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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2년 6월
평점 :
다들 그렇듯 나 역시 동명의 영화를 보고서 원작에 관심이 생겼다. 알고 보니 제목만 같을 뿐 책 내용은 영화하고 전혀 달랐다. 이 책은 스토리텔링의 철학 에세이라고 보면 되는데, 갓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쓴 글들이지만 성인들도 가벼이 흘려들을 수 없는 깨달음과 울림을 지녔다. 처음엔 이토록 진지한 제목이어야만 했나 싶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너 자신을 알라는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묻혀있던 보물이 주목받고 재조명되는 경우가 많아졌으면 한다.
중학생이 된 코페르의 일상과, 외삼촌의 조언이 담긴 노트 기록으로 구성된 이야기들. 작중에 나오는 갖가지 내용과 가르침들을 한뜻으로 묶자면, ‘당연하게 여긴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 점을 캐치할 줄 아는 감각과 사고력 및 그에 따른 선행들도 필요하겠고. 혹자는 그런 게 뭐가 대단하냐고 할 텐데 세상은 어느 것 하나도 당연하게끔 설계된 것이 없다는 얘기다. 순도 100%의 내 힘과 능력만으로 이룬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사람들은 마치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창조자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를 과신한다. 다시 말하지만 당연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대사 중에 우리 집이, 학교가, 국가가, 세상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는 불평불만이 떠오른다. 그 말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여기에도 역설이 존재한다. 자신이 누린 일상의 전부가, 제삼자의 수고 덕분에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특정 대상을 탓하고 헐뜯고 비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책에서는 감사를 느낄 줄 아는 마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혹 그것이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하고.
막상 읽어보면 다 어디서 들어봤던 내용들뿐인데 어째서 색다르게 들리는 걸까. 언제나 그랬듯 진리라 함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말이렸다. 옛 선조들과 현인들과 성인군자들이 하는 말에는 낯설고 생소한 표현이 잘 없다. 그런즉 누구나가 진리를 품고는 있으되 온갖 더럽고 추악한 장막에 가리어져 보지 못할 뿐이다. 성경에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 7:13)고 하지 않았던가. 그저 내가 편하고 싶어서 나 좋을 대로만 믿고, 그게 옳다 여기는 태도들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부패시켰는지 생각해 보라. 나는 재앙을 내리고 세상을 갈아엎는 신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담백하고 마일드한 이 책에서 매콤함을 느낄 독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개인적으로 반성과 후회할 줄 아는 사람이 위대하다(222p)는 표현이 가장 좋았다.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함과, 옳고 그름의 판단이 섰다는 증거이고,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므로. 또한 받기만 하던 소비자에서 줄 줄도 아는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도 아주 공감한다. 누구나가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가 될 순 없겠지만, 인간이란 그저 태어난 김에 살아가는 존재여선 아니 된다. 나에게 도움을 준 세상에 뭐라도 기여하려고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당연함이 아닌 감사로써 나아갈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끝으로, 나의 보잘것없는 글이라도 당신과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발판이 된다. 그러므로 난 계속해서 읽고 쓸 것이다. 부디 당신도 그러기를 바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