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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여름 ㅣ 블루 컬렉션
에릭 오르세나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어휴, 지루해서 혼났네. 공쿠르 상도 받은 유명한 작가던데, 일단은 원 아웃.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프랑스 문학은 정말 모 아니면 도다. 도무지 중간이 없달까. 물론 국가와 지역마다 날고 기는 놈이 있고, 인싸 아싸가 있고, 주류 비주류가 나뉜다지만 프랑스는 좀 특이한 나라다. 아니, 프랑스 작가들만 그런지도 모르지. 이들은 잘 썼든 못썼든 간에 자기들이 고품격 민족이라는 국뽕에 만취해있다. 참 대단한 철면피라고나 할까. 물론 그것이 문제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어느 국가보다도 정신승리가 월등하다는 얘기다.
초중반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한 번역가가 외딴섬에서 장기 체류를 하는 동안, 러시아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근데 하필 번역에 초 까칠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에이다>였다. 거기다 노벨 문학상 후보자라는 말과 함께. 그 부담감 때문인지 2년간 작업에 손도 못 대고 그냥 탱자 탱자 있다가, 약속된 제출일이 다가오자 그동안 친해진 섬 주민들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을 모아 각자의 분량대로 나눠주고 번역을 시키는, 소위 재능기부를 구걸한 꼴이었는데 어찌나 모냥 빠지던지. 문제는 저마다의 영어 레벨이 천지차이라 이건 뭐 써먹지도 못할 수준이었다는 거.
이만하면 괜찮은 줄거린데 나도 여기에 속았다. 요약해놔서 그럴싸해 보일 뿐, 내내 무표정으로 읽다가 끝났다. 초반에 나보코프가 졸렬한 번역가들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기사가 떴을 때, 그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끌고 가주었어야 했다. 허나 주인공은 제 본업을 제쳐두고 섬에서의 프리한 삶을 즐기고만 있으니, 당최 이 작품은 뭔 재미로 봐야 하나 싶더라. 도중에 번역가를 찾아온 출판사 직원으로 인해 흐름이 바뀌나 싶더니, 이내 또 제자리로 돌아가버린다. 그것까지도 좋다 이거야. 중후반에는 주인공 시점이 쏙 들어가고, 제 삼자인 사진사가 정말 느닷없이 끼어들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아닌가. 한참 뒤에 번역가와 합쳐지지만 그전까지는 뭔가 내용이 붕 떠서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나 싶어졌다. 그 분위기를 이어받아서 결말도 홀라당 날려먹었다지.
솔직히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래도 별 셋을 준 것은, 주인공이 번역가인 만큼 ‘언어‘에 대한 이모저모를 말해주고 있어서다. 그리고 번역가란 직업의 고충과 출판사와의 관계, 작가들과의 미묘한 신경전 등 소소한 볼거리들도 제공한다. 그러나 밑반찬 먹고 싶어서 식당에 가는 사람이 어딨냐고요. 메인 요리가 맛이 있어야 제대로 된 식당 아니겄소? 내 이 작가를 또 보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원 아웃... 아니, 옐로카드요. 좀 더 분발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