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내게 묻다 - 모든 질문의 답인 예수를 만나다
김지철 지음 / 두란노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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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내게 묻다 >

                     - 김지철 / 두란노 -

 

“사람이 자기 삶을 변화시키기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첫 문장에서 미소가 나왔습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물음인가에 대한 물음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이 책은 조금 독특한 방법으로 접근을 합니다.

우리의 물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물음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던지시는 물음은 우리 안의 작은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근본적인 궁금증까지 몰고 나갑니다.

결국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예수님이 내 삶에 찾아오시고(1부), 내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지시고(2부), 나와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3부).

 

전체적으로 글은 어렵지 않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지은이의 말투가 부드럽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들려줍니다.

사순절 기간에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을 모은 것이어서인지 역시 전 마지막 부분이 가장 크게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자기의 죽음을 스스로 바라보며 죽어야 하는 죽음’이기에 고통스럽고 외롭다는 것이 다시 마음으로 끄덕여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죄 없음의 항변, 희생자의 울부짖음,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큰 부르짖음은 인간이 경험했던

      그 동안의 모든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다 끌어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외침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아픔, 그것은 곧 그 아들을 보는 애통이기도 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슬픔과 절망, 죄악과 고통을 대신 지게 하신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됩니다.

     그들의 삶의 자리에 서서 그들과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도 이미 버림을 당했다.

     가장 철저하게, 그것도 가장 비참하게 버림을 당했다.

     나의 이 버림받음에 너의 아픔과 고통을 갖고 와라. 함께 참여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새롭게 주시는

     약속, 생명, 부활의 능력 속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초청의 말씀이었습니다.” (186~187p)

 

베드로를 어루만지시는 예수님의 손길도 좋았습니다.

사실 그가 받았을 트라우마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뱉어놓은 말들이 얼마나 허망하게 끝이 났는지, 자신만만하던 3년간의 수제자 자리가 결국 어떤 상처로 그에게 남았을지, 그리고 그의 모습이 곧 우리 안에 있는 여러 가지의 눈물이라는 것을 미처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그가 가장 힘들었을 자리로 다시 불러내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고통의 자리에서 고통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나에게서 머물렀던 시선이 예수님에게로 전폭적인 전환을 맞게 하십니다.

그것이 결국 우리의 존재를 끊임없이 묻고 물어 예수에게로 다가가게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묻는 물음에 난 얼마만큼 잠겨 있었을까요.

툴툴거리고 징징거리며 내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던 나의 이기적이고 조급한 마음을 만납니다.

‘예수님만이 내 유일한 청중’이라고 고백하는 지은이의 말이 부끄럽습니다.

“너는 나를 가장 사랑하니”라고 물어보시는 그 눈빛을 외면하고 살아가던 나를 다시 내어놓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고백만큼은 죽을 때까지 내 가슴에서 펄떡이며 살아 숨쉬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물음 앞에서 나를 찬찬히 다시 보아야겠습니다.

나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더 고민하고 싶습니다.

 

#예수내게묻다 #김지철 #신앙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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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곽재구 지음 / 이가서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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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

          - 곽재구 / 이어사 -

 

 

이 책은 중고서점을 둘러보다가 시인 곽재구가 좋아서 골랐던 것이랍니다.
달랑 "사평역에서"라는 시 하나만 읽고 느낌이 좋아 에세이 하나를 읽고

그 느낌이 좋아 이번엔 다른 시집을 골랐으니,

사람이건 책이건 어떤 이어짐을 보게 됩니다.
그 인연들이 끝없이 이어져서 기다란 강물을 이루면

그것이 곧 나를 형성하는 빛깔들이 되겠지요.
시집은 자신만의 작품을 수록한 것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이들의 작품으로 소개하는 것도 있습니다.
어느 시인을 더 깊이 연구하고 탐독하는 경우도 있지요.
요즘 전 "묶음"을 자주 읽게 되네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그것도 즐거운 여행이 됩니다.
어느 한 사람을 깊이 있게 아는 방법에는 그가 살아온 길을 중심으로 듣는 것도 있지만,

그에게 영향을 미친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이 시집은 왼 편에 시인 곽재구가 소개해주는 시가 실려 있고

오른 편엔 조금 짧게 그의 느낌을 적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 곳이 시라고 딱히 고르고 싶지 않아집니다.
모두가 시이고 모두가 연한 향기가 묻어나는 그림이 됩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따뜻함"이라는 단어가 매번 생각이 납니다.

 

 

그의 책을 보다가 오늘은 문득 생뚱맞게도 '담배'가 떠올랐습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담배와는 무관하게 자랐습니다.
학교도 기독교 학교를 나왔으니 그런 분위기는 더욱 더 많이 접하지 않았지요.
내 아이들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나보다 더 싫어하고 적응하기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나에겐 담배에 대한 묘한 연민이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는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지만,

정말 어쩌다가 한 번씩 피우는 그 모습은 즐겁게 바라볼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 중에 담배를 피웠던 이도 있어서이겠지만,

아마 그것보다는 좀더 오래되고 근본적인 이유가 내게 깔려있지 않을까,

추측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중에 하나는

아마도 담배에 불을 피우는 그 찰나의 불에 대한 따뜻함이

체온의 따스함과 겹쳐지면서 생기는 어떤 현상이 아닐까,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들이마셨다가 내뿜은 연기의 자욱한 그 자리에

더 가득 몰려나오는 인생의 고독과 자유에의 갈망, 사람과 삶에 대한 애착,

그런 것들이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내 가슴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의 글은 그런 아련함이 있습니다.
소개해주는 시보다,

그 뒤에서 나직하게 뱉어내는 담배 연기에 묻어 있는,

생에 대한 애착과 사람을 향한 밑도 끝도 없을 것 같은 찬가가

소롱소롱 연기처럼 올라옵니다.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보듯,

얼얼한 뺨을 한 번 어루만져주고 가는 바람을 만나듯,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 저 멀리에서 희미하고 작지만 따스한 불빛을 발견하듯,

그렇게 소리도 크지 않게, 우리 마음에 포근하고 얇은 이불을 덮어주는 것 같습니다.
품절이 되어 지금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이 책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따뜻한 차 한 잔을 손 안에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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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그림 하나, 시 하나
신현림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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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

            - 신현림 / 서해문집 -

 

 

무언가를 엮은 책들은 색깔이 짙거나 혹은 무향에 가까울 때가 있습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묶었는지에 따라 또 다른 맛을 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신현림 시인이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미술 작품들과 그에 어울리는 시들을 묶은 책입니다.
고독과 사랑과 위로 등의 큰 제목 다섯 개 안에 여러 시들과 그림들이 들어 있습니다.
때로는 그림이 먼저 사로잡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 옆에서 나직하게 뱉어내고 있는 시들이 가슴을 울리기도 합니다.
문학을 전공하기 전에 미술가를 꿈꾸었던 어린 나날들이 그의 세계를 더욱 풍성히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곳곳에 꽃처럼 피어 있기도 합니다.
그림과 시를 소개해주는 그 짧은 글 안에도 시인의 말은, 잔잔한 봄바람처럼 우리 마음을 도닥이기도 하고 강렬한 태양빛처럼 적나라한 우리의 내면을 꿰뚫기도 합니다.
그림과 시와 짧은 글의 세 균형이 적절하게 안배가 되어 은근한 묵향이 가득한 방에서 편하게 쉬다가 오는 느낌도 납니다.


표지도 독특하지요?
남자인 듯 여자인 듯, 생각하는 듯 고민하는 듯, 무표정한 듯 빙긋 웃는 듯,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각도로 다가오는 표정입니다.
난 이 표정과 더불어 턱에 괴고 있는 저 손도 마음에 들었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놓는다 할지라도, 냉기 가득한 말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먼저 앞섭니다.
다른 이의 말을 듣는다면 자신의 말보다 더 적극적으로 들어줄 것 같은 가슴을 표현하는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책이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정작 우리 안의 소리에 더 기울이고 있는 시인의 눈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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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속에 종이 울린다 - 최돈선 스토리 에세이
최돈선 지음 / 작가와비평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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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 속에 종이 울린다 >
               - 최돈선 / 작가와 비평 -

제목만으로도 누군가가 생각나고 가슴 속 어디에서인가 종소리가 들리나요?
그렇다면 더더욱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사실 전 제목만 보았을 때엔 말랑말랑한 순정이 가득 차 있는 책일 거라 생각했어요.
우리의 감성을 두드리고 비와 그대와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음악일 것이라 상상했지요.
물론 그런 부분도 있답니다.
시인의 글 답게 문장에서 흘러나오는 가락은 슬픔과 감격과 다다르지 못할 어느 그리움을 품고 있기도 하지요.
그러나 또 어느 부분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색깔도 보여요.
마치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판을 보았을 때의 생소함과 떨림을 만나기도 하지요.
현실인 듯 가상의 세계와, 상상의 나라인 것 같으면서 현실을 풍자하는 글은 쓰리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한 맛을 전해줍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글썽거리기도 했어요.
이름만으로도 그리움과 애틋함을 자아내는 존재, 나 역시 그런 사람으로 남을까 스스로 늘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슴엔 어머니라는 방 하나만큼은 비울 수 없는 우리네의 인생이 아닐까요.
그의 이야기에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입니다.
아니, 그 종소리가 계속 울리지요.
어느 후배, 어느 친구, 어느 시인, 어느 화가..
그의 곁에 있는 이들을 향한 애정이 담백하면서도 끈끈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울린 것은 마지막 글, '시인'이었어요.
몇 십 년을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어도 부끄럽다는 고백, 두 권의 시집을 냈고 남은 세 번째의 시집을 내는 것이 소원인 시인의 고백이 종소리가 되어 내 마음을 두드렸죠.

나에게도 그런 소원이 생겼던 적이 있었죠.
나는 시인이라는 이름표도 없고, 지금은 더더욱 그런 욕심도 더 비워버렸지만, 어느 해에 내게 들려왔던 종소리, "넌 나를 사랑한단 노랠 불러야지.."에 흔들려 무조건 시를 쏟아내던 시절이 있었지요.
세상에 태어나 나를 끝없이 사랑하시는 그 분, 내 하나님을 위한 시집 하나만 쓰고 갈 수 있다면, 그런 소망을 품게 된 날이 종소리가 되어 나를 다시 불러 세웠어요.
평생을 시인으로 살고, 수많은 시인들을 가르친 스승이 되었어도 자신의 생을 돌아보면 부끄러움이 더 앞서는 것은 막연하게 검은 점으로 그려져 있는 저 끝을 향해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아닐런지..
오늘은 그의 담백하면서도 도드라진 글들을 만나며 내게 다가오는 그리움들의 종소리가 새삼 감사하고 새로워졌답니다.
순하지만은 않은, 그러나 사람과 그 삶에
대한 애정이 진득하고 묵직한, 한 시인의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으로 오래 흐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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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끝, 예수의 시작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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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nd of me / 나의 끝, 예수의 시작 >

                           - 카일 아이들먼 , 두란노 -



이 책은 두란노 서평단에 합류하여 처음으로 받은 책입니다.
<팬인가, 제자인가>로 우리에게 조금 익숙한 카일 아이들먼의 책인데, 일단 말투가 흥미롭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서 만나는 언어의 친근감이나 친숙함을 만날 수 있고, 자신의 밑바닥까지 쉽게 고백하는 용기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SNS에서 갓 빠져 나온 듯한 표현들이 많아서 젊은 층의 독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혼자 피식 웃기도 하고 묘한 흥분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내용은 그렇게 웃을 수만은 없지요.
인생의 끝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물어볼 땐 누구나 자신의 끝을 떠올려야 합니다.
적게 살아왔든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이젠 끝이라고 절망했던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경험하는 영역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그 깊이도 다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기어이 보고야 마는 "끝"이라는 절망의 얼굴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넘어선 절망감.
삶이라는 것마저 더 이상 자신을 유혹할 수 없는 비애.
무언가 대신 바꿀 수도 없고 딛고 일어설 수도 없다고 느끼는, 우주에서 하염없이 떠도는 미아 같은 심정.
자신의 발목을 누군가 붙잡아주길 바라지만 아무도 떠올릴 수도 없고 어쩌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는 양가적인 마음.
끝이라는 곳에 뚝 떨어져서, 바닥을 쳐다 봐도 떨어진 그곳을 올려다 봐도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모를 공허함과 막막함.
그런 곳에 예수를 만나는 시작이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예수의 가르침을 '반직관적'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나의 끝에서 만나는 예수의 시작이란 무엇일까요?
첫번째 큰 방에서는 나의 끝이 깨어짐과 애통, 낮춤과 벌거벗음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깨어지지 않고 온전하길 원한다'는 표현에 저도 사실 찔렸답니다.
온전히 깨어지지 않고도 동시에 좋아보이는 것들을 소유하려는 모습이 내 안에도 얼마나 음흉스럽게 있는지 모릅니다.
또 나에게서 머무르는 애통은 얼마나 많은가요.
그러나 아픈 자에게로, 고통스러운 공동체에게로, 그리고 더 크게는 죄를 향한 애통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저자는 말해 줍니다.
이제는 '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부담으로 여기는 시대에, 죄와 비슷해 보이는 '실수'나 '중독' 혹은 '병'이라 부르지 말고 '죄'라고 확실히 부를 때에 애통의 깊이를 알 수 있음도 알려 줍니다.
전 '능동적인 낮춤'도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유혹당하는 교만에서 벗어나는 또 하나의 길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
외줄 하나로 나이아가라폭포나 그랜드캐니언을 건넜다는 닉 왈렌다가 모두가 열광하는 그 시간을 끝낸 뒤 자발적으로 몇 시간 동안이나 팬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주으며 '그 시간이 내 영혼에 유익'하다고 고백했다는 예화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이제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대면하기를 원하시는, 보이는 삶과 실제하는 삶이 같아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기대를 기억하게 합니다.
두 번째 방에선 이러한 끝에 서서 예수님을 만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비움은 하나님의 채움과 정비례하며, 무기력한 삶을 연명하던 나의 항복은 나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럼에도' 나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일하시는 그 분의 깊은 사랑도 만납니다.
나의 약함이 곧 그 분의 능력을 표현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나의 강함과 똑똑함과 과시할 만한 것을 보여달라 요구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아프고 약한 부분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끝이라 생각하던 그곳을 용기 있게 내어놓을 때 그 분은 그곳을 새로움과 기쁨의 시작으로 바꿔주십니다.



언어적인 표현은 쉽게 쓰여 있지만 사실 쉬운 삶은 아닙니다.
자신의 끝에서 자신을 아예 버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더더군다나 나의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분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일은 무모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삶을 경험하고 걸어가는 인생이 값지고 소중합니다.
올해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나의 인생부터 온전한 깨어짐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나의 약함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세밀하게 느끼고 싶습니다.
작은 곳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삶의 향기가 나의 주변을 봄으로 인도하는 창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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