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랑한 은둔자>같은 에세이를 생각하고 집어 들었으나 그보다는 훨씬 딥하여 마치 논문처럼 느껴진 책이다. 아예 못 알아들을 내용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수준이 매우 높고 어렵기도 해서 그냥 느낀 점 몇 가지만 적고자 한다. 내가 이해한 게 맞는다면 욕구는 곧 만족으로 이어지는 통로 같은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음식을 섭취해 배부름의 만족이 있다면 반대로 음식을 거부해서 통제에 성공한 만족도 있는 것이다. <욕구들>은 저자의 거식증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 문화, 자아 등등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불안과 억압과 강박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그러므로 단지 음식 문제에 관한 내용으로 끝나선 아니 될 일이다.


초반에는 거식증이 온갖 병리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저자의 주장과 견해들이 공감되면서도 너무 비약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미국 사회가 바탕인데다 2003년 출간작이라 요즘과는 맞지 않는 내용도 있어서 그렇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과감한 여성들이 늘어가는 중이다. 하여 그런 사회의 오류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문제들과 시스템이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저자의 목소리는 그것들이 필연 여성이나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혹여 그의 주장들이 지금과 다르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오히려 축하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그것보다도 ‘먹어서‘ 생기는 사회적 문제와 현상들을, (극도로) ‘안 먹어서‘ 생기는 문제들과 접목시키고 있어 혼란스러웠다. 보통은 ㅡ이미 과체중이거나 그렇게 될 낌새가 보이는 사람의ㅡ 몸이 비대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과하게 먹는 것을 말리곤 하는데, 여기서 자유든 권리든 주장하는 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ㅡ그가 거식증 환자든 아니든ㅡ 한참 체중 미달인 사람이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식욕을 통제하고 압박하면서 자아를 되찾고 권리를 지켜냈다고 하니 나의 무지로써는 참 어렵기만 하다.


이 욕구가 음식에서 패션이나 직장문제, 모녀관계 등으로 넘어가자 제법 알아들을만한 내용이 되었다. 이런 사회 이슈들이 남성들에게도 해당되거나 경각심을 갖게 해주는데, 난 무엇보다 저자의 거식증이 어머니의 인정을 바라는 욕구가 포함된 사실에 크게 공감하였다. 그렇게 말라버린 몸을 각인시켜서 모친에게 상처를 입히고, 지금 이것이 자식을 온전히 돌보지 못한 무책임의 결과라며 말없이 쏘아대는 그 상황을. 자신이 좀 남다르다고 느끼며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같은 공격성을 지니고 있다. 단지 표출할 때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의 차이일 뿐. 결국 욕구는 자기만족이 기본이지만 타인과의 인정과도 연결돼있어, 여기에서 완전히 분리되고 해방되기란 불가하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를 키울 때,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에 오는 기쁨과 존재감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 교육을 아이가 예민하게 흡수하면 점차 관계 의존증이 되어 나 자체로서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는 내면과 외부가 계속 부딪히면서 무언가 잘못됨을 감지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를 몰라 하다가 소위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저자의 거식증도 회피 수단 중의 하나였다. 식욕을 통제하며 성공의 만족을 강조했으나 술 중독은 그러지 못했다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차라리 그게 인간답고 좋더군. 중독은커녕 욕구랄 것도 없는 나 같은 인간이야말로 처방이 불가한 경우라서 말이지.


폭식이든 거식이든 제 몸을 학대하는 욕구의 행위에는 분노와 슬픔이 서려있다고 한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채워지지 않는 필요에 대한 분노.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 여겨지는 것에 대한 슬픔. 내 안에 뭔가가 빠져있어 공허하다거나 또는 가득 차 있어 속이 갑갑하다거나. 그게 무슨 얘긴지 잘 알겠어서 참 괴롭고 또 괴롭다. 저자는 허함이라는 허기의 존재에서 달아나기 위해, 그 상실과 비통의 감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거식증이란 갑옷을 둘렀지만, 그 철저한 강박과 루틴이 저자를 수렁에서 건져내지는 못했다. 모든 물줄기가 바다로 흘러들듯이 감정과 고통의 조각들은 존재의 욕망으로 귀결됨을 깨달았기에. 몸에서 본능적으로 느낀 ‘부재‘를 이만큼 주목해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놀라운 관점과 생각거리를 던져준 저자에게 감사를 전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3-11-2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프사 가을 물감

물감 2023-11-22 11:12   좋아요 0 | URL
겨울 아니고요?ㅋㅋㅋ

잠자냥 2023-11-22 11:1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두 계절 노린 큰 그림...

물감 2023-11-22 11:30   좋아요 1 | URL
영원불변의 잠자냥 님 프사가 바뀜을 보고 월동준비의 충동이 일어났걸랑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