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거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6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권진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독서를 전혀 하지 않았던 과거의 내가 기억하는 소설가의 이름은 헤밍웨이 딱 하나였다. 그만큼 나에게는 머시기한 기억 보정이 들어가 있는 분인데, 정작 독서의 세계를 알고 나서는 영 손이 가지 않는 작가이다. 일단 헤밍웨이는 타 작가들과 달리 활동 초기와 후기 작품의 갭이 막 크지는 않다. 일찍이 그의 인생은 전쟁에게 집어삼킨 바 되었고, 그렇게 전쟁이 낳은 사상들을 문학이라는 배설물로 내보냈다. 따라서 헤밍웨이의 작품은 어쩔 수 없이 시대를 타는 데다 스타일마저 시크하고 간결하여 썩 친해지기 쉬운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비주얼은 포기하고 맛으로만 승부하려는 타입도 아니다. 아무튼 여러모로 내게는 연구 대상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은근히 기대했던 작품이었다. 제목이 지닌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 거라는 상상력을 잔뜩 불어넣었단 말이다. 허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모든 장면을 뻔하게 설명해서 이만저만 실망한 게 아니었다. 물론 좋은 장면이나 의미심장한 문장도 있었지만 그 비중이 정말 코딱지만 했달까. 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는 별거 없었다. 전시 중에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 교차를 보고 싶었다. 전우들의 죽음 가운데 적군과 싸워 이기는 것만을 생각해야 하고, 길어지는 전쟁으로 가족과 연인들의 미래가 사라져가는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오히려 독자들한테는 이런 내용들이 뻔한 것일 텐데, 헤밍웨이의 뻔함은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는 선에서 그친다. 차를 타고 이동한다, 전우들과 식사를 한다, 병원을 들린다와 같은, 정말 메시지랄 것도 없는 업무 일지를 읽는 기분이었다. 대체 이런 작품을 오늘날까지도 떠받드는 이유가 뭘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이탈리아 군대의 구급차 운전병으로 지원 후 장교가 된 헨리의 국적은 미국이다. 미국인이 어째서 이탈리아 군에 온 건지 다들 의아해하고, 여기에 헨리도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의 직별 및 계급상 전선에 나설 일은 없었고 의무대와 군 병원 주위를 어슬렁대는 게 다였는데, 툭하면 지겨운 전쟁 운운하는 걸로 보아 군인으로서의 사기는 오래전에 저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어느 간호사와의 썸 타기로 답답한 군 생활에 조금씩 활력이 붙는 주인공. 뭐 그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지 했는데 얼마 못 가서 적군의 포격으로 다리를 크게 다치면서 병상 생활이 시작된다. 여기까지가 1부이고 헤밍웨이가 겪었던 일들이다. 그래서인지 재미가 쏠쏠했는데 2부부터는 텐션이 점점 떨어지다 끝내 핵노잼이 돼버린다. 후반부에 가면 좀 달라질까 싶었는데 정말 끝까지 기대를 저버렸음. 피츠제럴드가 딱 이런 스타일이라 손절했는데 헤밍웨이도 같은 과란 말이지? 고민 좀 해봐야겠고만.


딱히 이렇다 할 내용이 없어 그만 쓰고 싶지만 계속해 보겠다. 부상 회복 후 복귀한 헨리는 곧바로 전쟁에 투입된다. 부상자들을 나르던 헨리는 적군의 습격을 피하고 피하다가 탈영병들을 제거하는 아군들에게 붙잡힌다. 개죽음 당하기 싫어 진짜 탈영병이 된 그는, 그 길로 애인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한 뒤 함께 도주하기로 한다. 임신 중이었던 그녀는 오직 사랑 하나만 바라보며 그를 따르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그녀의 숭고한 사랑이 전쟁의 아픔도 이겨낸다는 걸 말하려나 싶었는데 그렇다 하기도 뭐 한 것이, 간호사의 대사가 온통 자길 사랑하느냐는 질문뿐이어서 내가 다 노이로제 걸릴 뻔했단 말씀이야. 그리고 또, 군인이 전쟁을 등지고 떠나려는 것만으로 반전 소설이라 부르는 것도 뭔가 납득이 안돼. 다 떠나서 억지로 분량 채운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어서 힘들었다. 헤밍웨이도 나님한테 걸리면 얄짤없습니다, 예.


그럼에도 헤밍웨이는 좀 더 읽어볼 생각이다. 어쨌거나 이분이 가진 허무주의는 과거 나에게도 있었던 것들이라 반갑긴 하거든. 헤밍웨이가 입대하기 전 기자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호불호 심한 하드보일드 문체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그 덕분에 작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고. 여튼 대단한 건 알겠는데 솔직히 맘에 안 듭니다요. 이 F형 인간을 T형 인간으로 만들지 좀 마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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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2-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투덜이십니다. 근데 그게 좀 귀엽습니다. ㅋㅋ
하지만 별 두 개는 좀 박하지 않나요? 그래도 노벨문학상 수상잔데.
전 오래 전 노인과 바다 괜찮게 읽었습니다. 이 책 별로라시니 언제 읽을지 모르겠네요. ㅋ

물감 2024-12-03 11:5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업무일지‘를 재미로 읽을 순 없으니까요...
<노인과 바다>는 저도 아주 좋았습니다! 딱 그 정도로 짧고 굵게 가는 편이 이 분에게는 딱인듯 싶어요. 아무리 살을 다 쳐내고 간결하게 썼대도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니 말이에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