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하난의 우물
장용민 지음 / 재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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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N성향의 나님이 인정한 상상력 끝판왕은 역시 장용민 작가이다. 이분의 내공은 검증이 끝난 지가 오래지만 볼 때마다 감탄이 멈추질 않는다. 혹자는 미흡한 완성도와 개연성을 지적하는데,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장르소설에 뭐 그리 완벽하기를 따질 필요가 있나 싶다. 재미있는 썰을 얘기하다 보면 자잘한 내용은 흘려버리듯이 장용민의 소설도 그렇게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시작부터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부치하난의 우물>이 유독 아쉬웠다던 평가가 많았기 때문인데, 오락거리는 충분했으니 뭐 그거면 됐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의 실망 포인트가 뭐냐면, 사랑이라는 다소 뜬금없는 테마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배경은 또 누아르 액션이라서 어울리는 궁합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여 설정에 신경 끄고 읽었더니 역시나 폭발적인 재미와 흡인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지능 낮은 넝마주이 소년 하나가 웬 전설을 듣고부터였다. 아군에게 속은 부치하난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 죽음을 맞게 된 얘기였다. 주인공 누리는 자신이 부치하난으로 살아갈 운명이라 믿고 자신의 반쪽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한편 조직한테서 훔친 보석으로 쫓기던 태경은 누리를 만나 함께 도망치면서 연을 이어간다. 우리가 운명이니 어쩌니 하며 들러붙는 이 거지 소년을 진짜 어찌하면 좋으랴.


태경의 삶은 성폭행과 매춘부가 다였다. 인간을 불신하게 된 태경 앞에 나타난 누리는, 자신의 과거와 쫓기는 현재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심으로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자꾸 흔들리는 마음은 어느새 누리가 얘기한 전설을 믿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감상에 젖을 새가 없었다. 조직은 부하들과 거지 연맹까지 동원해 두 사람을 잡으러 다녔다. 해외로 밀항하려던 태경의 계획은 틀어지고 조직에게 붙잡힌다. 그녀를 구하러 온 누리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보스의 질문에 사랑해서라고 답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 대사를 진부하지 않게 하려고 작가는 주인공의 지능을 확 낮추었다. 어린아이가 인지하는 사랑이란 그저 아름답고 순수할 뿐이며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없다. 누리의 입을 빌려서 작가는 맹목적인 태초의 사랑을 그려보고 싶었었나 보다. 아님 말고.


누리는 부치하난의 죽음을 따라 함으로써 운명의 평행이론을 완성시킨다. 이제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했는지, 목적을 달성한 작가는 잽싸게 결말을 짓고 퇴장해버렸다. 결국 보석도 뺏기고 밀항도 실패하고. 운명은 정해져있었다지만 뭐가 이렇게 싱겁다냐. 반전이 없다는 게 반전이었다. 에필로그라도 써주시지, 거참. 장용민의 소설은 무대 사이즈에 비해 전개 속도가 빠르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택시를 부르면 곧장 멈춰 서는 K-드라마 식의 연출이 종종 나온다. 시나리오 작가답게 잘 넘어가긴 하지만 이번 작품은 진짜 좀 거시기했다. 영화보다는 만화로 만들면 딱이겠던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너무 많아가지고 안되겠다. 아무튼 킬링 타임용으로는 훌륭한 작품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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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8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이 비문학을 별로 안좋아하시는건 극N이라서?!

물감 2023-07-28 15:08   좋아요 1 | URL
글쎄요, 저는 공부하려고 독서하는 게 아니걸랑요. 첫째는 순수 재미를 위해서고, 둘째는 글을 쓰기 위해서에요. 비문학은 재미도 없는데다 리뷰해서 뭐하나 싶고요~ 전에도 얘기한 거지만 저는 지식보다도 지혜와 통찰을 더 좋아한답니다🙂🙂🙂