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원, 은, 원
한차현.김철웅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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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내 리뷰를 읽고 맘에 들어 하셔서 신간을 보내드리겠다... 뭐 이런 내용으로 출판사분께서 메일을 주셨는데, <늙은이들의 가든 파티>를 신랄하게 혹평했어가지고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더랬다. 뭐 그래도 내가 당당할 수 있는 건, 나님은 애정을 꽉꽉 담아서 까대므로 어떤 작가님이든 내 진심이 전해질 거란 확신 같은 게 있다. 따라서 이번 작품도 당근보다 채찍질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당근이야 뭐 다른 독자들이 번호표 뽑고 대기 중 일 테니깐.


이제는 작가 소개에 MBTI까지 실리는 세상이 되었군. 놀랍게도 나랑 똑같은 INFJ-A 셨더라. 허허, 어쩐지. 개인적으로 한차현 작가의 똥꼬발랄한 병맛코드를 좋아라 하는데, 어째 나오는 작품마다 분위기가 어둡고 심각하고 막 그렇다. 이번 작품은 영화사 분과의 합작이라 그런지 시나리오 기법으로 장면 전환이 매끄럽고 전개 속도도 빠른 편이다. 각 챕터의 분량도 길지 않아서 마치 <살인자의 기억법> 같은 템포와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덧셈보다는 뺄셈으로 승부하는 식이랄까. 이래저래 좋았지만 혹 영화로 만든다면 좀 더 각색이 필요하겠다. 이유는 뒤에 가서 말하기로 하고.


이번에도 ‘차연‘이 주인공이다. 이제는 무슨 차연의 멀티버스 세계관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 차연도 별 볼일 없는 아웃사이더로 등장한다.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로 연락 두절에 종적을 감춘 여자친구 은원. 몇 주 후, 가족을 통해 병원에서 재회한 그녀는 베르 어쩌구 증후군... 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단다. 멘붕인 차연에게 진실을 알려준다며 은원의 고모네가 두 사람을 어느 연구소로 데려간다. 그곳에 실험 캡슐 안에는 은원의 복제인간들이 잠들어있었고, 네가 알던 은원1은 얼마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허?


결국 이 구린내 나는 연구소가 복제인간을 찍어내서 세상에 혼돈을 가져올 것이고, 이것을 막으려는 차연 일행이 겪을 시련에 대한 내용이다. 다소 순탄하게 진행된 감은 있다만, 그럭저럭 괜찮은 상차림이었다. 이만하면 재료도 신선하고, 메인 요리도 있고, 반찬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뺄셈‘이 문제였다. 모양새는 딱 음모론인데 정작 이렇다 할 액션 거리가 없었다. 주인공 차연은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게 일절 없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끌려만 다니는 무력함을 보여준다. 또한 거듭되는 진실과 일어나는 상황에 정신줄을 자꾸 놓게 된다.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은원2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인물의 감정선에 중점 둔 것도 아니고, 스토리에 치중한 것도 아닌 참 어중간한 작품이 돼버렸는데 이같은 평이 사실 처음도 아니다. 이래서 이 분의 작품은 명랑 발랄한 것만 좋아한다는 말입죠. 예.


규모에 비해 허술하기만 했던 연구소와 세력들은 말할 것도 없고, 두 남녀의 감정선이나 좀 말해보자. 그러니까 이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호소하여 독자가 페이소스를 느껴야 할 텐데, 증말 미안하게도 호소력이 제로였다는 말씀이야. 솔직히 템포가 너무 빨라 슬픔을 애도할 새가 없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은원1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자마자 연구소 타파 계획에 휘말리질 않나, 동행하는 사람이 죽은 연인과 똑같이 생기질 않나. 얼마든지 인물에 빠져들게 할만한 건덕지가 많았는데, 우째 작가는 애도할 틈조차 주지 않으니 원.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알 게 된 것이, 은원의 아픔과 심정에 무게를 두고자 하셨다는데 허허허... 뭐가 문제냐면요, 독자를 울려야 하는 건 은원2인데, 정작 은원1의 과거 회상만 잔뜩 나오더란 말입니다. 거기다가 은원1은 말없이 퇴장해버렸고요. 이쯤 되면 포인트를 한참 잘못 잡은 게 아닐지요?


아마 제목의 의미는 ‘은원 is One‘일 것이다. 몸은 여럿이지만 하나의 기억을 계승해야 했으니. 여튼 여러모로 아쉬움 많은 작품이었다. 전작 리뷰에서 차라리 빅 스케일의 음모론이면 좋았겠다고 했었는데, 정작 빅 스케일을 써 보니 용두사미가 돼버렸다. 어째선지 내 잘못인 것만 같다. 작가님이 내 리뷰를 읽는다는 가정하에 적어봅니다. 집필하다가 한 번씩 저 좀 부르세요. 제가 또 훈수를 겁나게 잘 둔답니다? 그럼 이만.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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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4-16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 님 같이 모니터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있다면 소설 쓰는 분에게 도움이 되겠는 걸요.
에세이와 다르게 소설은 독자들의 취향을 알 필요가 있죠. 자기 만족으로만 소설을 쓴다면 모르지만.
이제 물감 님이 승승장구하셔서 출판사에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차원이 되셨군요. 오호!!

물감 2024-04-16 22:23   좋아요 1 | URL
출판사 분들의 메일은 종종 받곤 하는데요, 대부분 비문학이거나 안내키는 소설이어서 잘 안하는 편이에요. 어쩌면 하도 비평만 하다보니 연락이 줄어든건가 싶네요 ㅎㅎ
솔직히 제가 뭐라고 감놔라 배놔라 하겠냐마는, 그냥 못 본체 지나치기 힘든 작가/작품들이 이렇게 있어요. 몇몇 작가분들이 연락주셨듯이, 이 작가님도 연락주길 기대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