엔 유행도 아니었던 펜글씨 교본으로 열심히 연습하여 편지를 전해주었던 일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편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아마도 서로의 마음을 조금 늦추어서 전해주고 또 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가며 사랑은 더 깊어지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쌓이는 그 순간들은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설렘과 나의 사랑을 잘 전해주었을까 싶은 자기 반성이 동시에 일어나게 됩니다.
비단 사랑의 편지에만 그 향기가 묻어나올까요.
편지를 쓰려고 하얀 여백을 펼치고 있는 그 순간, 이미 향기는 받는 이를 향해 여행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예전에 그런 편지를 나눈 적이 또 있답니다.
만난 지 40년이 넘었지만 만날수록 자꾸 알아가는 것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친구와의 추억이지요.
여섯 살에 만나 열세 살에 헤어졌던 그 친구를 스무살에 다시 만났답니다.
그 어간, 스무 살에서부터 스물 넷이나 다섯 쯤에 나누었던 편지를 모아 책으로 내주시마 약속해주셨던 지인에게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묻혀졌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그 분의 서랍 깊숙히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숨 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책이란 것이, 쉽게 내면 쉽게 나타나지만 고민을 하다 보면 끝도 없는 우물에서 빛을 보지 못하더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요.
아마 그 분은 우리의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내어놓을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잊어버리신 게 아닐까 싶긴 합니다.
그래서 편지는 또 다른 그리움을 낳고 말았지만..^^

 

 

 

요즘 다시 손편지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차오릅니다.
제 방에도 <들꽃편지>라는 이름으로 하루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이 있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날은 조금 길게 안부를 물어봅니다.
예전엔 자기 고백적인 성격이 강한 일기를 썼다면, 올해는 작은 일상의 이야기를 편지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혼자 생각하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는 분명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라면 '빛의 양'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편지 안에 스며 있는 이 '서로'라는 것에는 나의 모습도 바라보지만 상대를 더 많이 생각하게 합니다.
나의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지도 들어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방에 들어가면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고 고민하지만, 서로에게 열려 있는 방에 들어가면 나와 너에게서 나오는 빛이 몇 배가 되어 서로를 밝혀 줍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떠올리며 쓰는 편지 안에는 얼마나 많은 반딧불이들이 춤을 추고, 조절조잘 강물들은 흘러갈까요..

 

 

 

얇은 책 하나에 수많은 기억들이 나타났다가 스러집니다.
편지로 해결하려다가 낭패를 본 일도 떠오르지만, 그래도 내게는 편지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사는 따뜻한 담벼락 하나를 얻은 것만 같습니다.
두 시인의 투명하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들에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답니다.
내일은 담백한 편지지 하나를 사야겠습니다.
들꽃이 그려져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좋겠지요.
바람 따라 날아갈 그 편지엔 당신이 거기 그렇게 있어 감사하다고 쓰고도 싶습니다.
한 마디 더.
제 마음을 울린 문구는 나희덕 시인의 편지에서 인용된 것이었는데, 천양희 시인의 <뒤편>이라는 시에 대한 문태준 시인의 단상이라네요.
등을 많이 생각했던 몇 년 전이 떠오르며 그 등을 안아주던 시를 꽤 썼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그 등을 서로 안아주는 일이 당신과 나에게도, 편지를 주고 받는 많은 이들에게도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뒤편을 감싸 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뒤편에 슬픈 것이 많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마치 비 오기 전 마당을 쓸듯 그의 뒤로 돌아가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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