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0
헤르만 헤세 지음, 황승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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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를 참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럴 기분이 안 든다. 이렇다 할 서사도 없고 주제나 메시지도 느껴지지 않고, 그렇다고 막 의식의 흐름도 아닌 어중간한 전개 방식. 이제껏 보아 온 작품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을 해갖고 아주 그냥 당황했다. 분량이 짧았기에 망정이지, 길었으면 바로 포기했을 정도였다. 나 말고도 많은 독자들이 별점을 짜게 주긴 했네. 또 나하고만 궁합이 안 맞는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듯해서 기분은 좋다.


나는 노래에서 멜로디가 가사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처럼 소설에서는 문장보다 스토리가 더 우선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이번 작품과는 정말 상성이 맞지 않았는데, 자연의 아름다움과 끓어오르는 감정 등을 시적 표현으로 잔뜩 도배해놨기 때문이었다. 이해는 되는 게, 주인공이 시인 이태백을 너무나 동경한다는 설정이라서 그렇다. 하여 문장 문장마다 시처럼 써놔가지고 읽는 데 아주 곤욕을 치렀다. 시의 아름다움은 짧은 단락 속에 깃든 강렬함에 있다고 보는데, 그런 기교를 남발하고 있으니 1절만 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화가 클링조어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인지한다. 이유는 안 말해주는데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술자리 몇 번 가지다 옛 친구에게 편지 한통 써주고 끝나는 이야기. 아, 마지막에 자화상을 그리긴 했다. 그래 뭐, 죽음을 목전에 둔 이의 허망함을 그린 내용이라면 오히려 낭만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죽음과 전혀 무관하다는 듯한 태도와 언행은 보기에 따라 완벽한 스웩이자 힙하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클링조어가 그런 말들로 포장해 줄 만한 깜냥은 아니었다. 솔직히 이 작품이 좋았다는 분들은 모두 문장력만을 칭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강조하는 내용이 있었으니, 바로 예술가의 몰락이다. 아무리 멋들어진 그림 한 폭을 완성해도 세월이 가면 색을 잃고 표현도 무너져버린다. 여기서 헤세의 몰락은, 낡은 것을 내보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세대교체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예술성이 무너지고 새로운 내면을 통해 재탄생한 예술성과 탈바꿈하는, 새로운 감각의 질서를 말하는 듯하다. 나름대로 해설을 요약해 본 건데 이해는 되지만 정리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감각의 교체를 주장하고, 독특한 문체를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1차 대전을 지나온 저자의 심경 변화에 있단다. 징하게도 안 풀리는 헤세의 인생사를 보노라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설과 보충 설명이 필수인 작품들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모름지기 작품의 본 내용만으로도 알아듣고 이해하고 해석할 수가 있어야 한다. 여러 사람들이 난해해한다면 그건 독서력을 탓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작품이 있을까 봐 걱정되지만 헤세 뽀개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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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07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안 읽고 싶더라니...... 영원히 안 읽을 목록에 추가 완료. 감사. ㅋㅋㅋ

물감 2023-08-07 13:51   좋아요 1 | URL
이걸 안 읽으셨다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정녕 헤세가 쓴 책인가 할 정도였습니다... 헤세도 욕 좀 먹어보고 그래야죠ㅎㅎㅎ

잠자냥 2023-08-07 14:06   좋아요 1 | URL
헤세는 주요 작품?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수레바퀴>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크눌프>만 읽었어요. 그나마 대부분 10대 때 읽은 거고, <황야의 이리> <싯다르타>는 성인 때 읽었는데 그냥 그랬고요. ㅋㅋㅋ 성인이 되어 다시 읽어 본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아, 괜히 다시 읽었다 싶어서 헤세는 이제 그만 졸업...하려고 했으나 물감 님이 말씀하신 <로스할데>와 <유리알 유희>까지만 읽어보고 졸업하려고 합니다.

물감 2023-08-07 14:24   좋아요 1 | URL
전 아직 못 읽은 작품이 많은데, 잠자냥 님처럼 장편만 다 읽어볼 계획이에요. 죄다 비슷비슷해서 질리기도 한데 어쩌다 읽으면 나름 쏠쏠한 맛이라서요ㅎㅎ 날 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