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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9 - 박경리 대하소설, 3부 1권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
다산북스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품 소개
- 제목 : 토지 9 (3부 1권)
- 작가 : 박경리
- 출판 연도 : 2023년 6월
- 출판사 : 다산북스
- 장르 : 한국소설
- 쪽수 : 516쪽

<토지 9 (3부 1권)>

<작가 소개>
<개인적인 생각>
용이를 처음 보던 사람들이 "허우대 좋고 힘 좋은 사내"라 말했다면, 지금의 용이는 빛이 빠진 얼굴로 누워 있다. 시간은 근육보다 먼저 심지를 꺾는다. 관수는 그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외면하지만, 사실 그가 보는 것은 내일의 자기일지도 모르는 두려움이다. '옛동지'라는 말은 과거를 미화하는 용어가 아니라, 서로의 몰락을 비추는 거울의 다른 이름일 때가 있다. 그래서 관수의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동정이 아니라, 닮음에 대한 공포로.
그럼에도 용이는 묘하게 평온하다. 분노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은 상태. 멀찍이 서서 삶을 '구경'하는 마음은, 한때 삶에 들이대던 칼날을 거두고 난 뒤의 허허로움 같다. 애증을 끝내 접는다는 건 감정의 성숙이라기보다, '생명의 불씨가 꺼져버렸다'는 자각에 더 가깝다. 모든 감정이 화해를 향해 흘러가다 말고, 어느 지점에서 그 자체로 침묵이 되는 순간, 그 침묵 앞에 관수는, 살아남는 법과 무너지지 않는 법이 서로 다른 기술임을 배운다.
조준구는 다른 방식의 침묵을 배운 사람이다. 그에게 윤리는 말보다 얇고, 계산은 숨보다 빠르다. "지체 낮은 집에서 지체 높은 집에 시집 보냈으니 이제 나도 사돈댁 것 좀 얻어 먹자." 그는 체면을 시장에 올려 흥정하는 법을 아는 사람, 혹은 체면 자체를 상품으로 바꾸는 시대를 앞서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이를 몰염치라 부르고, 누군가는 생존이라 부른다. 이름이 무엇이든, 그의 손은 늘 가슴팍 (돈의 부피가 닿아 있는 자리)로 간다. 불안은 죄의식에서 오지 않는다. 빼앗길까봐 오는 것.
흥미로운 건, 권위도 흥정을 배운다는 사실이다. "사는 쪽이 직접 만나 흥정하겠다." 이 한 문장은 오래된 집안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장면처럼 읽힌다. 대리라는 장막을 걷고, 이름의 무게를 몸으로 끌고 나와, 값과 말을 맞대는 일. 품위가 현실을 피해 도망치지 않을 때, 권위는 되살아난다. 우스운 것은, 그 되살아남이 바로 거래의 문법 위에서 가능해 진다는 점. '토지' 속 여성들은 종종 그렇게, 유서 깊은 집안의 뼈를 현실의 장터로 끌고 나온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삼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속 시원함을 선물한다.
홍이는 한때 선망의 조각상이었다. '깨끗한 인상, 분명한 행동거지, 우수한 빛'. 그러나 말씨가 흐트러지고, 균형이 무너지고, 청렴하고 결백했던 선이 무너져 그는 자신이 지키려던 태도보다 빠른 속도로 변한다. 친구들은 그를 '갈팡질팡'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내가 아는 가장 정확한 몰락의 정의다. 자신이 한때 있었던 곳과 지금 서 있는 곳 사이에, 스스로 다리 놓기를 포기하는 일. 무너지는 홍이를 붙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토지> 속 인물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고 있다. 체념하는 이, 흥정하는 이, 분노하는 이, 흔들리는 이. 그들의 발자국이 겹치는 지점에서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무엇으로 버티는가, 사랑인가, 자존인가, 돈인가, 혹은 아무것도 아닌 침묵인가. 갈수록 흥미진진해 지는 토지. 벌써 중반부를 치닫고 있다. 다음 편이 기대된다.
반고흐 에디션
토지 9 (3부 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